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10년 만의 여행

by 파인

엄마와 단 둘이 떠나는 해외여행은 이번이 3번째였다.

첫 번째는 대학교 휴학이 끝나기 전 알바하고 모은 코 묻은 돈을 가지고 으스대며 떠났던 방콕이었고, 두 번째는 결혼을 앞두고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떠났던 하노이였다. 그리고 이번엔 별 이유는 없었다. 남은 연차를 소진해야 했고 가까운 해외라도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 나랑 둘이 여행 갈래?


가볍게 던진 말에 엄마는 20년 전 태국의 해변은 얼마나 평화로왔는지, 10년 전 하노이 여행에서 샀던 캐리어가 얼마나 튼튼한지,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베트남을 많이 가는지 각가지 에피소드를 쏟아내었고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들뜸이 그대로 전해졌다. 진작에 한번 갔다 올걸 하는 머쓱한 마음으로 비행기 표를 급하게 알아봤고, 준비할 시간이 많이 없었기에 여행지는 경기도 나트랑시로 정해졌다.


평소 여행사는 절대 안 끼는 스타일이었지만 이것은 이미 나의 여행이 아니었다. 최근 몇 년간 패키지여행만 다니는 엄마에게 자유여행의 즐거움을 보여주고 싶었고, 10년간 다방면으로 발전한 장녀의 성장도 증명해야 했다. 여행사에게 자유여행으로 갈 수 있는 최적의 코스와 필요한 예약들을 문의했고, 패스트트랙부터 호텔 픽업, 가장 인기 많은 리조트, 체크아웃 투어까지 든든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희생의 끝판왕 마음으로 전날 업무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부산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둘 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많이 떠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 엄마가 힘들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망할 전쟁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되거나 취소될 것 같은 불안함... 여행에 대한 기대나 설렘을 앞서는 이런저런 생각들에 마음이 복잡했다.




6시간을 날아 리조트에 도착했을 때는 낮 12시쯤. 출발 직전까지 연착될까 봐 조마조마했던 악명 높은 비엣젯은 의외로 정시에 출발했고, 자리까지 널널해서 눕코노미의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패스트트랙 덕분에 줄도 안 서고 빠르게 입국했고, 호텔 픽업 기사도 바로 만날 수 있었다.

가장 걱정되었던 리조트까지의 모든 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엄마의 컨디션은 좋았고, 바람은 선선했고 리조트에서 보이는 바다는 눈이 부셨다. 맛없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생강맛 웰컴 드링크도 꿀 맛일 정도로 마음이 놓였고 그때부터 나의 진짜 휴가도 시작되었다.



이번 여행의 숙소는 '아미아나 나트랑 리조트'였다. 나트랑 예약을 준비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최소 한 번쯤은 방문을 고민하는 필수 코스 같은 장소이기 때문에 퀄리티는 걱정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잘 한 선택이었다. 가격, 위치, 룸 컨디션, 부대시설, 음식 등 모든 부분에서 여태 다녔던 그 어떤 리조트들보다 높은 점수를 줄만한 수준이었고 여행 내내 역시 한국인 픽은 이유가 있다며 박수를 쳤다.


리조트를 예약하며 가장 기대했던 것은 스노쿨링이 가능하다는 프라이빗 비치였는데, 최근 1년간 열심히 수영을 배운 엄마를 위한 선물이었다. 20년 전 호핑투어를 갔다가 코창의 깊은 바다 한가운데 덜렁 던져졌을 때, 엄마는 겁이 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바닷속으로 얼굴 한번 담그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푸른 나트랑 바다에 망설임 없이 뛰어든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수영을 했고, 수많은 물고기들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구명조끼를 챙겨 입고도 모래 바닥에서 발이 떨어지면 소리를 질러대는 나를 끌고 가며 힘을 빼라고 이리저리 훈수를 뒀다. 여전히 겁쟁이인 본인은 물개 같은 엄마의 바다 수영 데뷔전을 영상에 담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었다.



자유여행은 지겨울 것 같다던 엄마는 리조트에 있는 동안 그 누구보다 시간을 알차게 썼다. 새벽같이 일어나 바닷가의 선베드에서 책을 읽었고, 밤에는 집에서 하던 것처럼 경전을 읽고 108배를 했다. 조식 뷔페에서는 얼마나 궁금한 음식이 많은지 몇 그릇이나 깨끗이 비워냈고, 더운 날씨에 지저분하고 요란한 거리도 흥미롭게 돌아보며 힘들다는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내가 없는 사이 방문한 리조트 직원에게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가며 상황을 잘 설명했다고 자랑하는 엄마를 보며,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걱정을 하고 여행을 시작했는지 깨달았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 부지런히 달리는 지난 20년 동안 사실 엄마는 더 많은 것을 해치웠다. 본업은 한 시도 쉬지 않으면서 바람 잘날 없는 집안의 대소사를 나서서 처리했고, 사이버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를 배우고, 주말엔 농사까지 지었다. 여유만 생기면 나는 멀어서 엄두도 못 내는 먼 나라들을 로밍도 하지 않고 돌아다니다 왔다. 춤을 시작하면 공연까지 했고, 공부를 시작하면 자격증을 땄다. 장성한 자식들을 내보내고 자유를 얻은 엄마는, 그저 집과 회사만 반복하는 딸린 자식도 없는 내가 자유 여행 몇 번 더 했다고 으스댈 깜냥이 아니었다.




엄마는 여행 내내 처음 해보는 것이 많아서 행복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휴양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 워터파크에서 미끄럼틀을 타는 것, 젊은 사람들이 많은 핫한 맛집에 가는 것 모두 나와 함께 해서 할 수 있었다고 고맙다고 했다. 힘든 건 없었냐는 말에 불평하면 또 안 데리고 올까 봐 참았다며 웃었다.


20년전, 10년전, 불평도 걱정도 많은 당신의 어린 딸이 낯선 여행지에서 즐기지도 못하고 종종거리는 모습이 당연히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또 잘 해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잘 알기에 그냥 보고 있었을 것이고 또 다시 여행을 가지고 선뜻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고맙다고 생각하며, 또 미안하다고 생각하며-


긴 세월 우리는 너무 닮아서 많은 말을 속으로 삼켰다. 서로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기대지 않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가까운 것 같았는데 또 너무나 멀었다. 엄마에게 어느덧 첫 여행을 함께 갔을때의 본인만큼 나이가 먹은 딸과의 이번 여행은 어땠을까? 나는 꽤 좋은 여행 메이트 같았는데,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처럼 또 열심히 살다가 좋은 곳에 가보자고 조금은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 여행에서는, 조금 더 편하게 기대도 되는 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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