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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판 밑 인어 Mar 05. 2024

시어머니 같은 외할머니(2)

 우리 엄마는 집안 내에서 알아주는 잔소리꾼이다. 여기저기 입을 얼마나 대는지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사실 말하기 싫은 정도라는게 정확한 심정이다.) 엄마에게 이종사촌들은 우리 집 식구, 내 언니의 자식들이라는 라벨하에 "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타인이 아니라는 분류를 했고, 애매한 경계의 바운더리에 속해 있는 그들은 우리 엄마의 잔소리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엄마의 진한 잔소리 폭격을 맞고 난 한 이종사촌은 나와 우리 동생에게 "내가 이모 자식이었으면 진작에 집 나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정확한 표현은 아니고, 이것보다 좀 더 과격한 표현이었지만, 순화해 표현하자면 그렇다.) 


 한 때 집안에서 알아주는 잔소리꾼인 엄마가 돌연변이 같다는 생각을 했었으나, 이제는 엄마의 잔소리는 할머니에게 온 모전여전, 콩 싶은데 콩 나고 팥은 심데 팥 난다의 아주 정확한 예시임을 안다. 할머니께서는 우리 집에 머무시는 동안에도 나에게 설거지해라, 밥 해라, 이것 좀 갖다 넣어라, 저 박스에는 밀감이 들었냐, 밀감이 들었으면 밖으로 내놔야 안 상한다, 수건 개어 넣은 것 좀 갖다 넣어라 등등 온갖 잔소리를 해댔다. 엄마의 잔소리는 내가 커감에 따라 씨알도 안 먹힐 잔소리를 구태여 입에 얹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에게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시간이 주어지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있다는 엄마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필수적인 잔소리로만 잦아들어갔지만, 간간히 보는 할머니는 아직 그런 데이터를 쌓지 못해서인지 온갖 잔소리를 해댔다. 

 누군가는 나에게 간간히 보는 어르신의 그런 푸념 같은 잔소리도 못 들어주냐 말하지만, 내가 할머니의 잔소리를 듣기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게 오로지 나를 향했기 때문이다. 설거지하고 밥 하는 건 나 말고도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유서 깊은 남아선호사상은 아들인 동생에게는 절대로 그런 류의 잔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3일간 얌전히 할머니의 차별적인 잔소리를 견디며 설거지를 하고 나면, 4일 차에는 응축된 분노가 동생을 향하고 말았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나에게서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는 분노의 기운을 느끼면 엄마가 할머니가 잔소리할 거리를 남겨두지 않기 위해 슬쩍 설거지를 해두고 갔고, 20세기 사람인 할머니 비호 아래 있지만, 흔히 말하는 엠지인 동생이 일말의 양심으로 그 이후 나온 소량의 설거지거리를 맡아 설거지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 맘이 풀릴 새도 없이 "느그 누나가 나중에 씻을 건데 뭐 하러 씻노" 같은 말로 동생을 공을 치켜세우면서 내 속을 박박 긁어놓았다. 그럼 동생은 "아 그럼 누나가 화내요"라고 대꾸하며 설거지를 마저 끝내 놓았다. 그럼 나는 속으로 저게 최선의 대답인가 생각했지만, 어쨌든 설거지를 마친 동생에 쉽게 만족하고 말았다.


 할머니는 군필인 동생이 쌀이라도 씻으면 다 컸다고 감동을 받곤 했다. 쌀을 전기밥솥에 넣고 버튼하나 눌려 완성한 밥을 보면 감동으로 눈가가 촉촉해지며, 몇 달 동안이나 가족 모임마다 우리 동생이 얼마나 훌륭한지 입이 마르도록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자기 딸이 이렇게 훌륭하게 아들을 키웠다고 말한다. 사실 가족 모임이 아니라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그러실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이때까지 밥그릇을 부신 나는 밥그릇과 함께 부셔진 존재가 된다. 


 댁에서는 귀찮아 2끼에 중간중간 간식만 챙겨 먹다가 할머니 오셨다고 매일매일 잔치상을 차려놓는 효심 깊은 엄마 덕에 3끼 드시는 게 힘드신지 저녁 즘에는 밥을 반공기만 드시고 남기시곤 했다. 그러면 남은 밥을 나에게 밀어주곤 하시는 거다. 누군가가 남긴 밥을 받아보는 건 좀처럼 없던 일이라서 당황과 짜증이 섞여서 밀려온다. "아 안 먹어요. 저 배불러요."라고 하면 "니가 조금만 먹어서 배고플까 봐" 같은 말을 내뱉어 나의 황당함만 가중시키신다. 평소에도 먹는 속도가 느린 동생은 아직 자기 앞에 밥을 쌓아두고 있어서인지, 정말로 남동생보다 내가 밥을 적게 먹어서인지(원래 그렇게 먹지만), 워낙에 빈곤하던 전후를 살아오신 옛 분이라 그런지. 할머니를 변호할 말과 상황들은 무수히 많지만 변호할 말들이 많다는 것조차 왈칵 치민 짜증에 엉기어 짜증의 부피만 커져간다. 


 몇 날 며칠 내가 가자 가자 해서 성사된 베트남 식당에 가는 날에는 "뭣하러 외식해 헛돈을 쓰냐, 그냥 집에서 간단히 챙겨 먹지"라는 말로 내가 미리 먹어봐 보장되어 있던 맛집을 가족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들떴던 기분을 바닥을 치게 만들었다. 이러쿵저러쿵 말씨름하기도 지쳐 "그럼 할머니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가지 말자고 하세요."라고 하면 투지폰을 펼쳐 단축번호 두 자리를 눌러 엄마한테 전화를 거신다. 무슨 통화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할머니 모시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라". 할머니에게 전달하며 할머니는 또 그냥 집에서 먹으면 되는데 라며 거실에서 꿍얼대신다. 방에서 나가보면 내 말을 전혀 안 들으시지만, 엄마 말은 잘 듣는 편이셔서 외출용 모자는 이미 쓰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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