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가 키운 그 지독한 목마름에 대하여
‘폭싹 속았수다’를 보는 내내 눈에 밟히는 인물이 있어요. 바로 은명입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단란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애순과 관식. 그 세월 속에서 공부 잘하고 똑 부러진 첫째 금명은 그들의 자랑이 된 반면, 발랄하지만 엉뚱한 둘째 은명은 ‘사고뭉치’로 자라났어요.
함께 사업하던 친구가 전당포 물건을 들고 도망치면서 급기야 은명은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하는데요. 이때 은명이 오랫동안 숨겨왔던 본심을 면회를 온 부모에게 드러냅니다.
‘편애는 진짜 치사한 거야. 차라리 안 사랑하는 게 낫지. 덜 사랑하는 건 진짜 치사해.’
언뜻 누나를 향한 자격지심과 처한 상황에 대한 분노가 엉뚱하게 튄 것처럼 보이는데요. 하지만, 이 말에는 오래 참아온 은명의 지독한 목마름이 묻어있어요.
물기 없는 말이 은명을 허기져 자라게 했다
은명은 삼 남매 중 둘째예요. 서울대 갈 만큼 똑똑했던 누나와 사고로 죽은 동생 사이에서 비교는 일상이었고, 애도는 길어졌어요. 어린 은명은 동생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느낀 채 방치되기도 하고, 동생 기일 3일 전인 은명의 생일은 매년 축하받지 못한 채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경제적으로 힘에 부치는 부모님을 보며 자란 은명에게 효도는 곧 돈이 되었어요. 공부로는 누나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판단이 ‘한 방’을 좇는 계기였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방식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결과가 가져다줄 가족의 애정과 행복이었을 거고요.
함께 빨래를 개던 손, 애교 섞인 말, 호강시켜 드린다는 약속. 삶의 무게를 간신히 버티던 애순과 관식은 이런 은명의 다정함과 신호를 눈치채지 못한 셈이에요.
같은 집 그리고 다른 환경
<정상이라는 환상>의 작가이자 캐나다 의사인 가보 마테는 말했습니다. 모든 자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란다고요. 같은 집, 같은 부모 아래에서도 순서에 따라 경험과 기대가 달라지고, 개인의 기질과 관계 속 역할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첫째는 한때 부모의 관심의 100%를 독점하지만, 바뀐 관계에 적응해야 하고, 둘째부터는 필연적으로 분산된 관심을 받고 자라는 것처럼요.
의도가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부모에게 악의가 없더라도, 반복된 반응과 온도가 아이에게는 삶의 기준이 되곤 합니다. 특히 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가정에서는 그 차이가 더 또렷해지죠. 지원의 방식, 타이밍, 규모의 미묘한 차이가 아이에게 ‘선택되지 않음’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편애와 소외감이 남긴 것
가정은 아이에게 가장 안전해야 할 장소예요. 그래서 그 안에서 경험한 소외는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합니다. 비교는 습관이 되고, 호의는 생존 전략이 되는 거예요.
✔️ 낮은 자존감
✔️ 지나친 인정 욕구
✔️ 무력감과 과잉된 노력
어떤 아이는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무리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누구에게나 쓸모 있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겉으로는 잘 적응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오랫동안 허기에 시달린 어린아이가 남아 있어요.
불공평하게 공평한 부모의 사랑
금명과 은명은 다른 아이예요. 태어난 순서, 성별, 성취 방식과 삶의 리듬까지. 같은 집에서 자라나 수없이 비교되지만, 결국은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개별적인 존재들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고 싶은 것처럼, 아이도 부모에게 ‘우리 중 누가 더 좋아?’라는 질문을 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어요. ‘모두 똑같이 사랑한다’라는 말이 항상 충분한 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쩌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같은 양의 사랑이 아니라, 나를 위해 조정된 시선과 나에게 맞춰진 방식으로 전달된 확신일지도 몰라요. 사랑의 공평함은 양이 아니라, 각자에게 다르게 닿는 방식 속에서 비로소 느껴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