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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y 24. 2023

나에게 자비를 허하노라.

자기효능감보다는 자기자비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브런치에 오랜만에 들러 글을 쓴다. 글을 써야 하는데 생각만 하다가 두 달 가까이 글을 쓰지 못했다. 너무 바빴다면 핑계일까.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하고 있는 일들은 계속 현재 진행형이기에 조금 더 선명해지고 결정이 확실해지면 이에 대한 이야기도 브런치의 글들로 풀어내 보고 싶다. 어쨌든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나와 우리 가족의 생활에 변화를 줄 것 같기에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던 나와 남편의 미래는 마치 정해진 것 마냥 보였다. 팀장 승진을 앞두고 있던 대기업 연구원, 교장 승진 준비가 잘 되고 있던 초등 교사, 앞으로의 미래는 우리 모두가 예상한 대로 펼쳐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 번뿐인 인생, 외국에서도 살아보자. 마흔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우리 부부는 미국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너무 용감했고 다소 무모했다. 남들을 쉽게 설득하기는 힘든 결정이었다.


나는 나대로 교육 분야에서, 남편은 남편대로 공학 분야에서 각자 오랜 시간 공부를 했기에 우리 두 부부의 자기 효능감은 높은 편이었다. 안정적인 삶과 전문적인 직장생활을 꿈꾸며 각자의 분야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전공 관련하여 주변의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는 데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할 때 시간에 늘 쫓겼을지언정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

너무 바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능력을 펼치고 있었던 한국에서의 삶을 접고 외국에서도 생활해 보자며 호기롭게 미국으로 왔다. 자기 효능감이 쭉쭉 높아져 가고 있었던 마흔 살의 어느 날, 우리 부부는 미국으로 이사를 왔다. 처음 적응기간에는 모든 것이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한 우리 부부의 미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겉으로 티를 많이 내지는 않았지만 우왕좌왕, 좌충우돌의 순간들이 참으로 많았다. 때론 좌절도 했고 왜 여기까지 왔을까 허무하기도 했다.


우리 아들 똘똘이도 적응하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 영어를 못 알아들어 울기도 많이 울었다. 다행히 지금은 학교생활 잘하고 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지만 처음에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적응기였다. 이제 똘똘이의 영어는 또래 아이들과 거의 같아졌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초등 고학년으로 향해가면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에 따라 한국어 공부 시간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는 것. 이제 한국어가 걱정이다.


한국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여기저기서 큰 문제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영어도 늘었고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등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도 사귀었지만, 부모님이 보고 싶고 형제자매들이 보고 싶은 마음을 대체할 순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로서 한국어 교사로서 미국에서도 최선을 다해 정체성을 찾아가며 살고 있지만 사십 년 동안 살았던 한국이 어떨 땐 꿈에 나올 정도로 그리워진다.


병원에 가는 것도 쉽지 않고 몇 시간씩 운전해서 한국 마트에 가는 것도 여전히 쉽지 않다. 사람 만나는 것과 운전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나지만 그것도 정도라는 것이 있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 내 능력에 대한 자신감 등 자기효능감이 젊은 날의 나에게 살아갈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면,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자기자비라는 생각이 든다. 자비(慈悲)는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자기자비(self-compassion)
타인을 가엾게 여기 듯 자신을 이해하고 돌보는 것

자기자비를 심리학적인 개념으로 처음 발전시킨 사람은 Kristin Neff라는 학자인데, 이 내용을 보는 순간 마음에 딱 와닿았다. 지금의 내게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 속에 있는 타인을 불쌍히 여기 듯 자신을 대하는 것. 힘든 마음이 들 때 자신을 비판하고 무조건적인 용기를 주기보다는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친한 친구를 대하듯,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고 격려와 지지를 해 주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보듬어 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서론으로 돌아가서, 두 달 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긴다. 괜찮다. '앞으로는 밀리지 말고 잘 써야지!'라고 하지 않으련다. 그저 다시 돌아와서 다행이다. 오랜만에 글을 쓴 나 자신이 대견하다. 나는 나에게 자비를 허락하려 한다.


힘들 땐 "너는 할 수 있어."보단 "많이 힘들었니? 좀 쉬어도 돼."

불안할 땐 "곧 이겨낼 수 있어."보단 "이해할 수 있어. 괜찮아질 거야."

우울할 땐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보단 "그랬구나. 토닥토닥,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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