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두려웠던 나 2
고등학교 2학년때 5분 거리에 있는 남고로 가서 글을 배우는 수업이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활동을 신청한 나의 기대감은 일주일 만에 무너져 내렸다. 토론하는 분위기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비평이 필요한 수업이기에 받아들이자 마음을 먹고 들어갔다. 그런데 비평보단 강사님의 의견에 치우쳐지는 분위기였다. 수업교실 속 공기는 점점 내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고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으로 객관적이라고 설득시키는 강사님의 말씀을 더 듣고 있긴 벅찼다.
또한 중학교 1학년때 나를 좋아했던, 반에서 은따를 당하고 있던 나를 방관했던 아이와 얼굴을 마주하여 수업하는 게 숨구멍을 막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첫날 수업을 들었을 땐 그 아이가 있는지 몰랐다. 모르는 상태로 다음 과제를 하게 되었다. ‘각자 중학생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써보세요.’ 중학생 때 2/3는 고통 속에 살았던 나는 기억에 남는 이야기라곤 오해와 갈굼이었다. 그 고통을 다시 꺼내기엔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따 당한 이야기를 자세히 전하긴 두려워 간단한 묘사만 했던 나는 다음날 수업에서 온갖 비평에 대상이 되었다. 안 좋은 평가도 좋은 말과 함께 건네었던 난 마땅한 이유가 없는 비평을 받아들이기 버거웠다. 나를 좋아했던, 방관했던 그 아이는 유독 공격적으로 내 글을 지적했다. ”너무 본인 생각만 쓴 거 아닌가? “
(내 생각을 써 보는 과제였다) , ”비유가 재미없다. “ (망할 자식. 본인이 글을 잘 썼으면 모르지만 내 글보다 훨씬 재미없었다.)
또 강사님은 종교가 있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일까 꼭 내 앞에서 내가 믿는 종교를 욕하셨다. 비아냥 거리듯 “뭐 그것도 종교 관련인가~?” 말하셨고 나와 다르게 종교를 싫어하는 아이에겐 매시간 칭찬을 해주셨다.
점차 나는 수업의 의미를 잃어가게 되었다. 글만 읽고 오가야 하는 평가는 사심이 담겨 변질되기 시작했고 글의 흥미를 떨어지게 만드는 지경까지 갔다. 그렇게 수업 포기를 신청한 후 나는 조금의 여유를 되찾았다.
그만두는 날 내가 쓴 구절 중 하나가 실현되었다.
‘알고 있던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모르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치유되기도 한다.‘라는 구절이었다. 포기를 결심한 날 글을 쓰고 내려가는 나에게 남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항상 힘내렴!” 내가 지쳐 보여 그러신 건지 갑자기 위로를 해주고 싶으셨던 건지 모르겠지만 짧고 힘찼던 다섯 글자가 나의 상처를 아물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