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의 성숙함에 대하여.

그 함정에 대하여.

by 갑판 밑 인어


다른 작가들의 브런치를 읽다 보면 종종 그 작가들이 아주 예전의 글들을 아카이브 한 것을 볼 수 있다.

비교질 하는 건 나의 오랜 고질병이라 맘에 드는 글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이 사람은 몇 살 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걸 글로 남겼었지?'라는 생각을 했다. 무의식 중에 그 작가의 현재 추정 나이대에서 그 글을 썼던 시기를 역으로 계산까지 해가며 당시 그 작가의 나이를 가늠하곤 했다.

20대 초반에 저런 생각을 했었다고? 나는 뭐 했지? 누워서 드라마나 봤지.

이런 결론에 도달하면 종종 그에 비하면 스스로가 얼마나 미숙한지 깨닫고 스스로에 실망하며 조급했었다.

저런 생각을 저 나이 때에 했던 사람은 지금은 얼마나 성숙하고 근사한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런 생각에 조급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성숙함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건, 글쓰기 모임을 같이 했던 사람이 자기는 성숙함이라는 게 너무 좋고, 멋있다고 말했던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그 애는 글 쓰는 사람들에게서 성숙함을 많이 느낀다고 했고, 좋은 사람도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글 쓰는 모임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걱정스러운 듯이 "글 쓰는 사람이 다 좋은 사람은 아닐 텐데..."라고 말했지만 사실 난 그 아이에게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애랑 같이 하는 글쓰기 모임에 꽤 괜찮은 글을 내고 싶어서 나름 고심하면서 열심히 썼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도 글쓰기 모임으로 그 애랑 교류하는 주제에 인생을 좀 더 잘 아는 현자인양 "글 쓰는 사람이라고 다 마냥 좋은 사람은 아냐" 같은 소리를 해댔었는데, 사실 그 애 말 듣고 '글 쓰는 사람 중에 좀 더 성숙한 사람 비율이 많다는 건 어쩌면 틀리지 않을지도 몰라. 그리고 성숙하다는 것은 확실히 매력적이지'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 이후 내가 인간에게 느끼는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에 성숙함이라는 카테고리가 추가되었다. 성숙함이라는 카테고리가 추가한 후에는, 나도 성숙해지고 싶어 했던 것 같고, 남을 볼 때도 뭔가 성숙한 느낌을 풍기는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미숙한 사람보다는 성숙한 사람을 선호하긴 하지만,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미숙한 사람이라서 미숙한 사람을 감당해내지 못하거든요. 대인이 되기는 그른 찌질한 이유입니다.) 모종의 경험 이후 나는 이제 더 이상 "글에서 성숙함이 느껴지는 사람"을 동경하지는 않는다.



글쓰기라는 것은 조금 모호하다. 요새 나는 글쓰기라는 행위가 굉장히 고평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말할 수 있다. 정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러니깐 그 사람이 흔히 말하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걸 언어로 정돈해서 드러낼 수 있는 사람임은 맞는데, 그뿐인데 내가 그것 이상으로 가치를 부여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언(言)과 행(行) 중에 무엇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 무엇이 더 가치가 있는가?라고 한다면 나는 행(行)이라고 말할 것이다.


글쓰기는 그저 고도로 발달된 언(言)이고, 일종의 선언(言) 일 경향이 크다라는 게 요즘의 나의 생각이다. 사고를 언어로 잘 정돈해서 짜임새 있게 표현한 것이 글이다. 결국은 사고를 가시적인 어떤 획의 조합으로 표현해 둔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라는 것은 쓰기라는 일종의 행위(行爲)를 동반하기 때문에 일각에서 그걸 행(行)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것 같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글쓰기는 언(言)에 지나지 않는 행위(行爲)이다. 앞 문장에도 봐라 언(言)에 지나지 않는 행위(行爲)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문장을 떠올리면 글쓰기가 언(言)인지, 행(行)인지 바로 알아차릴 문해력과 순발력이 당신에겐 있는가? 일단 과거의 나에게는 애석하게도 오랫동안 없었다.


논어



깨달음을 얻은 것은 비교적 최근으로, 내 나이를 생각하면 사실 최근에 겨우 깨달은 것이야 말로 내 미숙함의 아주 뚜렷한 증거 중 하나지 싶다. 최근에 글에서 성숙함이 느껴지는 사람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조금 깊은 교류 하다 보니, 그 사람의 행(行)에서는 그 글에서 만큼의 성숙함을 느낄 수 없었다. 혹자가 그 사람이 아주 미숙한 사람인가 묻는다면, 아니 사실 그 사람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사람이다 보니 성숙한 면도 있고, 미숙한 면도 있었던 거고. 그런데 나와의 관계에서는 미숙한 점이 조금 더 두드러지게 드러났을 뿐인 아주 평범한 사람. 그래서 그 사람이 미숙하니, 성숙하니, 나쁘니, 좋니 같은 그런 가치판단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다만 내가 집중했던 점은 내가 어째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종의 경계기(警戒期) 없이, 당연하게 성숙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그 사람에게 실망했는가였다.

나는 이 의문을 답을 찾기 위해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한참의 끝에 얻었던 결론은 나는 그 사람의 글을, 말을, 언(言)을 너무 신뢰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서 사람이 마음에도 없던 말을 꾸며냈다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정말로 그렇게 사유했고, 자기가 자기가 내뱉은 대로 살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의 언(言)이 품은 내용을 믿진 않지만, 지금도 그가 언(言)을 통해 표현했던, 그 언(言)에 대한 진심은 진심으로 믿는다.

언(言)이라는 요소가 가질 수 있는 아주 치명적인 장점이자 단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낭만이다. 언(言)의 낭만이라는 건 그 밝은 면을 말해보자면 언(言)으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어두운 점을 말하자면 입으로는 못 하는 게 없다. 정도일까. 아니 좀 더 천박하고 과격하게 표현해 볼까? 주둥이만 나불댄다. 정도면 되려나.

언(言)라는 건 결국 사고일 뿐 그게 100% 행(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사람의 사유를 고도로 정돈하여 표현한 언(言), 글이 그 사람의 본질과 닿아있다고는 할 수 있을까. 생각 끝에 나는 의외로 사유 자체는 그 사람의 본질이 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느 누군가는 그저 그 사유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성숙하다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그전까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교류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나는 언(言)은 어쩜 저렇게 낭만을 포함하고 있을까. 이상을 쉽게 좇게 할까.라는 쪽으로 생각이 변경됐다. 결국 행(行)함이, 실천이 없다면 그걸 성숙하다고 할 수 있을까.

글을 공유하는 걸로 우리는 서로의 사유를 드러냈지만, 서로의 본심, 본질에 닿았다 할 수 있을까.



입으로 원하는 바를 계속 말하다 보면 그걸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부정적인 애길하면 그것도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고. 말의 힘을, 언(言)의 힘을 무시하려는 건 아닌다. 언(言)이 가질 수 있는 낭만의 장점도 과소평가하고 싶지 않다. 이상을 현실로 실현할 수 없더라도, 행(行)으로 옮길 수 없더라도 그저 언(言)하는 것만으로도 충족되는 것이 분명 있으니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내가 하고픈 말은 언(言)은 그저 가능성, 지향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언(言)은 본질, 실체라기보다 우리의 희망, 소망이다.

조금 더 요즘 말로 표현해 보자면 그저 "추구미"일 뿐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성숙함을 지향하는 사람이지, 성숙한 사람이 아니다.

이걸 몰라서 나는 그 사람에 대해 평가(감히 제가 어떻게 사람을 평가하겠습니까. 선악보다는 나에게 맞나 안 맞나의 영역을 말씀드리는 겁니다.)나 경계 없이 불필요한 기대를 남에게 지웠고, 내 마음대로 그 사람에게 실망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걸 알지 못해서 다른 작가들이 예전에 쓴 글을 보면서 저렇게 성숙한데 나는 미숙하다며 조급해했던 것 같다.


내가 글쓰기를 평가 절하해서 그만둔다거나, 글 쓰는 사람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나는 이제 더 이상 언(言)에, 글쓰기에 과하게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고, (言)으로 사람을 다 알았던 양 가늠해보지 않을 것이다. 글로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엿볼 테지만, 그걸 그 사람의 본질이양 여기지 않을 것이다. 사유로 사람의 본질에, 내면에 닿았다 착각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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