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연애의 비참한 말로.
아니 사실은 일반적인 연애의 비참한 일면.
장거리 연애라는 게 참 쉽지 않지만.
내 장거리 연애의 시작은 어쩌면 메타인지부족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조금씩 객관화가 되고 있다. 나는 장거리 연애에 부적합한 사람이다.
장거리 연애커플 성공사례를 찾아보며 나도 그렇게 되기를 꿈꿨지만 그래 이건 마치 의대 입시 성공 사례를 보고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자위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주 안 될 것도 없지만 결국 되는 사람은 소수이고 어쩌면 나한테는 좀처럼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여정.
우리의 장거리 연애는 예견된 것이었는데 의도치 않은 것이었다. 예견된 것이었다고는 하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기도 했고.
처음에는 장거리 3개월 해외출장이 시초였다. 만난 지 3개월 만에 벼락같이 두 달 뒤 장거리 해외출장 얘기를 들었는데 솔직히 표정 관리하긴 힘들었다. 나의 썩은 얼굴을 보고 그는 이직을 결심했고 결국은 더 좋은 환경으로 이직을 성공했다. 다만 이직 후에 국내에서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고속열차를 이용하고도 door to door는 4시간가량이 걸렸다. 돈과 시간이 막대하게 들어가는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실 어쩌면 우리는 거리만이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진로차이. 식성차이. 결혼관 차이. 성향차이. 경제력 차이.
다른 게 너무나도 많았다.
그는 알아주는 국내 대기업에 취직한 멋진 회사원이었고, 나는 전문직 자격증은 있으나 좀처럼 사회에 적응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전문직 자격증을 갖고도 사회에 적응도 사회로 나갈 준비도 못한 채 나이 들어가는 나를 쳐 놀았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가 배가 불렀다 생각한 듯싶다. 동시에 남들 갖고 싶어 하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존경과 경멸이 섞인 것 같았다.
나는 불굴의 대기업에 취직한 그가 멋있다 생각했다. 전문직이 아니어도 사회에서 당당히 1인분 몫을 하고 알아서 워라밸 좋고 봉급이 높은 곳으로 이직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 로드맵대로 자기 인생을 계획한 대로 잘 꾸려나가고 성공시키는 게 멋지다 생각했다. 그가 원하는 바는 비교적 명확했고, 그는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남들이 좋다 좋다 하던 전문직 자격증을 가지고도 도무지 적응하지 못해 한참을 방황하는 무직이었다. 나는 그를 향한 존경과 시기가 뒤섞였다.
그와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콤플렉스가 됐고, 안타깝게도 서로가 그 결핍을 채워주진 못 했던 것 같다. 그는 부단히 나의 주변사람에게 인정받으려 애썼고 나는 그게 불편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닌데 내가 아닌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한다는 게 마음이 불편했다.
그는 내륙 사람이었고 고기만 즐겨 먹었다. 나는 바닷가에서 20년 넘게 산 사람이었고 외할머니는 고기라면서 물고기를 내주는 분이었다. 단백질 공급을 고기보다 생선으로 더 많이 한 사람이었고 회나 해산물이 끊인 적이 없었다. 데이트를 하면서 식사를 같이 하는 입장에서 해산물이나 회가 없는 건 괴로웠다. 하지만 그가 별로 내키지 않는데 나를 위해 먹는 것도 괴로웠다.
그의 인생의 궁극적은 목표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고, 적당한 상대가 있다면 20대에라도 빠르게 꾸리고 싶어 했다. 말로는 출산의 경우 상대측과 얘기해 봐야겠지라고 표현했으나 원치 않는 사람에게 2세 출산을 강요할 수 없다는 교육의 산물이었을 뿐 2세를 꿈꾸는 건 여실히 드러났다.
나는 사회경제활동이 늦은 만큼 일찍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내 인생의 모토는 보통만큼이었다. 누구보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고 딱 평균으로 살아가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결혼도 평균결혼연령대에 하고 싶었다. 결혼에는 거부감이 없었으나 출산과 육아에는 거부감이 컸다. 특히 출산은 공포스러웠다. 전혀 예측불가능한 세상에 생명을 창조한다는 게 두려웠다. 창조한 생명에게 나를 낳은 이유가 뭐냐 물었을 때 돌려줄 마땅한 대답이 없었다. 이 세상은 아름다워서 너한테 보여주고 싶었어.라는 말을 하기에는 나는 괴로웠고 생존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아기에게 생존의 압박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집안으로는 어떻게든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라서 이 사랑을 내리사랑을 내려줘야 한다는 약간의 의무감과 관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육아는 해도 출산은 못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육아는 삶이 통째로 바뀌는 여정이다. 그 여정을 내 피붙이가 아닌 사람과 해낸 모습은 티브이 속에서만 봤다. 육아에 대한 마음도 결국은 의대 입시에 성공한 수기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와 나의 결혼에 대한 가치관 차이는 나에게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저런 얘기를 나눈 게 타격이 컸다. 좀 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연애를 하고 싶었다. 좀 더 지내다 보면 이런저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까? 정도로 희미하게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출산과 육아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안인 만큼 이것만큼은 서로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할 수 없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나는 그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출산에 동의한 여성을 찾아야만 한다 생각했다. 아무 생각 없이 연애를 즐기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가 든 걸까? 또 내가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고 붕 떠서 철없는 소리를 하는 거고 현실적인 그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멋지게 나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야외 스포츠 활동이 좋았다. 자전거를 탄다거나 야외 구경을 간다거나 실내활동을 해도 클라이밍을 하면서 활동적인 게 좋았다. 그게 아니면 정적이어도 공방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좋았다. 무언가를 소비하긴 하지만 그 속에 창조가 있는 게 좋았다. 반면에 그는 정적인 걸 좋아했다. 미술관에 가고 연극이나 영화를 보거나 백화점을 구경하고 팝업스토어를 가자 제안했고, 나는 거절했다. 그럼 그는 다시는 제안하지 않았다. 그는 특이하게도 자전거나 클라이밍 등의 제안에 No라는 거절은 하지 않았다. 항상 다음을 기약했다. 그럼 나는 잊을만하면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곤 했다. 그럼 그는 또 다음을 기약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니 그의 "다음에"는 정말로 다음을 기약하는 게 아니라 "No""였고, 나의 확실한 "No"는 (NO를 다음에 라고 표현하는) 그에게는 "영원한 No"였던 것 같다. 시간을 보내는 데 서로에게 불만족이 조금씩 쌓여갔다. 아니 어쩌면 나만.
어쩌면 이 모든 게 결국은 경제력에서 오는 거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내가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데이트비용의 대부분을 그가 부담했다. 그러고 그는 한 때 나의 개인적인 극심한 스트레스 문제로 오가는 왕복길에 드는 시간, 비용을 모두 그가 부담했다. 오가는 길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잘 아는 나는 그때마다 그에게 고맙다 말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말로만 천냥 빚을 갚는다 라는 격조 있는 속담보다는 주둥이만 나불댄다라는 격조 없는 속어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실 그도 사회초년생이었으니 이 상황이 부담스러웠리라. 나는 나대로 부담스러웠다. 그가 부담해 주는 게 고맙고, 연애가 한결 편안한 건 맞았지만, 한 편으로는 부담감과 부채감, 미안함이 꿈틀거렸다.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니, 내게 남은 선택지는 그에게 입으로 공치사만 해대는 거였다. 고마워. 힘들지. 나는 이만큼만 가도 너무 힘들던데. 그도 사회초년생이라 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다가 길에다 뿌리는 시간과 돈도 있으니, 아마 통장에 남은 숫자 대비 행복의 질이 떨어졌으리라.
삐걱대긴 했지만 어떻게든 굴러가고 있던 연애가 크게 덜컹거리게 된 건 판도라의 상자. 그러니깐 결정적으로는 열어 본 내 잘못이라는 거다. 그도 임금님 귀 당나귀 귀~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근데 내가 그걸 듣고 상처를 입었다. 나는 그를 벌할 순 없다. 분명하다. 하지만 그 속의 상처는 그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년에 2번 정도 심각한 비난과 욕설을 얻어먹고 나니 이제는 뭔가 스스로가 문제가 있나 보다 싶었다. 더 이상 재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젠 패턴화가 된 거다. 누군가에게 욕을 처먹는 게. 상처받은 가슴이 겨우 아물기 시작할 무렵에 또다시 난도질당하니 더욱 쓰라리다. 심지어 믿었던 사람인지라 무방비했었다. 그를 탓하고 싶지 않고 탓할 수도 없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 내가 잘못이다. 흔히들 말하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것이다. 스스로의 행동에 후회가 된다. 후회는 후회고 상처를 어떻게 없던 것처럼 할 수 있을지를 모르겠다.
연인이라는 관계가 나에게는 어려웠다. 친구 이상 가족 미만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으면 되는 걸까?라는 애매한 불확실성을 가지고 그를 분류했다. 연애라는 건 가족까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점에서 더욱 어려웠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중용. 결국은 중도를 지키는 게 핵심인데 그 일이 제일 어렵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어쩔 수 없이 보이지 않는 알력 싸움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예민한 편인 나는 그걸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연애는 뭔가 다르다 생각했다. 나도 그랬지만, 그도 처음부터 밀당 같은 건 없었다. 그는 아무런 피드백도, 평가도 나에게 내리지 않았다. 알력싸움도 평가도 없는 관계. 다들 이래서 연애를 하는 걸까?라는 편안한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연애도 결국은 인간관계. 내가 느꼈던 편안함은 어쩌면 그의 인내에서 비롯됐던 거고, 본질을 한 동안 가려주는 덧없고, 아름다운 장막. 혹은 호르몬의 농간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p.s
연인관계는 이다지도 덧없는 것이구나. 깨달았다. 쌩판 타인을 가족의 범주까지 올려놓을까 말까 재다가 결국은 친구만도 못한 존재로 팽개쳐버린다. 이런 덧없음에 종교인들은 짝을 찾지 않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