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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판 밑 인어 Oct 15. 2023

운전하고 싶지 않아!(1)

그런데 불쑥 다가온 자차

 내 출근 시간대는 애매하게 일러서 대중교통 이용하기가 힘들다. 사실 회사가 있는 언덕 아래까지 도착하는 시내버스는 아슬아슬하게 첫 차를 탄다면 이용할 만도 하기도 한데, 문제는 언덕 위로 올라가는 마을버스 운영 시간과 맞지 않다는 거다. 15분가량 늦게 출근하면 마을버스도 이용할 수 있지만 15분가량 늦게 출근하다간 아침 업무를 제시간에 끝내지 못할게 뻔했다. 그래서 가끔씩 집에 가는 날엔 주로 아빠가 병원까지 태워다 주셨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딱 맞다. 집과 멀지 않은 회사를 다니며 지난 35년간 새벽 5시는커녕 7시 30분에서 7시 50분 사이 일어나도 여유 부리며 준비하고 걸어서 출퇴근하던 아빠는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딸내미 회사 출근 시키려고 차를 빼고 기다리곤 했다. 이렇게 불효녀 짓 하지 말고 택시를 타면 되지 않냐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 부모님은 택시비를 아까워하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엄마는 내가 혼자 택시 타는 것을 안전상의 문제로 썩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차도 간간히 다니는 어두컴컴한 새벽 출근대에 내가 택시를 타고 다닌다 하니 그냥 본인들이 고생하는 것을 선택하신 것이다.


 아무튼 나는 입사 6개월부터 많아야 일주일에 한두 번 출퇴근하던 것이 기본 3회가량으로 늘었다. 그와 동시에 부모님은 아침마다 데려다주는 걸 슬슬 못 견뎌하시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 집 생활 패턴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가 기본인 데다가, 오랜 시간 회사생활을 해온 아빠의 고착화된 생활패턴은 퇴근 후 사회생활이라고 주장하는 술자리에 참석하는 날이 잦았기에 사실상 혹사당하는 상황이긴 했다.

 엄마는 앞으로 이렇게 계속 나오냐고 한 번 묻고는 어디선가 금세 중고 경차를 사 왔다. 정말 놀랍게도 나에게 전화 와서 너 차 있으면 탈 거야? 중고 경차야.라고 하길래 엄마가 사주면 탈게~라고 가볍게 말했었는데 3일 뒤 집에 가니 이미 차가 지하 주차장에 주차돼 있었다. 우리 엄마가 언제부터 이렇게 실행력이 좋았었나. 아니었던 것 같은데. 고난에서 나온 실행력인가?


 부모님이 데려다주신다고 고생하신다 싶어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차 사주면 탈게~ 같은 소리를 했지만, 사실 나는 대중교통편이 안 좋은 타지방에서의 대학 생활 때 간절했던 자차에 대한 욕망이 좌절된 후로 차와 운전에 대한 욕망이 완전히 소실된 상태였다. 나는 중고 경차를 굳이 타고 싶지 않았고 좀 더 본질적으로 굳이 운전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도 나이인 데다가 지방에 살다 보니 주변에 차 가진 친구들이 꽤 되긴 했지만 그 친구들을 보고서도 딱히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 기동력은 약간 부럽긴 했는데...(지방에서 살려면 기동력의 여부는 삶의 질을 가르는 꽤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내가 원하는 바는 그 기동력자체이지 스스로 운전하는 능력이 아니다. 그러니깐 한 마디로 나는 기사가 있었으면 좋겠지 내가 운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몇 번의 운전 끝에 운전은 너무 피곤한 일이며, 생명을 담보로 하는 무시무시한 행위로, 모두 운전을 하고 있지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안 하는 게 신상에 좋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기 때문이다. 위험요소가 사방에 있다. 차도 나에게 위협적이고 사람은 그보다 더 위협적이다. 오토바이는 심지어 위협적인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를 위협하기까지 한다. 쫄보 마인드에 운전은 너무 험난한 일이었다.


 사회 초년생으로 근무시간에 이곳저곳에서 하도 굴려지니, 근무 외 시간에 운전이라는 또 다른 불확실하고 나의 무능력을 갈고닦아야 하는 무언가를 추가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낮에도 사람에게 상해가 되지 않는 스킬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는데, 퇴근하고 나서도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게 스킬까지 익혀야 한다니 너무 피곤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차는 이미 계약돼서 와 있었고, 집으로 돌아간 그날 밤 부모님은 식탁에 앉아 차량 등록을 위한 서류를 작성 중이셨다.




 주차장에 이미 주차돼 있다길래 동생이랑 보러 간 차는 경차인걸 이미 알았지만, 웬걸. 내 어깨까지 밖에 안 오는 줄 몰랐다. 어깨까지 오는 차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아빠의 지나가듯이 "차가 좀 장난감 같더라."라고 말한 게 생각났다. 그 외에는 더럽다!!!라는 생각이 지배했다. 차 외관이 놀라울 정도로 더러웠다. 사실상 차 외관이야 늘 더러울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으니 그렇겠지 하고 차에 탑승하니 내부도 더러웠다!


아니 이 먼지 뭐야?


 엄마가 아는 분께 매매했다 그래서인지 왠지 모르게 나도 청결 상태에 어느 정도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예상보다 너무 더러워서 살짝 놀랐다. 치우면 되니깐..이라 생각하며 시운전이라도 해볼까 싶어 차키를 열쇠 구멍에 넣고 돌려서 시동을 걸었다. 원래 간간히 운전연습하던 부모님 차도 구입한 지 10년이 넘어 구식 차였는데, 이 차는 그 차에 비해 모든 기능과 옵션이 다운그레이드였다. 이 방식으로 시동 건 게 몇 년 만인지. 이게 진정한 레트로 갬성이지. 시동을 걸고는 차를 빼려고 보니 누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차는 어째서인지 후면주차로 가득 찬 주차장에서 혼자서 전면주차돼 있었다. 전면주차된 차를 빼 본 적은 별로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낯설게 후진 기어를 넣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려는 찰나에... 깨달았다. 그 차에는 후방 카메라가 없었다. 그제야 자세히 대시보드 먼지에 빼앗겨서 제대로 보지 못한 버튼 및 디스플레이를 살폈다. 자세히 보니 내비게이션도 없었다. 조그마한 디스플레이가 하나 있긴 했는데 터치 기능조차 없는 그냥 라디오 주파수를 선택하는 용도였다. 이것저것 더 살펴보니 와중에 블루투스기능과 USB 포트는 있었다. 내비게이션은 없고 블루투스기능이랑 USB 포트는 있고. 이게 바로 바람과 음악만 있으면 발길 닿는대로 가는 그 시절 감성인걸까. 내 기준에선 구성을 알 수 없는 차였다.

 15년 전에 부모님이 운전하던 차도 후방카메라가 없었던 기억이 돌연 떠올랐다. 후방카메라가 없어서 후방 미러를 보면서 주차를 하시던 모습이 떠올라서 후방 미러를 찾으니, 아뿔싸 이 차는 후방 미러도 없는 게 아닌가. 어두컴컴한 지하주차장에서 선팅이 잘된 조그마한 후방 유리창으로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이거 차 뺄 수 있는 거 맞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고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브레이크에 발을 뗐다. 누가 그렇게 얼레벌레 차를 대놓았는지 모르겠지만, 발을 슬쩍 떼자 차는 서서히 측면에 있는 기둥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앞으로 갈 공간도 없는데 갑자기 후측면에 있는 기둥으로 가는 차를 어떻게 바로 해야 할지 가늠이 안 됐다. 흠.... 옆에서 겁에 질린 동생에게 한마디 했다.


"그냥 내릴까?"


 얌전히 다시 차를 앞으로 바짝 끌어다가 주차칸에 원상 복구해 놓고 시동을 껐다. 아니 웬걸 이제는 차키가 안 빠지는 게 아닌다. 아 이런 고물 같은 차. 요즘 누가 키를 꽂아 넣는 차를 탄다고. 후방카메라도 후방미러도 내비게이션도 없는 차에(물론 구입 시 그냥 옵션 선택을 덜한 걸 수도 있지만.) 키까지 안 빠지니 막막했다. 이 차를 내가 끌고 다닐 수 있을까. 온갖 안전장치에 둘러싸여서 운전해도 무사고일판에 이 야생 그 자체인 차는 도대체 뭘까. 조그마한 게 와일드하네 같은 생각을 하면서 빠질 기미 없는 차키로 한참이나 씨름했다.


"야 이거 차키가 안 빠진다."


라고 동생한테 말하니 동생도 몇 번인가 헛손질하더니 또 어떻게 빼낸다.


"눌러서 빼야 빠지지. 바보가..."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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