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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판 밑 인어 Nov 18. 2023

운전하고 싶지 않아!(2)

세상은 널 환영하지 않지만, 내 개가 된 걸 환영한다.

  사실 나는 완전한 장롱면허는 아니었다. 면허를 취득한 순간부터 부모님은 나에게 주기적으로 운전 연습을 시켰다. 그러나 타지생활로 본가에 잠시 들른 사이 간헐적으로 연습한 정도로는 매번 차를 처음 모는 사람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고 시동을 켜고 기어를 바꾸는 순간까지만 익숙하지, 브레이크에 발을 떼는 순간 항상 처음 운전하는 애처럼 벌벌 떨며 조수석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부모님의 잔소리와 가끔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 덩달아 튀어나오는 부모님의 호통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나름 이곳저곳을 다닌 것치고는 다행히도 무사고를 유지했다. 이러나저러나 무사고였기에 부모님이 나 스스로 운전하게 한다는 선택지를 선택하신 것 같았지만, 나는 시동을 끌 때마다 "오늘도 내가 해냈다. 아무도, 어떤 차도, 어떤 구조물도 들이박지 않고 끝냈다."라며 일일이 하루하루 무사고 경력을 갱신하며 감사하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운린이였다.



 집에 가자말자 차가 너무 더럽다.라고 한 마디를 했더니 그 다음번 집에는 차가 외관도 내면도 깨끗이 청소돼 있었다. 엄마가 보기에도 차가 지나치게 더럽기도 했겠지만, 엄마는 운전이든 차 자체이든 탐탁지 않아 하는 내 마음을 눈치채고는 재빨리 내 불만사항을 개선시켜 놓은 것 같았다. 이러나저러나 나의 탐탁지 않은 마음은 지속됐다. 아 누군가가 나를 편하게 데려다줬으면 좋겠는데.

 뭇사람들이 나에게 불속성 효녀라고 했지만, 나는 정말로 인생이 너무 피곤한 시점이었다. 인생이 피곤한데다가 남이 죽을 수도,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어떤 스킬을 연마하기에는 너무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언제는 인생이 여유가 있었는가. 나는 보험을 든 순간부터 바로 운전대를 붙들게 되었다. 한동안은 집에 올 때마다 주차연습이니 뭐니 운전연습을 했다. 오래간만에 정상적인 퇴근을 해서 집에 와서 누워서 쓸데없이 휴대폰 스크롤이나 내리고 싶었는데 옷을 입고 나가서 안전벨트를 단단히 차고 미러를 열심히 봐가면서 감각을 익히느라 한참을 보냈다.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새벽에는 한 달간 부모님은 조수석에 타고 내가 운전을 하고 출근하고 부모님이 도로 그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출근하는 시간대에는 도로에도, 회사 주차창에도 별로 차가 없다는 거다.




 늘 그렇듯 일하기 싫은 날이었다. 아니 사실 지난 주말을 즐겁게 보낸 탓에 유독 일하기 싫은 날이었다. 출근하기 싫어서 꼬물거렸고 그래도 적당히 늦지 않을 시간에 집을 나섰는데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나가려는 순간 차가 평소 같지 않다는 걸 느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는데 좀처럼 굴러가지 않길래 액셀을 살짝 밟았더니 차가 기묘하게 덜컹거렸다. 그럼에도 원래 승차감이 좋은 차가 아닌 데다가 잠이 덜 깨서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조수석에 탄 아빠가 차가 이상한데? 펑크 난 거 아니야? 하면서 내리는데 아닌가. 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면서 저기 뒤에 자리가 있으니 주차해 놓으라 말하고는 서둘러 다른 차 키를 챙기러 집으로 가버렸다. 갑자기 덜렁 혼자 주차 자리가 어딘지도 모른 채로 혼자 주차장에 남겨졌다. 순간 살짝 짜증도 났다. 아니 나 없는 사이에 이 차 끌고 어딜 갔길래 차가 갑자기 펑크가 나. 아침에 시간도 별로 없는데. 어쨌든 나에게는 이차를 주차해야 한다는 미션이 떨어졌다. 주차는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일단 뒤쪽에 주차자리가 있다고 했으니 멍한 상태로 그대로 후진을 했다. 빼또롬하게 서 있었던지 차가 점점 우하방 기둥을 향해 갔다. 어쩔 수 없이 차를 쑥 좌측으로 전진시켰다. 알고 보니 빈 주차자리는 좌측이었고 좌측에 딱 붙여 버린 바람에 이제 주차를 하려니 좌측 기둥에 부딪힐 판이었다. 이 조그마한 차도 어쩔 줄을 몰라 이러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운전이라는 거 아무나 다 하는 거 아니었나. 어찌어찌 그 큰 칸에 이 조그마한 차를 몇 번을 와리가리한 다음에 겨우 넣긴 했는데 차가 너무 우측으로 쏠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다시 주차장으로 나온 아빠가 그냥 내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똑바로 대져 있나? 싶어서 그냥 말 듣고 내리고 보니 타이어가 하얀 실선 위에 살포시 올라가 있었다.

똑바로 안 대져 있는데 왜 괜찮다고 해.

그냥 둬 갔다 와서 아빠가 다시 주차할게.

사실 나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없었다. 결국 아빠가 질주 운전을 해서 크게 늦지 않게 출근했다. 평소보다 늦었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 평소에도 정규 시간보다는 최소 30분씩 일찍 출근했으니 좀 급하게 미리 일을 처리해두기만 하면 문제는 없었다.


내가 우려하는 일이 이런 거다. 안 그래도 이른 출근 시간인데 운전도 서투른 애가 평소 나서는 시간보다 일찍 나서야 하지. 그러다가 이런 돌발 상황으로 차에 펑크가 나거나 사고가 나거나 하면 아마 꼼짝없이 지각을 하게 될 것이다. 잘못을 하지 않아도 혼나는 사회초년생인 마당에 지각 따위로 혼날 일을 추가할 수 없다. 이 조그마한 차조차 어쩌지 못하고 휘둘리는 게 조금 많이 짜증났다. 아니 뭐 보니깐 남들은 연수 별로 안 받아도 큰 SUV도 곧잘 끌고 다니던데 나는 왜 얘도 똑바로 못 끌고 다니지.



 차를 몰다 보니 차는 강아지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형차는 대형견이고 소형차는 소형견이다. 보통 개의 크기와 컨트롤하기 위한 힘의 크기는 비례한다. 소형견과 대형견 키울 때 책임감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산책시간, 사료비, 목욕 등등 대형견이 소형견이 보다 많은 시간 및 금전적 투자를 요하는 것은 자명하다. 나는 지금 소형견 견주인데 이 소형견도 감당을 못해서 쩔쩔매고 있다. 지금 내 차는 자기가 소형견인줄 모르는 건방진 포메라니안 혹은 성격이 지나치게 앙칼진 입질하는 말티즈이다. 그리고 나는 소형견이 입질을 하지만 어떻게 훈련시킬 줄 모르는 무능력한 견주다. 부모님이라는 강형욱에게 혹독하게 트레이닝당했지만, 강형욱도 통하지 않는 개가 나의 앙칼진 말티즈다. 아니 사실 강형욱도 통하지 않는 견주가 나인 거겠지만.

 보통은 목줄이 풀리면 대형견 견주가 눈총을 받지만, 도로 위의 개는 소형견이 눈총을 받는다. (근데 사실 나는 아직 잘 못 느끼긴 했다. 아마도 그런 걸 못 느낄 정도로 운전이 서툴기 때문이지 않을까. 누군가가 내 뒤에다가 대고 하이빔을 여러 차례 쏴대도 나는 아마도 모를 것이다.) 아무튼 나는 새벽의 도로를 나의 소형견 목줄을 꽉 붙들고 이 녀석이 마구잡이로 길가로 뛰쳐나가지 않게 하려고 온갖 용을 썼다. 길이 험하기로 유명한 동네라 이 놈을 목줄을 꽉 쥐고 있기가 더 어려웠다. 앞의 길이 보이지 않는 코너길에서는 튕겨나갈 듯이 질주하더니 조금만 오르막을 나오면 쪽도 못 쓰고 풀 액셀을 밟아야 곰질곰질 겨우 올라가곤 했다. 나의 앙칼지지만 나약한 소형견이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나는 힘내라! 힘!이라고 응원하면서 에어컨을 끌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인지 대형견에 비해 잘 멈추지도 잘 가지도 않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이 작은 녀석에게 적응해 버렸다. 이 녀석은 아무 공간에나 잘 들어갔다. 내가 개떡같이 목줄은 쥐어도 작은 녀석의 피지컬로 어떻게 욱여넣어지긴 했다. 도로 위에서도 주차장에서도 작은 피지컬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컨트롤 가능하다는 감각이 오니 이제야 겨우 한숨이 놓였다. 휴 이제야 네가 내 개 같구먼.



 드디어 내 개가 되었단 생각에 이제 출퇴근 시 혼자 끌고 다니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동기들이 순차적으로 차량 등록을 어렵지 않게 하는 것을 보고 나도 별생각 없이 들었던 서류들을 준비해서 직원 월주차를 등록하려 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요즘 회사에 차를 들고 오는 직원이 너무 많아서 고객주차장이 부족할 지경이라며, 더 이상 직원을 위해 주차자리를 할애하지 않으며, 직원 주차 대기 인원이 40명대를 육박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차를 들고 오는 직원이 너무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교통위치도 불편하면서 주차장 공간이 너무 좁은 게 문제인 것 같았지만 이런 걸 안내 직원한테 따져봤자 의미도 없다. 우선은 알겠다는 대답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날 퇴근직전에 주차장에서 동기언니가 내 차와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을 기념하자며 사진을 찍어줬다. 그러니깐 나는 한순간에 그냥 힘들게 운전연습하고 의미 없이 자동차세와 보험료를 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때까지의 고난의 수행은 도대체 뭘 위한 거였단 말인가.

 집에 자가용 출퇴근이 불가능하다는 비보를 전한 뒷날. 출근하려고 보니 웬일인지 부모님이 두 분 다 주무시고 계셨다. 보통 내 출근에 맞춰서 나보다 먼저 깨 계셨는데... 잠시 고민했다. 택시 타고 가? 근데 택시 잘 안 잡히면 살짝 빠듯한 것 같기도. 택시 탈까? 말까? 고민하다가 엄마엄마 불러서 살짝 깨우니 엄마가 헉! 하면서 깨시고는 다리로 아빠를 툭툭 건들며 애 데려다줘.라고 말한다. 아빠도 헉! 왜 알람이 안 울렸지! 하면서 벌떡 일어나서는 주차장으로 가신다. 그러고는 잽싸게 조수석에 앉으신다. 아빠가 운전석에 앉을 줄 알았더니. 아빠는 졸지에 운전기사도 아니고 탁송기사가 되었다. 나도 아빠도 아무도 이득 보는 사람도 없고. 새벽 5시 30분에 부모님 깨워서 출근하는 20대 중후반의 자식? 현타가 물밀듯이 몰려왔다. 이게 정상적인 삶의 양식일까?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나도 너도 모두가 괴로운 일을 하고 있지?

그날 다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 대기 순서면 언제쯤 차를 끌고 올 수 있나요?

주차공간 부족 문제라서 사실상 언제 순서가 돌아간다 말씀드리기 어렵고 현재로서는 한동안 주차등록 안 할 계획이에요.

아아 절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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