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여편네들 - 못다한 이야기 03
"요즘 우리 남편은 담배를 너무 피워 걱정이에요."
차를 마시며 후배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애들 낳고 끊었는데."
내말에 잠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
"선배님 골초라던데... 엄청 피우신대요."
"우리 남편이?"
요즘 매일 퇴근이 늦었다.
얼마 전,
그에게서 담배 냄새가 났다.
아니라고 했다.
사무실에서 다들 피우니 냄새가 밴 것뿐이라고.
퇴근한 그를 유심히 살폈다.
옷 냄새에 묻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샤워기 물소리가 울리는 사이 전투복 주머니를 뒤졌다.
라이터도, 담배도 없었다.
그 주말은 아버지 생신이었다.
술을 마시다 자꾸 자리를 비웠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냐는 말에
절대 아니라며 뻔한 거짓말을 했다.
잡히기만 해 봐라.
다음날 아침,
아버지가 야외 화장실을 가리키며 눈짓을 하셨다.
나가보니 재래식 화장실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빠르게 문고리를 잡아 벌컥 문을 잡아당겼다.
"야!"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던 남편이 깜짝 놀라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뒤로 자빠질뻔한 어정쩡한 자세와
놀란 그의 표정에
그만 웃음이 먼저 터졌다.
"당신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담배 안 피운다며?"
그러나 웃음뒤에 따라온 잔소리는
이미 그 힘을 잃었다.
처음엔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고 눈치를 보는 척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대놓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즈음 남편은
병가 중인 보좌관의 업무까지 떠안고 있었다.
6시쯤 출근을 해서 11시가 다되어 퇴근을 했다.
일부러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군화만 겨우 벗은 전투복 차림이었다.
하루 중, 그 한 시간 남짓이
아이들이 아빠를 보는 전부였다.
진급이 들어가던 해였다.
담배는 그의 숨구멍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술을 좋아했다.
분위기뿐 아니라 술 자체를 즐겼다.
주말이면 이유를 만들어냈다.
회식이라는 이름으로,
비가 온다는 핑계로,
반찬이 좋다는 말로도 잔을 들었다.
마른안주 정도는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언제 누가 따라 들어올지 몰랐다.
일찍 문이 닫히는 시골의 술집 대신
불쑥불쑥 우리 집 현관문이 열리곤 했다.
그런데 전출을 오니
함께 잔을 들 사람도,
그런 시간을 만들 여유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았다.
"나 지금 퇴근하는데, 한 잔 할 수 있나?"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잠이 들었다.
땅콩과 오징어채를 접시에 올렸다.
두부 한쪽을 들기름에 구워 볶은 김치와 담아냈다.
술은 이미 냉장고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르륵 콸콸
첫 잔은 늘 소맥이었다.
"캬"
남편이 이슬이 맺힌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또 한 잔.
긴 숨이 새어 나왔다.
짠
잔이 부딪혔다.
조잘조잘
남편이 보지 못한 아이들의 하루가
그에게로 흘렀다.
소주 한 병이 다 비워지고
술기운이 온몸을 찌릿하게 흔들어 댈 때쯤,
남편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좀 힘들더라고."
말없이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 밤은 소리 없이 한 잔의 술로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