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기억도 ‘집’이 필요하다

정서의 대물림을 그린 영화 <센티멘탈 밸류>

by Light Life

노르웨이 영화 <센티멘탈 밸류>가 개봉 39일 만에 7만 관객을 돌파하며 장기 상영에 들어갑니다. 낯선 언어, 다른 문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이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어떤 지점 때문이에요. 바로, 영화의 제목인 ‘센티멘탈 밸류’죠.

tempImagejh0mRh.heic 이 영화,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입소문을 타기도 했어요! (이미지 출처: 영화 <센티멘탈 밸류>)


금전적 가치와 상관없이 개인적 추억이나 감정이 짙게 배어 도무지 버릴 수 없는 것.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현재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종종 침범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사람이 태어나 처음 만나게 되는 가장 작은 사회, 가족 안에서 시작됩니다.



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애착의 대상이 되는 ‘센티멘탈 밸류’, 항상 아련하고 그리운 대상은 아니에요.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한 집은 100년 동안 구스타프 가족의 역사와 함께했습니다. 이 집은 그에게 두 딸과 추억을 쌓은 삶의 공간인 동시에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트라우마의 배경이에요.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떠나기도 했지만, 결국 상속받아 그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죠.

tempImagewnf4Lv.heic 집에는 가족의 흔적과 기억이 곳곳에 배어있어요. (이미지 출처: 영화 <센티멘탈 밸류>)


가족을 꾸리고 정착한 것도 잠시, 이혼을 계기로 다시 떠난 구스타프. 기이한 건 그가 집을 팔지도, 명의를 바꾸지도 않은 채, 아내와 두 딸이 살 수 있도록 그저 두었다는 점입니다. 15년 만에 아내의 장례식에서 재회한 두 딸에게 그가 꺼낸 이야기는 더욱 황당합니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로 그 집에서 영화를 찍겠다고 선언했거든요.



상처는 다음 세대의 언어가 된다


프랑스 심리치료사 앤 안셀린 슈체버거는 개인의 심리적 문제와 행동 패턴이 세대를 거쳐 대물림된 트라우마와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세대 간 외상 전이(Intergenerational Trauma Transmission)’라고 불립니다.


tempImageMk5zKl.heic 프랑스 심리치료사, 앤 안셀린 슈체버거


<센티멘탈 밸류>가 그린 대물림은 구스타프의 어머니인 카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카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하다 체포되어 고문받았던 저항군이에요. 전쟁이 끝나고, 카린도 가족이 있는 일상으로 돌아온 듯 보였지만, 그녀는 어린 구스타프가 외출한 사이 그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그녀의 부재는 구스타프 영화의 시대적, 정서적 모티프가 되어 그를 인정받는 감독으로 만든 동시에 삶의 전반에 나타난 불안, 방황, 중독의 원인이 되기도 한 듯해요.


문제는 구스타프의 트라우마가 다시 두 딸에게 대물림되었다는 것. 큰딸 노라는 무대 위에서 삶을 연습하는 연극배우지만, 막이 오르기 직전 엄청난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고요. 작은딸 아그네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 영화에 출연했던 찰나의 기억을 가슴에 묻은 채 언니에게 연락이 닿지 않는 날이면 불안을 안고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구스타프의 냉소, 노라의 분노, 아그네스의 슬픔은 모두 다른 형태의 고통이에요. 그러나 그 근원은 세대를 건너 계속 전달되었습니다.



감정을 담는 예술이라는 ‘집’


구스타프의 영화판 복귀는 순탄치가 않습니다. 노라에게 제의한 ‘어머니 역’ 캐스팅은 무산되고, 제작을 맡은 넷플릭스는 사소한 것까지 관여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만들어져야 했던 이유, 시나리오가 뛰어나서도, 무너진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영화가 감정과 기억을 담는 하나의 ‘집’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tempImageZygeM0.heic 영화감독 구스타프와 그의 큰딸 노라 (이미지 출처: 영화 <센티멘탈 밸류>)


정신분석학자 도날드 위니캇은 예술을 ‘중간 공간(Transitional Space)’라고 불렀습니다. 구스타프는 영화란 공간 안에서 비로소 트라우마를 언어화하고, 안전하게 마주할 기회를 갖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자신이 상처를 물려준 사람들과 함께였을 뿐이죠. 노라가 울면서 필요하다고 외친 ‘집’, 역시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나 가족이 아닌 이 ‘중간 공간’로 보이고요.



다음 세대에 넘기지 않겠다는 선택


돌고 돌아 결국 구스타프, 노라, 아그네스의 아들인 에리크는 가족 역사를 영화라는 ‘중간 공간’을 통해 새로운 챕터로 넘기는 작업을 함께하게 됩니다. 상대의 감정에 완전히 흡수되거나,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워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요.

세대 간의 분화는 흘러들어온 상처의 정체를 마주하고, 여기서 멈추겠다 선택하는 데서 완성됩니다. 그것은 개인의 심리적 성장일 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윤리적 행위예요.

구스타프가 카메라를 들고 그 집으로 돌아간 것처럼, 가장 아픈 곳을 직시하는 일은 때로 가장 용감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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