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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제이 Jun 25. 2021

여름 길목의 크리스마스 단상

크리스마스는 왜 12월  25일일까

 6월21일은 하지(夏至). 1년 중 해가 가장 긴 날이다. 장마철을 앞두고 본격적인 여름 길목에 들어서는 날이기도 하다.

  백신 접종 기대감 때문일까. 우연히 나가서 본 하지 저녁의 종로는 코로나19가 무색할 정도로 복잡했다. 아직 전 국민의 30%밖에 맞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날 저녁 종로, 특히 이면도로에 펼쳐진 노천 주점은 마치 전 국민이 백신을 맞고 코로나19에서 벗어난 것마냥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끌벅적. 축제가 따로 없었다. 농경 사회도 아닌데 사람들이 특별히 하지를 기념해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리는 없다. 하지라서가 아니라, 오랜 동안 억눌렸던 기분을 좋은 저녁 햇살로 풀어보려는 심사가 컸을 것이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불안감과, 그 불안감에도 아랑곳 않고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뤘다. 

  보통 하지에서 6개월 뒤, 동지(冬至) 즈음인 한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에나 볼 수 있을 법한 복잡한 거리의 광경이 한여름 어스름 속에서 펼쳐졌다. 물론 크리스마스에는 노천카페의 인기는 떨어지기는 하지만, 대신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 사이의 간격은 더 좁아지니 얼추 그 모습을 대입할 만 했다. 마치 크리스마스가 한 여름에 있다면, 이런 풍경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왜 크리스마스는 햇살 좋은 여름 하지가 아니라 밤이 길고 추운 동지와 엇비슷하게 자리 잡은 것일까.       


크리스마스는 왜 12월 25일일까     


  커다란 트리와 화려한 조명, 멈추지 않는 캐럴. 매년 크리스마스 전후면 전 세계 도시의 거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기독교 명절에서 유래한 크리스마스는 이제 나라와 종교를 떠나 세계인의 즐거움이 됐다.

  기독교적인 전통을 지닌 유럽과 아메리카는 물론 요즘은 이라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일부 이슬람권 국가에서도 공공장소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거나 심지어 공휴일로 지정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있다. 번쩍이는 거리를 밝히는 조명 장식은 12월 25일을 앞두고 세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우리나라도 서울 시청 앞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들어선다.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 / Missa)’라는 단어가 합쳐진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에서 출발했지만, 실제로 12월 25일은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과 관계가 없다. 성서 어디에도 예수의 탄생일이 명확히 나와 있지 않다는 것도 이제는 제법 알려진 사실이다.

  정확히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 초기에는 다양한 추측과 주장이 난무했다. 12월 25일과 함께 5월 20일, 4월 18일, 3월 28일 등이 예수의 ‘생일 후보’로 거론되었다. 정확하지 않은 예수의 탄생일 대신 예수가 세례를 받은 날(1월 6일)을 기념하기도 했다.

  12월 25일이 예수의 생일을 축하는 기독교의 축일이 된 것은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다. 로마 교회가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결정’한 시기에 대해서도 335년설, 354년설 등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크리스마스를 기리는 풍습이 로마 교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는 기독교 역사학자들의 의견이 대략 일치한다.

  그러면 어째서 12월 25일인가. 로마 초대 교부인 히폴리투스(Hippolytus, 170~235)는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근거가 뚜렷하지 않아 많은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 12월 25일이 당시 로마에서 번성했던 미트라교(Mithraism)의 기념일이었다는 점이 뒤늦게 크리스마스 날짜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고대 로마에서는 태양신 미트라(Mithra)를 숭배했는데, 미트라의 생일이 12월 25일이다. 게다가 당시 12월 25일은 밤이 짧아지고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즉 동지(冬至, 지금 달력으로는 12월 22일 또는 23일)이기도 해서 이즈음 로마에서는 농경신 사투르누스(Saturunus)에 대한 제사가 열렸다. 여러 의미로 축하하는 날이었던 셈이다. 이때를 즈음하여 축제가 계속됐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신흥 종교였던 기독교가 빠른 시일 안에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토착 종교의 축제일을 받아들여 통합하는 것이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의 비밀이다. 결국 크리스마스는 초기 로마 교회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발명품’인 셈이다.

  한편 유럽 국가들 중 동방 정교회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인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세르비아 등에서는 현재의 양력 12월 25일 대신 1월 7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념하고 있다.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율리우스력에서 12월 25일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그레고리력(양력)으로는 1월 7일이기 때문이다. 콥트 기독교가 전파된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에서도 양력 1월 7일에 크리스마스 행사를 갖는다. 기념하는 날짜는 같지만 달력에 따라 시기가 차이난다.

  한국에는 구한말 선교사들이 크리스마스를 전파했다. 1886년 12월 24일자 《독립신문》에 크리스마스에 관한 논설이 실린 것을 보면 당시에도 크리스마스가 꽤 널리 알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1898년 12월 27일자 《대한그리스도인회보》에 실린 ‘서울 성안과 성 밖의 예수교 회당

과 천주교 회당에 등불이 휘황하고 여러 천만 사람이 기쁘게 지나가니 구세주 탄일이 대한국에도 큰 성일이 되었더라’는 구절도 구한말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로부터 51년 뒤 크리스마스는 공식적인 ‘빨간 날’이 되었다. 1949년 기독교 신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이 ‘기독탄신일’이라는 이름으로 12월 25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이다.

  한편,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산타클로스(Santa Claus)는 4세기경에 활동한 성 니콜라스(St. Nicholas)에서 유래했다. 네덜란드에서 니콜라스 성인을 신터 클라스(Sinter Klaas)라고 불렀는데, 이 명칭이 변화하여 산타클로스가 됐다. 니콜라스 성인은 터키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 헌신했다.     


참고문헌 

  John Storey <Christmas, Ideology and Popular Culture>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08

  이영제 <크리스마스> 살림, 2004

캐나다 퀘벡시티에 있는 크리스마스 용품점 "La Boutique de Noel". 일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맛볼 수 있는 관광 명소다. 

  일부는 저서 <일상의탄생>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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