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이후의 우리에게

by 정세훈

말은 늘 늦게 도착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마음을 붙잡으려는 듯, 이미 식어버린 온기를 되살리려는 듯, 말은 늘 조금 뒤늦게 나온다. 그래서 어떤 말들은 끝내 닿지 못하고 공중에 흩어진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 속에도, 말보다 더 정확한 마음이 숨어 있다고. 우리가 서로를 이해했던 순간들은 어쩌면 말이 아니라, 그 말의 여백 속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다시 마주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서로의 상처와 고요, 그리고 지나간 시간들까지 함께 담을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다른 언어로 같은 마음을 헤매게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믿고 싶다. 우리가 이야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칼비노가 말한 것처럼,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있다는 건, 아직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라면, 우리에게는 여전히 가능성이 남아 있다. 어쩌면 그 가능성은, 아주 조용한 문장 하나, 아주 짧은 인사 하나로 시작될 수도 있다. “잘 있었어?”라는 말 안에, 세상의 모든 생존이 담겨 있는 것처럼.

나는 언어가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말이 사람을 바꾸고, 이야기가 세상을 움직인다.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닮아가고, 결국엔 같은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건 결코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아주 작은 이해와 기다림의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오늘 나는 또 한 번 기다린다. 내 인생을 걸 만한 단어를.

그 단어를 통해, 우리가 다시 이어지기를.

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되고, 나의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로 스며드는 그 순간을.

그리고

: ”다음번에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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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소리 주머니는 진동만을 뽐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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