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옆에 ‘무쇠팔’ 양관식이 없다면

나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단 한 사람

by Light Life

지난 연휴에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를 정주행 했어요. 그리고 그 후폭풍은 제법 오래 남았습니다. 3대에 걸친 인물의 삶과 관계가 촘촘히 얽혀서 한동안 생각과 감정을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tempImage6ssYEY.heic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이 시리즈를 먼저 본 주변에서는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거나 ‘부모님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며 추천했는데요.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 오애순, 그리고 무쇠처럼 성실한 양관식. 이 두 사람이 끌어가는 이야기가 저에겐 서로의 삶을 떠받치며 만들어가는 판타지로 다가왔어요.


서로의 안전 기지가 되어줄 것

결혼식 주례에서 흔히 등장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겠냐’ 거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로 사랑하겠냐’는 말입니다. 여기서 사랑을 단순 끌림이나 성애적으로 해석한다면, 대부분의 답은 ‘아니요’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애순과 관식의 관계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과 자식을 잃는 사건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들의 사랑이 이해와 지지를 기반하고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tempImageXoIHfp.heic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영국 의사 존 볼비는 인간에게 정서적 유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전 애착 이론’을 통해 설명했습니다.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맺을 때 사람은 더 자유롭게 탐색하고, 더 잘 회복할 수 있다고요. 이 이론은 주로 부모(양육자)와 아이 관계에서 설명되죠.


하지만,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무쇠팔’ 관식이 애순에게 그 ‘안전 기지’ 역할을 해줍니다. 관식은 애순을 성장 배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고 꿈꾸는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어른들의 반대를 이길 수 없을 땐, 서로만 믿고 야반도주를 했고, 아이를 잃은 슬픔 앞에서는 누구를 탓하기보다 묵묵히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애순이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어촌계장직에 도전하고, 시인의 꿈까지 이룰 수 있었던 것이 개인의 의지만으로 가능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다시 일어설 힘은 심리적 안전망에서부터 자라니까요.


작은 애정의 반복이 만든 해피엔딩


애순과 관식의 딸, 금명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이런 독백을 남겼어요. 남녀가 겸상하지 않던 시대에 관식이 반 바퀴를 돌아 애순과 금명의 옆에 앉은 장면이었죠. ‘아빠는 아빠의 전쟁을 해냈다. 절대로 엄마 혼자 전장에 두지 않았다.’


애순과 관식의 관계는 거대한 사건 하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사소한 장면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졌어요.

보고 배운 것이 없어 불안하다는 예비 엄마 애순에게 ‘넌 다 잘한다’고 표현한 믿음. 수십 년 동안 애순을 위해 하나씩 사다 준 머리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를 타러 가는 책임감. 관식의 일관성과 반복이 애순에게 든든한 ‘백업’이 되었을 것 같아요.


tempImage3ciUz4.heic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일터에서 관식이 부당한 일을 당하자, 애순이 만삭의 몸으로 뛰어간 장면. 시장에서 생선을 손질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나눠진 시간. 애순 역시 옆을 항상 지켰기 때문에, 긴 시간 헌신한 관식의 삶이 외롭게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옆에 양관식과 오애순이 없다면


이런 관식과 애순의 관계는 무척 따뜻하지만,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이 아니라 뇌의 작동 방식에 있습니다. 사람의 뇌는 생존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정보를 더 크게 인식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상처받거나 버림받을 가능성을 끊임없이 계산하고, 어렵게 쌓은 신뢰가 한순간에 휘청하기도 하죠.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양관식 같은 사람을 찾습니다. 동시에 그런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드문지도 알고 있죠. 그래서 결국 질문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특별한 사람과 관계가 아니라, 나와 상대를 위한 반복된 선택을 그리면서요.

나는 누구의 안전 기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나에게 양관식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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