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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판 밑 인어 Mar 07. 2024

시어머니 같은 외할머니(3)

 할머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남아선호 사상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됐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까마득하다. 그런데 분명 그런 걸 모르고 할머니와 함께 했던 세월이 있기는 한데... 

꾸준히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해 동생과 나를 차별했던 할머니지만, 그저 어려 멋모르던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건지, 

2차 성징 발현과 동시에 사회적 무성 생물에서 사춘기 여성, 남성으로 분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할머니의 인지회로가 나를 여자로 동생을 남자로 보고 그때부터 차별을 시작했는지,

아니면 앞 선 두 가지 모두 아니고, 내가 노동력으로써 가치가 생길만한 나이가 되고 나서부터 그렇게 잔소리를 얹기 시작해 그때부터 내가 인지하기 시작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어느 쪽이든 까마득한 예전부터 시작된 일임에는 차이가 없다. 




 대략 10년 전, 어떤 대화를 하던 중이었는지, 앞 뒤 전후 사정은 기억이 나질 않으나, 할머니께서 "우리 딸 괴롭히지 마라"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 절대적인 진리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전까지도 뭔가 할머니와의 관계과 내 예상하는 흐름과 다르다는 생각이 있긴 했지만, 그저 두리뭉실하게 다르다는 감각으로만 존재하던 것이 저 말 한마디를 듣는 순간 단어단어가 몽둥이로 변모하더니 내 안의 몇 없는 진리 중 하나를 내리찍었다.

 이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당연히 할머니는 딸보다 손주를 사랑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정말 밑도 끝도 없다는 표현을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고, 그에 따라 한 번도 할머니에게 그에 준하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정말 당연하게도 그럴 것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이 황당한 자신감(?)이 어디서 좀 더 생각해 보니, 내가 미디어를 통해 은연중에 <할머니는 손자를 사랑하고 손자도 할머니를 공경해야 한다.>라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 내지는 고정관념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아무 저항 없이 그대로 삼켜버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회적인 면을 본다면, 모든 미디어의 종류가 한 때 출산을 그저 숭고하게 표현했던 것처럼 할머니와 손주와의 관계도 그저 무조건적인 내리사랑과 그에 응답 보답해야 할 효심으로 그 방향성을 추구했고, 나도 모르게 당연하게 그 가치를 흡수해 버렸다 할 수 있다. 

 그것과 별개로 개인적인 면을 살펴보자면, 내면이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그렇게 쉽게 내가 미디어가 만들어 낸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보이는 절대적인 사랑을 믿었던 이유는 엄마를 통해서 절대적인 내리사랑을 이미 맛봤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엄마가 자식에게 보여주는 희생, 사랑은 내가 체득하며, 공감했던 덕목이자 진리였으며, 만인이 공감할 진리였다. 엄마가 보여주는 자식을 향한 사랑, 희생이 진리임은 확실하니, 진리의 지평선을 좀 더 펼쳐 (비록 직접 겪어보지 못하였더라도) 할머니의 손주를 향한 사랑, 희생이라는 개념까지 진리로 확장하는 데 모순이 없었는 것 같았기에 내 속에서 할머니의 손주를 향한 내리사랑은 섣부르게 진리의 범주에 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나에게 "우리 딸 괴롭히지 마라"라며 나에게 적대감을 표시했다.


 세상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내게 진리라고 할 만한 것은 많지 않았고, 많지 않은 만큼 그 진리가 절대적이라는 그 특성을 위협받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니깐 내가 진리라고 인정한 범위의 것은 좀처럼 진리의 왕좌에서 내려오는 일이 없었는데 그중 하나가 처참히 몽둥이로 두드려 맞는 것은 가히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일이었다.



 내 안의 진리가 깨어지는 시간을 기점으로 할머니에게 나는 그저 "사랑하는 딸"의 딸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눈앞을 가리던 미디어가 만들어 낸 환상에서 벗어나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할머니가 종종 방학 때 한두 달가량 엄마의 부탁으로 우리 집으로 와 우리를 양육하시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셨는데, 그 모든 시간을 모아도 내 인생에서 1년이 넘지 않는 시간일 테다. 내 20년 남짓한 시간에서도 1년은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데, 80이 넘은 할머니 인생에서 1년이란 세월은 어느 정도의 가치일까. 그것보다는 25년 동안 한시도 떼어놓지 않고 끼고 보살폈던 사랑스러운 막내딸과의 시간이, 그 안의 애정이 압도적일 것이다.

 명쾌한 답을 얻은 후에는 그때부터 묘하게 예상을 벗어났던 할머니와의 관계도 예상 범위 내에서 굴러갔다. 할머니에게 나는 "사랑하는 딸"의 딸이었고, 나에게도 할머니는 "사랑하는 엄마"의 엄마였다. 명확한 관계의 재정립을 통해 그동안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정답에서 벗어난 것 같은 기묘한 불편감에서 해방되었다. 



 몇 년 후 할머니는 나에게 또 이전과 같은 말을 건넸다. "우리 딸 괴롭히지 마라."

미디어의 환상에서 벗어난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말을 되받아쳤다. 

"제가 할머니 딸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할머니 딸이 저를 괴롭히는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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