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누르는 그림자
지금의 그녀처럼, 그 시절 엄마도 언제나 가정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욕심이나 바람 같은 건 오래전에 접어버린 사람. 살갑게 애정을 표현하진 않았지만,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늘 그녀와 여동생이 집에 돌아오면 웃는 얼굴로 맞아주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손길에는 언제나 말 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 조용한 손길로 가정을 붙들던 엄마는, 그녀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작고 왜소한 몸으로 우리를 끌어안고 버티던 존재로 남아 있다. 그날도 엄마는 방금까지 집안일을 했던 듯 평범한 차림이었다. 수수한 티셔츠에 통 넓은 바지. 누구나 그 시절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쳤을 법한, 그렇게 평범한 주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평범함은 깨져 있었다.
쥐어뜯긴 듯 엉킨 굽슬머리, 억지로 잡아당겨져 늘어난 티셔츠 목덜미, 울다 지친 얼굴과 붉게 부은 눈. 그 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입술 끝은 떨리고 있었지만, 무언가 말하고 싶어도 말을 꺼낼 수 없는 얼굴. 아니, 말하지 않기로 다짐한 사람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화가 날 때마다 사람이 달라졌다. 눈은 핏줄로 충혈돼 흐려졌고, 얼굴은 무언가에 들끓는 듯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번들거렸고, 그 눈빛은 사람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눈앞의 모든 존재를 적으로 여기는 듯했다. 엄마를 향한 그 눈빛에는 오래된 불만과 원망이 뒤엉켜 있었고, 감정의 브레이크 없이 한순간에 터져나오곤 했다. 어린 그녀가 보기에도, 그 얼굴에는 어떤 이성도, 멈춤도 없었다. 그건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분노 그 자체였다. 폭력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공간 전체가 공포로 잠식돼 있었다. 집 안을 쿵쿵 울리는 발소리, 무겁게 깔리는 숨소리, 문을 내리치는 소리 하나하나가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아버지의 손끝에서 엄마는 그날도 끌려 다녔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무기력하게 흔들리는 몸. 저항도, 비명도 없이 그저 휘청거릴 뿐이었다. 어린 그녀가 보기에도, 그건 답답하리만큼 조용하고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늘 “방에 들어가 있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죽은 사람 같은 얼굴로 끌려다니는 엄마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그건 보기 힘든 장면이었고, 감당하기엔 너무 큰 현실이었다.
그녀와 여동생은 방 한 구석에 웅크린 채 발끝만 동동 구르며 숨죽였다. 어른들의 세계는 너무 크고 무서웠고, 그 안에서 아버지는 거대한 존재였다. 한 마디 말, 한 번의 움직임에도 공기가 얼어붙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여동생을 부둥켜안은 채, 그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뿐이었다. 도망칠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공포로 몸과 마음이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동생은 작고 어렸으며, 엄마는 늘 상처투성이였다. 그녀는 두려움도, 분노도, 눈물도 모두 안으로 눌러 담았다. 그래야 그 자리에서 버틸 수 있었고, 그래야 엄마와 여동생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도 그날의 냄새를 기억한다. 감정이 썩어가던 그 냄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