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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제이 Sep 19. 2021

추석

-송편은 언제부터 한가위 절식(節食)이 됐을까

추석     

  곧 추석. 보름달이 먼저 떠오르는 명절이다. ‘가을 저녁(秋夕)’이라는 명절의 이름부터가 밤하늘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그래서일까. 중국에서는 보름달 모양의 월병(月餠)을 먹으며 가을 명절을 기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의 추석 음식은, 보름달이 아닌 반달 모양의 떡, 송편이다. 왜 그럴까. 일각에서는 ‘백제는 만월이라 기울 것이고, 신라는 반월이라 커질 것이다’라는 삼국사기 구절을 언급하며 신라에서 이를 기려 반달모양의 떡을 빚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당시에도 송편이 추석 음식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오히려 조선 시대, 그것도 후기에나 와서야 송편은 추석 음식으로 대접받기 시작한다. 

  어찌됐건 지금도 추석 음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송편이다. 그런데 요즘은 과거에 비하면 송편을 빚는 집도, 먹는 집도 드물어 진 것이 사실이다. 안타깝지만 코로나19로 고향 방문이 줄어들면서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송편 빚는 풍경도 보기 어렵게 됐다. 송편이 언제부터 추석 음식이 됐을지도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언제까지 추석 음식이 될 지도 한 번 생각해봐야할 일이다. 


             


- 송편은 언제부터 한가위 절식(節食)이 됐을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명절 중 추석만큼 좋은 날은 없다. 음력 8월 15일, 무르익는 가을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이다. 추수를 앞두고 마음도 여유로워 진다. 그 만큼 넉넉한 명절이다. 풍성한 먹을거리를 장만해 차례를 지내고 온 가족이 나눠먹는다.

  절기에 맞춰 먹는 음식을 절식(節食)이라고 한다. 설날의 절식이 떡국이라면 추석의 절식은 단연 송편이다. 물론 추석에 먹는 음식이 송편만은 아니다.

  추석 아침이면 집집마다 어머니들은 갈비찜도 만들고 전도 부치며 분주한 아침을 보낸다. 쇠고기와 다시마를 넣은 토란국도 끓이고 버섯, 고기를 가지런히 꼬치에 끼운 화양적도 부쳐내면서 솜씨 자랑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음식 종류가 많아도 송편이 빠진다면 추석 상(床) 느낌이 나지 않는다.

  이렇듯 송편이 단연 추석 명절의 주인공이다 보니 우리 민족이 아주 오래 전부터 추석에 송편을 먹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송편이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해온 음식인 것은 사실이지만, 하지만 송편이 지역을 가리지 않는 보편적인 추석 음식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추석 그 자체, 즉 음력 8월 15일을 명절로 기념한 것은 역사가 깊다. 일본 승려 엔닌(圓仁·794~864)은 838년부터 847년까지 당(唐)을 여행하고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이 책에 ‘적산법화원에서는 풍성한 음식을 준비해 8월 15일 명절을 지낸다’는 구절이 있다. 엔닌은 ‘이 명절은 다른 나라에는 없고 신라에만 있는 명절’이라고 덧붙였다.

  적산법화원은 당시 청해진 대사였던 장보고(?~846)가 세운 사원이다. 현재의 중국 산둥(山東)성에 위치한 이 사원에서는 신라인들이 신라의 풍습을 지키고 있었다. 기록에는 송편이라는 음식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송편이 문헌에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17세기 초반부터의 일이다. 한자로 ‘송병(松餠)’이라고 적은 것이 많다. 형태는 반달 모양이지만 이름은 반달과는 관계가 없다. 만들 때 바닥에 솔잎을 깔고 찐 떡이어서 소나무 송(松)자를 붙여 송편이라고 부른다. 

  1611년 유배 중이던 허균(1569~1618)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송편이 봄철 음식이라고 나온다. 도문대작은 귀양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던 허균이 글로나마 마음을 달래기 위해 과거에 맛봤던 좋은 음식들에 관해 적은 책이다.

  이보다 조금 뒤 발간된 ‘상촌집(象村集·조선 중기 문인 신흠의 문집)’에는 송편을 여름인 유두일(음력 6월 15일)에 먹는 음식으로 기록돼 있다. 이 밖에도 정월 대보름에 먹는다거나 오월에 먹는다는 등 송편 먹는 시기에 관한 다양한 기록이 남아있다. 파종을 앞둔 2월에 일꾼들을 대접하는 의미로 빚는 송편도 있었다. 송편에 풍년을 바라는 의미를 담았다. 반달이 차서 보름달이 되라는 기원이다.

  이처럼 일 년 내내 때를 가리지 않고 먹었던 송편이 추석 음식이 된 것은 조선 후기에 와서다. 19세기 초 가사인 ‘농가월령가(1816년)’에는 ‘북어패 젓조기로 추석명일 쉬어 보세, 신도주 오려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오려송편은 올벼(다른 벼보다 일찍 수확한 햇벼)로 만든 송편이라는 뜻이다.

  송편이 본격적으로 추석 음식으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1917년 9월 19일자 매일신보에는 ‘추석은 오려송편에 햅쌀로 선영에 제사하고 즐겁게 노는 명절’이라는 기사가 나온다. 대중매체의 발달과 함께 점차 ‘추석=송편’ 이라는 공식이 굳어졌고, 지금은 송편을 빼고 추석을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사실 요즘에야 좋은 간식이 많으니 굳이 투박한 송편에 손이 갈 일이 많지 않다. 추석 명절에 한두 개 집어먹는 것으로 일 년 치 송편을 다 먹었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송편에는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여름 송편이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었다면 가을 송편은 한 해 농사를 잘 짓도록 도와준 하늘과 조상에 감사하는 징표다. 이런 의미까지를 새겨본다면, 추석 아침에 먹는 송편의 맛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 참고문헌

김용갑 <추석대표음식으로서 송편의 발달 배경> 인문노총 제75권 제2호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자료 집성’ 신문. 잡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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