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억눌린 충동은 부정적인 영향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중략) 텔레비전에는 우리가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는 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연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그들은 마음껏 자기 재능을 뽐냅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슬슬 화가 납니다. 연기가 저게 뭐냐, 발연기다, 노래도 못하는 게 무슨 가수냐, 댄스가 아니라 에어로빅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채널을 돌립니다. 우리 마음속의 시기심은 우리가 사악해서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어린 예술가가 마음 저 깊은 곳에 갇혀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 자신의 예술을 시작하는 겁니다. “
김영하, <다다다>, 복복서가(주), 2021년, P444~445
나 또한 내면의 어린 예술가가 깊은 곳에 갇혀 있기도 하지만, 깊이 박혀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항상 집에서는 노래를 흥얼거리다 못해 악을 쓰며 노래를 불러 온 가족들도 싫어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집에서는 마음껏 노래 부르기(로 표현하고 소리 지르기가 더 정확한 표현)가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 오자,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노래방 가기를 즐겨했으며, 고등학교 때는 무슨 자신감으로 학예제 가요제에 참가한 적도 있었다.
춤 또한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그 당시 유행했던 곡 영턱스클럽의 '정'의 안무를 함께 연습했던 적도 있었고, 장기자랑으로 반 친구들과 룰라의 '3! 4!' 춤을 췄던 기억이 생생하다.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내 몸이 그때의 춤을 기억하는 걸 보면 당시에 꽤나 열심히 했던 모양이다.
나름의 재능과 열정으로 똘똘 뭉쳤던 그 어린 예술가는 지금 어디 갔을까?
그저 가볍게 놀이로 하던 예술을 성인이 되며 현실을 직시하면서부터는 그 일련의 예술적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졌고,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우리 마음속의 예술적 충동은 억눌렸을 뿐, 사라지지 않습니다.”
작가의 이 한 문장이 나는 너무나도 공감이 된다.
나는 여전히 가수들이 나오는 음악 프로그램을 한 번씩 보면 넋을 놓고 볼 때도 있고, 춤으로 겨루는 댄스 배틀 프로그램을 최근까지 완전히 몰두하며 시청했다.
그들의 놀라운 가창력과 춤사위는 단번에 내 눈을 사로잡는다. 물론 내가 그 분야에 관심과 흥미가 없다면 그냥 지나칠 장면 들이었겠지만, 한 때는 그런 예술적 행동들을 해왔던 나이기에 과거의 거침없고 당당했던 나에 대한 미련과 사라지지 않는 예술적 충동임이 분명하다.
“지금 당장 우리 자신의 예술을 시작하는 겁니다.”
나는 당장 어떤 예술을 시작할 수 있을까?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는 다행히 실천 중에 있다.
내 평생 가장 자신이 없었고, 여전히 자신이 없는 미술적 재능. 중학교 때 일주일에 고작 한 번이었던 미술 시간이 나는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미술 수행평가는 성적이 항상 저조해서 미술시간은 나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요즘은 내 평생 트라우마였던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정말 간단한 선긋기부터라도 배울 수 있는 미술학원이 있다면 언제든지 도전해 보고 싶다.
그리고 한때는 서예학원이 붐일 때가 있었다.
지금 와서 후회되는 일이라면, 그 당시 왜 엄마한테 서예학원을 보내달라고 말을 못 했는지 아쉬울 때가 많다.
최근에도 근처에 서예학원을 알아보기도 했었지만, 곧 이사를 앞두고 있어 새로운 곳에 적응 후에는 서예학원은 꼭 다녀보고 싶다.
먹물 냄새가 좋고, 한 글자 한 글자에 온 정성을 쏟아부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한자를 붓글씨로 써내려 가며 내가 그리고 있던 예술적 표현을 서예를 통해 승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