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서리에 서 있다

조용히 사라진 아이

by 해온


사람들은 지금의 그녀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 같아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그녀는 조용해졌고, 말수가 줄었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 어색해졌다.

세월이 흘러 그저 나이가 들어가면서 불필요한 말들은 줄고, 감정 표현이 덤덤해 지는건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현상인 줄 알았다. 어린 시절의 생기나 분주한 감정들은 조금씩 사그라들고, 어른이 된다는 뜻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어느 날, 혼잣말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땐, 나도 잘 웃었는데…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건지 기억도 안나네…'


사실, 그녀는 그런 아이였다. 어디서든 소극적이지 않았고, 도전 앞에 주저하지 않았으며, 자기 생각을 똑부러지게 말할 줄 알았다. 학창시절 친구도 많았고, 무리 안에서도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오지랖이 많아 누군가를 챙기거나 앞장서는 일에도 익숙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재간둥이라는 말을 들을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스타일이 아니였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뿌듯했다. 그 시절의 그녀는 자신이 좋았다. 자기 말투도, 성격도, 웃을 때 입이 짝 벌어지는 모습까지도. 인서울 대학엔 가지 못했지만, 적당히 공부도 잘했고, 적당히 주목도 받았고, 적당히 중심에 설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적당함’은 평범함이 아니라 균형이었다. 지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게 스스로를 다루는 법을 본능처럼 알고 있던 시절.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아이는 사라졌다.


조금씩 말이 줄었고, 목소리는 낮아졌으며, 사람들 속에서도, 자신 안에서도 자꾸만 흐릿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소리를 내어 웃은 날이 언제였는지 가끔 그녀는 생각을 해본다. 문득,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 본 적이 있다. 그날따라 마흔이라는 나이에 들어서서 조금씩 짙어지는 주름도, 피부톤도, 한창 관심이 갈 피부의 탄력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눈에 들어온 건 단 하나, 익숙하지만 낯선 표정 없는 얼굴이였다.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얼굴…


감정을 숨긴 것이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정말로 감정이 사라진 듯한 얼굴.

그녀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익숙하지만, 낯선 사람 보듯이. 혹은 자기 자신을 다시 알아보려는 사람처럼.


찬란하게 빛나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생기 넘치게 운동회를 이끌던 아이, 반장 선거에서 손을 번쩍 들던 아이, 친구들을 챙기며 스스로도 반짝이던 아이. 그녀는 이제 알게 되었다. 그 아이는 사라진 게 아니라,

단지 조용히 안쪽으로, 아주 깊은 곳으로 숨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사각형의 가운데가 아니라 모서리 어디쯤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중심을 향해 움직일 때, 그녀는 늘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는 애써 중심을 바라봤고, 모서리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꼭 붙잡아야 했다.

언뜻 보기엔 평온하고 차분해 보일지 몰라도, 사실 그녀는 늘 흔들리고 있었다. 겉으론 고요했지만, 안쪽은 늘 위태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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