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아보카도

by 녹명

스르르...스윽...

제일 어두운 부분부터 색을 올리고 밝은 부분을 찾아가며 경계를 풀어주듯이...


집에 있는 과일, 야채 아무거나 가져오세요.

지난주 인사하며 선생님이 말했다.

냉장고문을 열고 뒤적거리다

사과와 아보카도 감을 챙겨 갔다.

감은, 다음으로 미뤘다.


관찰을 잘하는 게 그리기의 첫걸음이죠.

빛이 왼쪽에서 들어오니까 이 부분은 밝고 여기는 제일 어둡고...

블랙물감을 그대로 쓰는 것보단

어두운 색끼리 섞어보면 자연스러운 깊이감이 나와요.

YOON, <사과와 아보카도>, 2024,

Oil on canvas, 22cm x 22cm

오랜만에 잡아본 붓이 난 어색해서

괜스레 큰소리로 웃기도

칠한 곳을 다시 덧칠하며 떨리는 손을 감춰보고,

오픈한 지 한 달 만에

15살이나 나이 많은 첫 수강생과

마주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도 흔들린다.


부유하던 날 선 공기가 정오의 햇살을 먹으며

커튼 위로 테이블 위로

유영하는 베타의 물그림자처럼

흐르다 멈추고

멈춘 채로 이어지는...


레가토로 물들어가는 오후의 화실에


다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사과와


단단한 껍질 속 에메랄드를 품은

나의 아보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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