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의 봄을 맞이하며

수원삼성 경기 관람기

by 파인

지난 주말, K리그 개막 이후 두 번째로 수원 월드컵 경기장을 찾았다. 어느덧 K리그 2부 붙박이(?)가 된 수원삼성은 이번 시즌 이정효 감독 영입 이후 팬들도 선수들도 이미 승격한 것 같은 흥분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K리그를 오래 봐왔지만 딱히 응원하는 팀은 없었던 나도, 광란의 개막전을 직관한 이후 이번 시즌은 파란 유니폼을 사볼까 마음이 동하는 참이다.


어쩐지 소풍 가는 기분으로 김밥을 샀고, 파란 옷을 입은 무리에 휩쓸려 경기장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지난 경기보다 푸릇하게 잔디가 올라온 그라운드를 보며 어찌어찌 또 봄이 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관람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좌석 양 옆으로 성인 아들과 중년 어머니 조합의 관객이 앉았던 점이다. 축구장엔 워낙 다양한 관객들이 있지만, 흔하지 않은 조합이었기 때문에 혹시 선수 가족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들이 외투를 벗고 유니폼을 드러내었을 때, 우렁찬 목소리로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유니폼을 입고 풋살장에 갈 때마다 느꼈던 불편한 시선들을 나도 모르게 똑같이 시전 했던 것 같아서 머쓱하게 김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그녀들의 응원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큰소리로 심판과 상대 선수를 욕하기도 하고 아쉬운 순간마다 비명을 질렀다. 온몸을 흔들며 응원을 하고 발을 구르고 골을 넣었을 때는 펄쩍 뛰며 나의 팔을 잡기도 했다. 솔직히 서포터스 석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들의 요란한 응원은 그 구역에서 조금 튀었다. 그러나 경기가 진행되고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나는 점점 웃음이 나왔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그깟 공놀이에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그녀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파도타기가 시작되자 소녀처럼 꺄르륵 웃어대는 그녀들 덕분에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1미터 정도는 점프하며 열정적으로 파도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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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은 그날 3연승을 달성했다.(오늘 기준 4연승...왠열...) 2개의 골을 넣으며 도파민을 준 것은 선수들이었지만, 봄볕 같은 따뜻한 행복을 준 것은 관객들이었다. 홍익인간 정신으로 구단을 가리지 않는 K리그 팬으로서 수원의 흥망성쇠를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본 바, 한결같은 감상은 선수들에게 과분한 서포터스를 가진 팀이라는 것이었다. 전국을 소떼처럼 몰려다니며 지역 경제를 살릴 정도로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그 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다소 아쉬운 구단과 선수단이었다.

산뜻하게 시작한 만큼 올해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는 팀이 되어주길. 소녀 같은 그녀들도, 목석같은 나도 내내 웃음 지으며 경기를 볼 수 있도록 더욱 힘을 내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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