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간다고

팔자 좋은 여편네들 - 못다한 이야기 02

by 노을

이사한 지 2주 만에 추석이 돌아왔다.

결혼한 지 5년이 넘었다.

그사이 열 번의 명절을 시댁에서만 보냈다.


이번엔 달랐다.

가평서 친정까지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며칠 전부터 남편한테 노래를 했다.

"이번엔 나도 갈 거야!

그러니까 자기가 엄마한테 이야기해.

우리도 친정 간다고. 알았지?"


당부에 협박을 보탰다.

"나 여태 결혼하고 명절에 한 번도 못 간 거 알지? 이번엔 죽어도 갈 거야! "


토요일 오후부터 이어지는 나흘간의 연휴였다.

이틀을 시댁에서 보내고 당일 친정으로 향하면 될 터였다.


매번 공중전화를 붙들고 목멘 안부를 전했었다.

이제 나도 함께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

더 이상 전화기를 내려놓고 눈물을 훔치지 않을 것이다.



시댁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자기가 추석 날 아침에 말해줘야 해. 우리도 간다고. 꼭!"


마음이 먼저 친정에 가 있었다.

장 보는 것도, 갈비를 재고 전을 부치는 것도 웃으며 할 수 있었다.


추석날.

다섯 시도 전에 일어나 나물을 무치고 잡채를 버무리고 탕국을 끓였다.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는 중이었다.

남편을 쳐다봤다.


내가 허리통증으로 진통제를 먹어가며 명절준비를 하던 이틀 동안,

부어라 마셔라 먹은 술이 벌겋게 눈에 맺혀 있었다.

금세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눈짓을 했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국만 떠먹고 있었다.

마치 자기가 명절준비를 다 한 듯,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어머님이 일어나 주방으로 가셨다.

식사가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아침 먹고 작은 애들은 넘어가면 되겠네."

마침 아버님이 말을 꺼내셨다.

기회였다.

그런데 남편은 아직도 국그릇에 술을 떨구고 있었다.


남편의 허벅지를 비틀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눈을 흘겼다.


"우리도 처갓집에 가야죠."

드디어 남편의 입이 열렸다.


"니들도 간다고?"

아버님이 어머님을 슬쩍 건너다보셨다.


"저희도 이번엔 가야지요. 저만 늘 못 갔잖아요."

내 입이 먼저 열렸다.


"여보, 큰 애도 간다는데...."

아버님이 주방을 향해 소리치셨다.


한 번 더 남편을 노려봤다.


"우리도 이번엔 가야지.

이 사람만 맨날 못 갔잖아."

남편이 어머님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정적이 흘렀다.


뒷정리를 끝내고

동서 내외는 친정을 간다며 집을 나섰다.

내게는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그 길을,

그들은 너무 쉽게 떠나고 있었다.

주먹만 한 무언가가 가슴에 머물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살살 짐을 챙겼다.

거실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이틀간의 전투로 상처 입은 몸을

회복 중이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뒤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싶었다.


"근데, 넌 성묘 안 가냐?

성묘라도 갔다 오고 가든지 말든지."

긴 침묵 끝에 어머님이 말을 던졌다.


그 말은 그대로 내 가슴으로 떨어졌다.

목구멍에 걸렸던 무언가가 다시 무겁게 아래로 내려앉았다.


"성묘를 가라고? 지금?"

남편이 되물었다.


"너는 성묘 안 갔잖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작은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 끝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한동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남편은 아버님과 성묘를 다녀왔다.

네 시간쯤 걸렸다.

말없이 점심을 차리고 있었다.


" 갈 때 김치 좀 담아가지?"

"네? 지금요?"

"배추 사다 절구면 금세 하는데."

"김치 있어요. 저도 점심 먹고 가야지요."

"누나네 오는데 얼굴도 안 보고 간다고?"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반찬 그릇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저도 가야지요.

전 여태 한 번도 못 갔잖아요. 명절에..."


설거지를 서둘렀다.

어머님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아이들을 챙기고 짐을 밀어 넣었다.

이러다 형님네라도 들어서면,

그냥 또 주저앉게 될지 몰랐다.

이미 네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차가 너무 막혔다.

해가 저물고,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남편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만해!"

내 말이 곱지 않았다.


"뭘?"

"짜증 그만 내라고.

나는 지금 죽어라 참고 있어."



9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그때까지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를 보자 눈물이 고였다.


늦은 저녁상 앞에서 술잔을 부딪혔다.

참으로 오랜만에 먹어보는 엄마의 명절 음식이었다.

내 목소리가 기분 좋게 높아졌다.


그런데

몇 잔의 술을 겨우 넘기던 남편이 잔을 내려놓았다.

슬쩍 소파에 기대더니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날, 그 시간까지 기다려준 식구들을 볼 낯이 없었다.

5년 만에 도착한 친정이었다.


코 고는 소리와 섞여오는

숨소리조차 귀에 거슬렸다.

가슴에 또 하나의 돌덩이가 얹혀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난 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