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귀환!

팔자 좋은 여편네들 - 그때의 기록 01

by 노을

".....사나이 한목숨 창공에다 벗을 삼고

굳세게 살다가 깡다구로 죽으리라......"


군가를 부르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자꾸만 작아진다.

발은 감각을 잃은 지 오래고

이십 킬로의 완전군장은 한 겨울 칼바람의 무게까지 얹어 온몸을 점점 더 땅바닥으로 끌어당긴다.


큰길을 벗어나 과수원을 끼고돌아

인적 없는 오르막 길로 접어든다.

혹한기 훈련 마지막.

야간 육십 킬로의 행군이 이제 이 킬로 남짓 남았다.

산 중턱의 부대 정문까지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볼을 에이던 바람이 숨구멍을 막는다. 절로 입이 벌어진다.

"헉 헉"

병사들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진다.

"3중대! 다 왔다! 힘내자!"

거칠고 갈라진 목소리로 중대장이 힘을 불어넣는다.

"특공! 아자! 아자!"

중대장의 선창에 따라, 구십여 명의 중대원들이 남은 힘을 끌어모은다.

그 소리가 어둠을 뚫고 새벽공기를 가른다.


마지막 마의구간에 들어섰다.

그들은 그곳을 '깔딱 고개'라 부른다.

정문 앞 오백미터, 급경사 오르막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숨소리 마저 불규칙해진다.

온몸의 기운이 풍선의 바람처럼 빠져나가는 것 같다.


"으악! 으악!"

굳어가는 다리를 들어 올린다.

그 순간,

"빰빰빰 빰빠라"

군악대의 트럼펫 소리가 온 산을 뒤덮는다.


"와~!!"

함성과 함께 한 층 커진 군가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와 함께 찬바람에 실려온

구수한 어묵탕 냄새가 막힌 콧구멍을 뚫고 목구멍을 지나 창자까지 퍼져 들어온다.

전투식량으로 채웠던 뱃속에서 올라온 꼬르륵 소리가 군가와 함께 귓속으로 파고든다.


군악대를 지나 정문을 들어서니 가족들이 박수와 함께 막걸리 한 사발을 내민다.


벌컥벌컥,

차가운 막걸리가 창자를 훑고 내려가 잃었던 발가락의 감각을 짜릿하게 살려놓는다.

크게 베어문, 푹 퍼진 어묵꼬치가 가슴을 가득 채운다.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니 그 자리엔,

오늘도 '무사 귀한' 했다는 안도와 자부심이 가득 찬다.





아이를 재워놓고 기다림에 지칠 때쯤 베란다로 나갔다. 세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찬바람에 코끝이 쨍하다.


멀리 군가 소리가 들리는듯하더니,

그 소리가 절규에 가까운 비명소리로 변하였다.

일주일만의 귀환이다.


잠시 후 군악대의 트럼펫 소리가 밤공기를 가른다.

그 속에 있을 남편 모습이 떠올라 코끝이 매워진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다. 한파가 몰아닥친 일주일이다.

그가 겪은 그 날들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가족들은

어묵탕을 끓이고 떡국등을 장만해

정문 앞에 도열한 군악대 뒤쪽에서 그들을 기다린다.

매서운 바람에 자꾸 옷깃을 여민다.


비명 같은 구호소리 뒤로, 어슴프레 그들의 모습이 보이면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동안 쌓여 있던 근심과 걱정을 함께 담아 막걸리 한 잔을 건넨다.

군장의 무게를 이겨내느라 한껏 앞으로 숙여진 그들의 어깨가 한없이 안쓰럽다.


급하게 먹다 혹시 데이기라도 할까 봐, 미리 떠놓은 어묵탕을 집어 얼음장 같은 손에 쥐여준다.


막걸린 한 잔으로 씻을 수 없는 그들의 노고와 어묵 한 그릇으로 녹일 수 없는 그들의 희생을 알기에,

새벽 찬바람 속의 작은 수고로움은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된다.


대열의 마지막 인원까지 귀환을 확인하고 나면,

어느새 어둠은 옅어지고

여전히 달이 걸린 하늘을 마주 보며

또 다른 하루가 고개를 내민다.




남편이 귀가한 건 그러고도 네 시간 이상이 지나서였다.

중대원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마무리까지 하고 나서야 집에 복귀하는 것이다.


내내 창밖을 내다보다 군화 소리가 가까워오면, 살짝 현관문을 열어 온몸이 엉망인 그를 맞이했다.

피로와 고단함과 함께 온 찬 바람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얼어있던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추운 날씨에 뻣뻣하게 굳은 군복 바지에 쓸려 허벅지는 터져있고, 오랜 행군으로 발이 온통 물집 투성이다.

벗어놓은 양말을 집어 들었다.

터진 물집 때문에 발가락 부분이 젖어있다. 울컥 가슴이 메어왔다.


온몸에 쌓인 실전 같은 훈련의 흔적들을 씻어낸 그가,

잠자는 아이의 볼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평소에 하지 않던 감사의 기도를 중얼거렸다.

"어쨌든, 무사귀환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걸린 동상으로,

남편의 새끼발가락 감각은 아직도 완전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 시절엔,

몸과 맘이 얼어붙던 일주일 끝에

이틀의 쉼도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