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 나와 마주하는 순간들의 기록
나를 처음 마주하는 고요한 시간...
차 보조석에서 부푼 배를 조용히 부여잡고 앉아 있는 그녀의 나이는 스물넷이었다.
어린 나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감내했고, 어른이라 부르기엔 아직도 서툴고 여린 나이.
몸속에 또 하나의 생명을 품고, 아이가 자라가는 움직임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어느 날이었다.
누가 봐도 아기가 아기를 가졌다고 보던 앳된 모습의 그녀의 배는 이미 부풀 대로 부풀어 있었다.
허리는 무거웠고, 오래 앉아 있기엔 불편한 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짓눌렀던 건, 신체적인 무게가 아니라, 그날 차 안에서 흘러나온 말들이었다.
흥분한 채, 운전석에 앉은 이는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녀가 결혼 후, 따로 살아 온 그와의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보다도 더 멀게 느껴졌다. 그날 그녀의 아버지는 쉼 없이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온통 과거를 향해 있었고, 주된 대상은 그녀의 어머니와 여동생이였다. 비난과 원망, 욕설, 씻기지 않은 감정들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부푼 배는,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곧 태어날 외손주도, 임신한 딸의 불편한 자세도, 스물넷이라는 아직 여린 나이도, 그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좁은 차안의 보조석에서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는 말없이 듣고만 앉아 있었다. 배는 단단히 당겨왔고, 자세는 점점 힘들어졌다. 숨도 편히 쉬기 어려웠지만, 그보다 더 괴로웠던 건, 그 공간 안에서 존재 자체가 투명해진 듯한 외로움이었다. 그저 한 손으로 배를 감싸 안고, 표정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그녀 또한 그 순간만큼은 본인이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아버지가 쏘아내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향한 온갖 욕설은 마치 그녀 자신을 향한 것처럼 들려왔고, 칼날처럼 그녀를 베어내 자신까지 부서지는 기분을 조용히 삼키며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않고 듣기만하는 2시간 남짓의 시간들이 몇 해보다 길게 느껴졌지만 단단히 귀를 닫고, 몸을 웅크리는것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날 이후, 그 기억은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걸 잊게 해준다고 말하지만,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해지고, 어떤 상처는 덮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남는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그날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 마주하고 있다. 그때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날, 네가 참아낸 시간은 작지 않았어. 정말 잘 견뎠어.”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감추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날처럼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자신의 삶을 써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녀의 글을 마주한 누군가가 자신의 오래된 아픔을 떠올리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녀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