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Feb 15. 2023

파이어족 아니고 파이어한 인생

Live a life on fire.

Set your life on fire, seek those who fan your flames. -Rumi-


미국에서 살면서 내 삶은 많이 변했다. 아마도 가장 큰 변화는 고정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 않고 정해진 사람만 만나 있지 않다는 것. 그렇다고 집에서만 지내고 있진 않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며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학생,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있. 그 사람들의 배경 너무나 천차만별이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미국으로 이사를 왔을 때 나의 기분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마치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한국에서 교육학 전공으로 박사까지 했고 점점 승진 점수도 많이 쌓여갔기에 다들 나를 보고 승진할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왜 교장이 되려고 해? 교장 되려고 박사까지 하는 거야? 등등의 질문을 이따금씩 계속 들을 수 있었다. 교장 승진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졸업을 했을 땐 교장이 꼭 되어야 해. 되어야 하고 말고. 김 선생이 교장 안 되면 안 되지!라는 이야기를 해 주는 분들도 있었다.

새는 알을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
알은 세상이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모두 세상을 깨야 한다.
헤르만헤세 <데미안>

나는 이런 기대와 예상을 깨고 다른 나라로 이사를 왔고 어느덧 6년이라는 시간을 살았다. 한국에서 교사로 일을  땐 정년 보장이라는 안락함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가끔 힘든 일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도 참아야 하는 일인지, 분노해야 하는 일인지, 명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 안의 세상이 전부였고 그 세계가 나의 모든 것을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돈, 승진 이야기할 때 나도 대세를 따라야 했고 따르는 것이 당연 보였다.


승진점수가 쌓여가면서 점점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 두 분에게 잘 보이고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부류들이 생겨났고 나는 그런 모습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잘 보이려는 사람 옆에는 더 잘 보이려는 사람이 나타났다. 치열한 경쟁의 끝판왕이 나타나야만 했. 냐하면 한 학교에서 교장이 줄 수 있는 '일등 수'는 단 한 사람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일등이 되기 위한 노력은 때론 전혀 교육적이지 않았다.


소수점 몇 점으로 승진의 당락이 결정되는 점수 체계 속에 나도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수한 인재(人材)가 너무 많은 현실은 학교를 인재(人災)의 현장으로 만드는 것만 같았다. 학창 시절, 상대평가와 비교가 나를 늘 들게 했는데 교사가 되고 나서도 과 점수의 경쟁은 끝없이 이어졌다. 남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기 성과를 낼 수 있고 돈이 되는 연구 과제만을 해야 하는 연구원의 생활에 지쳐갔다. 남편은 팀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지만 크게 동기부여를 받지 못했다. 우리들은 각자의 세계를 벗어나 보고 싶었고 그 마음이 지금의 모습이 되게 했다. 다른 나라로 이사를 온 우리 부부는 어찌 보면 한국의 기준에서도 벗어난 삶을 살게 되었다.


한 친구가 물었다. "혹시 너희 부부 파이어족? 그 연봉과 승진 자리를 놓고 미국으로 가다니!" 사실 파이어족을 할 만큼의 돈도 없고 관심도 없다. 단, 가끔 한국에서 받을 수 있었던 연봉을 생각하면 아쉽기는 했다. 한국에 있는 교사 친구들이 "나 장학사 되었어. 누군 연구사 되었어. 걔는 교무 하고 있고 몇 년 후면 교감될 거래." 등등의 소식을 들려줄 땐 굳이 듣고 싶지 않았다. '난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안락함과 정해진 길을 버리고 굳이 왜 왔지?' 미국으로 온 직후 한동안 나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이제는 이곳 생활에도 많이 적응했다. 다시 태어나느라 고생도 했지만 선택에 후회는 없다. 남편은 시 계약직 연구원에서 대학 교수 일을 하게 되었다. 노력도 많이 기울였고 운도 따랐다. 연봉도 오르고 연금도 생긴다. 참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알을 깨고 나온 남편에겐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고 새로운 세계도 펼쳐졌다. 나는 한국어전공을 바꾸 꾸준히 공부하면서 미국에 있는 많은 한국어 선생님들을 알게 되었다. 새로 알게 된 한국어 교수님의 소개로 얼마 전부터는 타토(STARTALK) 한국어 교 연수도 받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꾸준히 만나며 생활다. 오늘 오후에는 미국 대학생 몇 명 함께 한국어 을 하기로 했다.


It’s important to live a life on fire.
That is, live your life full of passion and excitement, enjoying all that you have and not worrying about any of the struggles that may disrupt your existence.


우리 부부는 파이어족을 꿈꾸지 않는다. 가장인 남편은 우리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있고 그 돈을 매달 쓰고 있다. 생활비며, 월세며, 여행자금 등등, 필요한 돈이 많다. 나는 주부로서의 역할을 통해 가정 경제를 이끌며 눈에 보이지 않게 돈 벌고 있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 상대적 경쟁이나 비교는 최대한 멀리 하려 한다. 계속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 것이다. 너와 나의 꿈과 열정을 힘껏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산다. 파이어족은 아니 파이어 인생하여!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은 헬조선인데 왜 돌아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