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에 들어온 경제권

소비 보다 돈 관리가 더 중요하다.

by 오그레스



경제권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잠시 안도했다. 이제 돈의 흐름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최소한,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겠다고 믿었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출구’를 만들어 놓았다는 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식비를 줄였고, 외식을 끊었고, 옷도 사지 않았다. 아기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소소한 단기 알바도 했다.

배고프면 장을 보기 전 밥을 꼭 먹었고, 마트에선 ‘필수품’ 외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천 원짜리 음료수 하나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내 욕망은 접었다. 모든 소비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어야만 했다.

나를 위해 쓰는 돈은, 죄책감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아끼고, 참고, 버텨서 통장의 마이너스를 조금씩 메워나갔다.

아주 느리게, 아주 천천히.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남편이 몰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어? 그 통장은 비상금 통장인데... 그 통장의 존재를 알았으니까 당신도 갚아.

내가 가끔 용돈 준거 다 그 통장에서 나온 거야. 당신도 같이 쓴 거라고!"


"말이야? 방귀야? 저 억지 부리기 또 나오네. 어떻게 갚으라고 또 통장을 만들어와? 저번 마이너스 통장도 겨우 겨우 힘들게 갚았는데!!"


"그니까 당신이 돈 안 쓰고 잘 모으더라고, 사고 싶은 것도 없잖아. 뭐 사는 것도 없던데!"


"나도 사고 싶은 거 많아. 돈이 없으니까! 우리 아기 크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혹시라도 아프면 병원비도 필요하고! 당신은 미래가 없어? 대책도 없고? 무슨 계획도 없어?"


"열심히 회사 다니잖아. 내가 ATM도 아니고 열심히 죽어라 일을 했으니까 나도 즐겨야지. 스트레스를 풀어야 다시 일을 할 것 아니야!"


"정도껏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나는 뭐 스트레스 같은 거 안 받는 사람이야? 나는 도를 닦는 사람이냐고?"


"나는 쓰는 걸 잘하고 당신은 모으는 걸 잘하니까 서로 잘하는 거 하면서 살면 되잖아!"


"언제 철들래? 당신은 일하고 스트레스를 풀 시간이라도 있지. 나는 24시간 휴무도 없이 매일매일 육아랑 살림을 해야 해. 내 맘대로 화장실도 못 가! 당신이 그런 나의 생활을 이해해 본 적 있어?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본 적이 있냐고?"


"나도 힘들어 실적도 내야 하지. 거래처 사람들 만나서 싫어도 좋은 척하고 있어야 하지. 나도 사회생활 재밌어서 하고 있는 거 아니야!"


"서로 힘들다고 시합하자는 거 아니잖아! 대화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 계획을 세워야 될 거 아니야?"


"나는 머리 아파. 일도 머리 아픈데 그런 것까지 내가 해야 해? 당신이 집에 있으니까 당신이 계획 세워봐.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갈 테니까!"


"나는 서로 부부니까 아기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앞으로 아기 교육에 대해서도 의논하고 싶고 그래. 나랑 우리 아기에 대해 대화를 할 사람이 당신밖에 더 있냐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서 힘들어. 그런 데다가 당신은 철 없이 왜 자꾸 빚을 만들고 다녀? 마이너스 통장은 공짜야? 그것도 빚이야. 카드도 빚이고!!"


"안 써! 안 쓸 테니까 비어 있는 돈은 당신이 메꿔! 내가 생활비 주는 걸로!"


"생활비? 무슨 생활비를 줘? 당신이? 내가 아르바이트하고 결혼하기 전에 모아놓은 돈으로 생활하고 있는 거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몰라, 머리 아파! 집에 오면 포근하고 일하고 온 사람을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집이 더 불편해!"


큰 소리를 치고 문을 세게 쾅 다고 그는 그렇게 나가버렸다.


앞이 캄캄하다.

내가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이 그 사람의 또 다른 구멍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내가 죽어라 노력하면 뭔가 이루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열심히 죽어라 노력해도 다시 물거품이 된다.


그는 많이 벌고 많이 썼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많이 벌었으니까 자유롭게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머리가 지끈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이 가족을 위해 죽도록 참고 있는데,

이런 게 결혼 생활의 현실인가?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그 사람은 돈을 생존의 수단이 아닌, 보상의 수단으로 여겼다.

어릴 때부터 고생했고, 스스로 벌었기에, 더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걸까?

어떻게 나와 다른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입을 닫았다. 더 이상 따져봤자 소용없었다.

감정싸움으로만 번지고 대화는 할 수 없었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더, 나는 혼자만의 가계부 속에 갇혀 갔다.


내 통장도, 내 정신도 마이너스가 되어 갔다.

정신 차리고 제일 쉬운 것부터 하기로 했다. 아직은 그 쉬운게 무엇인지 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아기 때문에 주저앉을 수 없기에...노트에 끄적 끄적 아무거나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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