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서 개발자가 되었습니다.

비개발자의 클로드코드 일주일 체험기

by 파인

웹소설에는 '이세계'라는 인기 장르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이 다른 시대로 흘러 들어가 빙의나 환생을 통해 강력한 능력을 갖게 되는 판타지물이다. 클로드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지난 일주일, 나는 마치 이세계로 텔레포트된 느낌이었다.


클로드를 써봐야겠다 마음먹은 것은 어쩌면 오기였다. 어느 순간 회사의 모든 개발자들은 클로드를 입에 달고 살았고, 사내 외에서 공유되는 AI 관련 최신 정보와 놀라운 작업물들은 모두 클로드를 통하고 있었다. IT 종사자로서 화제가 된 작년부터도 써볼 만했지만, 채팅창 형태의 GPT나 제미나이와 달리 개발자들이 보는 클로드 화면은 내가 극혐하는 터미널이었다. 개발에 최적화되어 있다는데, 내가 개발을 할 것도 아닌데 왜 배워야 하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피할 수 없었다. 협업자로서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야 했고, 아는 척을 하고 싶었다.


| 도구를 얻자 아이디어가 쏟아졌습니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기본 개념을 익혔고, 처음엔 그나마 익숙한 형태인 클로드 데스크 앱의 채팅창과 마주했다. 누르스름한 배경의 대화 입력창을 한참 들여다보며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며칠 전 기억을 짜내며 혼자 정리했던 회의록이 떠올랐다.

“요구사항이나 아이디어를 쌓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 물어볼 수 있는 앱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덜렁 한 줄을 던졌다.


그리고 정확히 30분 뒤, 구글 제미나이 API가 연동된 데스크탑용 음성 메모 앱이 탄생했다. 회의를 녹음하면 AI가 요약해서 정리해 주고, 별도의 대화창을 통해 메모 내용도 물어볼 수 있는 심플한 앱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기능만 갖추고, 돈도 들지 않고, 디자인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앱 이름이 'PINEMYNOTE'인 내 손으로 만든 첫 앱이었다.

image.png 볼수록 디자인은 별로긴한데, 왠지 그냥 기념으로 유지하고 싶다


불을 발견한 원시인처럼 신나서 이리저리 써보던 나는 곧바로 클로드가 시키는 터미널 실행조차 귀찮아졌고, (정확히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클로드 코드에 접속하며 진정한 이세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클로드 채팅이 내가 정보를 가져다줘야 움직이는 조수라면, 클로드 코드는 시스템을 직접 들여다보며 서비스 상태와 오류를 스스로 파악하고 행동하는 동료에 가까웠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어보는 삽질 과정 없이 모든 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비로소 진짜 이세계에 입성한 기분이었다.


그 뒤로 짬짬이 업무에 필요한 사내 메신저 봇들을 빠르게 만들었다. 팀 예산 관리 툴이나 모니터링 툴처럼, 예전 같았으면 개발자들에게 "이런 기능 있나요?" 물어보고 없다고 하면 그냥 포기했을 소소한 요구사항들을 큰 시간을 들이지 않고 직접 해결할 수 있었다. 클로드를 접하기 전 나는 만들고 싶은 게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전제했기 때문에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퇴근 후에는 만든 앱들의 퀄리티를 높이는 방법과 오락용 앱 개발을 고민했고, 연이어 DB가 연동된 iOS 메모 앱과 Y2K 컨셉의 맥북 포토부스 앱이 탄생했다. 새벽까지 노트북을 부여잡고 잠도 안 올 만큼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아이디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 그래서 이세계에서 부자가 되나요?


그렇지만 역시 이세계에서도 개발자 데뷔는 쉽지 않다. 개발자 계정이나 서비스 운영 비용도 문제지만, PM 업무를 수행하는 기획자로서 서비스 오픈에 필요한 수많은 관문들을 알고 있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디자인 저작권부터 QA, 법무 검토, 개인정보 검토, 보안 검수, CS 처리까지 — 잠깐만 생각해도 정 떨어지는 과정들을 이겨내며 이 허접한(?) 앱들을 고도화할 것인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애초에 클로드를 시작한 것도 서비스의 직접 생산자가 되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기에, 지금은 거창한 꿈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업무 효율을 높이는 방법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웬만한 코딩 및 기획 작업이 클로드 혹은 더 발전된 AI로 대체되는 세상에서 기획자와 개발자의 구분은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진 AI가 있는 이 세계에서 서로의 밥그릇을 빼앗겠다고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험한 세상, 생존을 목표로 하는 동료로서 동질감을 갖고 좋은 도구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서비스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협업 고민과 노후 대비는 별개이니까...


나처럼 막연하게 개발이 두렵게 느껴졌던 분이라면, 지금 당장 채팅창에 "사주 앱 만들어줘"라고 쳐보시길. 생각보다 빠르게 꿈만 꾸던 이세계로 입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그라운드의 봄을 맞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