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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녀의 인생철학 Nov 10. 2021

열여섯. 부끄러운 소갈딱지 마음

두 번째 기적의 기록


난 참 이쁘고 잘생긴 사람을 좋아했다.

여자인 내가 잘생긴 사람을 좋아한  어쩔 수 없는 본능인  같고, 이쁜 여자를 좋아한  예쁜 걸 많이 보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듯이, 이쁜 여자를 자주 보면 나도 이뻐질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이었다. 혹여나 내가 이뻐지지 않더라도 이쁜 친구들과 다니면 왠지 모르게  자존감이 오르는 듯한 느낌들어 좋았다. 이렇게 이쁜 친구들만큼이나 관심이  사람이 유머스러한 사람이었다.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나에게  필요한 필수조건이 사람들을 기쁘고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센스 있는 유머였다. 소심한 말괄량이였던 나는 친구들과 장난은 많이 쳤어도  같이 모인 자리에서 사람의 이목을 끄며 유머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이런 나의 부족함을 유머스러운 친구 옆에 있으면 왠지 채워질  같은 느낌이 었던 것 같다.




대학 입학식 날, 눈이 내렸다.

운동장에 옹기종기 모인 신입생들 사이에 베트남어과 동기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올커니!  자리가  자리다.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  명이  있는 자리 옆으로 자리 잡아 섰다. 그렇게 자연스레 인사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떡이냐,  이쁘장한  친구 중에  명이 입담이 예사롭지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 설렁설렁 던지말인데,  사소한 말투에 유머가 듬뿍 담겨있는  아닌가. 갑자기  친구에게 급속도로 호감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친구의 유머스러움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올커니!  친구랑  친해져야겠다.


입학 , 입학식  친해진   친구와   친구와 안면을  아주 쪼그마하고 귀엽게 생긴  친구와 나와 이름이 비슷해 ‘ 자매 불리며 친해진 친구, 이렇게 5명이 절친 동기가 되었다. 수업도 같이 듣고, 교양 수업도 같은 수업을 신청하고, 밥도   친구들과 먹었다. 유머가 몸에 베인  친구는 선배들에게도 거리낌이 없었다. 교내 식당에서  선배를 만나면 어김없이 선배가 사준 밥을 먹었다.   돈으로  밥을 그 친구 옆에서 먹으며  얻어먹는 기이한 능력을 지닌  친구가 참말로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왜 나는 밥 한번 얻어먹지 못하는가 나 자신을 탓하면서 말이다. 내가  가지고 싶어 하는 매력을  가진  같은 친구였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타학교 학생들과 미팅의 경험이 몇 번 있었던 나와는 다르게 인문계고에서 공부만 하다 온 이 친구들은 미팅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이 친구들에게 그 멋진 추억 하나쯤 만들어주고 싶었다. 누구한테 연락을 해볼까. 문득 미남이 유독 많았던 고1 때, 늘 인기투표에서 빠지지 않았던 남자애 하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화를 걸었다.

“5대 5, 미팅할래?”

그 친구는 흔쾌히 하자고 허락했다. 그렇게 대학 동기들에게 친해진 기념으로 첫 미팅의 선물을 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친구 인기투표에 항상 이름 올라가던 아이디. 이쁘게 꾸미고 온니.”


디데이가 왔다. 화장이라곤   적이 없었을 것 같던 인문계 아이들이 나름 꾸민다고 아주 촌티가 팍팍 새겨진 화장을 하고 나타났다. 미팅을 처음   티가  나는 옷차림, 촌티가 출출 흐르는 메이크업 실력. 내 실력도 보잘것없긴 하지만 뭔지 모르게 ‘이번 미팅 그냥 놀다 오겠구나.’라는 느낌이 살짝 들었다. 그래도 친해진 친구들에게 미팅이라는 경험하게   것만으로도 나름 만족스러웠. 그렇게 미팅 장소로 갔다. 앉아서 기다리니 고등학교 동창이 본인과 친한 친구들이라며 다 같이 들어왔다. 아뿔싸. 이럴  알았다. 인기남 주변엔 인기남뿐인가 보다. 연예인 뺨치는 외모의 꽃미남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순간 친구들의 복장을 살폈다. 분명 얼굴은 뒤질  없이 이쁜 친구들이다. 그러나 그 이쁜 얼굴을 받쳐주지 못했던 의상에 뭔가 민망함과 동시에 동창 친구에게 살짝궁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5 5 미팅 자리가 나는 가시방석이었나 보다. 미팅이 끝나고 예상했던 대로 커플은 탄생하지 않았다. 뻘쭘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같긴 한데,  자리에서 우리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다 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남자들과 헤어진 우리는 우리끼리 술자리를 가지며, 미팅 자리보다  신나게 놀았다. 그래, 커플이 안됐어도 이런  경험을 맛보게  줬으니 기분은 좋다.



친해진 우리는 술자리를 참말로 많이 가졌다. 그 술자리는 우리의 비밀도 서로 다 공유하게 만들어주었다.

 작고 쪼그마한 친구가 마음이 가는 선배가 있다고 한다. 학과장 선배. 아주 사근사근 다정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선배한테 자꾸 마음이 간다고 한다. 우리는  친구의 행복을 밀어주기로 했다.  선배가 지나갈 때마다  친구에게 알려줬다. 나의 1 시절, 친구들이 “미니야 지나간다 지나간다라고 하면 얼른 교실 밖을 뛰쳐나가 그의 뒤통수를 바라봤던 나와 다르게 우리가 밀어줄수록 부끄럼 많은 친구는 우리 뒤에 숨어 붉어진 얼굴을 가리기 바빴다. 우리나라 민족성은  희한하다. 남의 일을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는  보면 말이다.  1  나의 짝사랑, 그리고  친구의 짝사랑을 내 일 마냥 밀어주는  보면 말이다.



 

우리 학교는 신입생들을 대마도로 보내주는 행사가 있었다.

나의  해외여행인 셈이었다.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같이 대마도를 향했다. 학교에서는 나름 신입생들이 대마도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대마도 미션이라는  준비해 주었다. 과마다 미션을 주어 미션을 빨리 달성한 과에게 선물을 주었다. 대마도 내에 있는 세탁소 앞에서 단체사진 찍기, 어느 동네에 있는 등대를 찾아 등대 밑에서 단체 사진 찍기, 대마도 교복 입은 고등학생과 단체사진 찍기 ,  친구들과 재밌는 추억을 만들  있는 재미있는 미션이 많았다. 미션 장소를 찾아다니며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일본 학생은  있어왔다는 표정으로 아주 친절하고 자세히 알려줬다. 그렇게 단체로 우르르 다니며  친구들과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미션을 완수하고 저녁이 되었다. 어김없이 저녁은 술과 함께였다. 기분 좋게 마시다 보니 어느새 취기가 한껏 오른 동기들이 하나  생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리 5 자매도 취기가 상당히 올랐다. 그런데 우리   유머스러한 친구가 상당히 기분 좋게 취했다보다. 자리에서 쪼맨한 친구의 마음에 자리 잡았던  학과장 선배가 현재 여자 친구가 으며, 헤어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취기가 한 끗 오른, 선배들에게  거리낌 없었던 유머스러한 친구가 쪼맨한 친구가 마음에 두고 있던  학과장 선배를 찾아갔다. 혹시  친구와 연결해주려고 가나? 우리도  뒤를 따랐다. 적잖게 술에 취한  친구가 아주 유머스러우면서도 조금 과한 듯 하지만, 또 미워하지 못할 애교 섞인 말투로 선배 숙소 침대에 앉아 침대를 톡톡 드리며 “선배 여기  앉아보세요.”라고 했다. 취한 후배들이 찾아와 꼬장 부리는 장면을 피하고 싶은지 한참을 서성이던 선배가 계속되는 친구의 고집에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한 얼굴로  친구 옆에 앉았다.  친구가 어떤 이야기를 이어갈지 궁금했다. 궁금증이 가득  얼굴로, 거리낌 없이 선배를 대하는 행동에 감탄을 머금으며 그 친구의 입을 쳐다봤다.


그래서요? 전 여자 친구랑  헤어졌는데요?”

적잖이 당황한 선배의 얼굴이 느껴졌다.


“뭘 그런 걸 묻고 그래. 어쩌다 그렇게 됐어.”

“그래서요. 왜요? 왜 헤어졌는데요.”

“(먹젆듯이 웃으며) 아이고, 와 이라노. 그만 물어라.”


선배는 적잖이 당황한  하지만 아주 부드럽고 다정한 얼굴로  취한 후배를 다독이며 대답을 피했다.

그러나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본래 성격인 건지, 대답을 들을 때까지  친구도 물러섬이라고는 없었다. 쪼맨한 친구와의 연결을 기대하며 따라간 자리에서 나도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술기운에 귀염 폭발하는  친구의 막무가내가 처음엔 어이가 없어 웃기다가도 진짜   없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났다. 그리고는 술김에 너무 솔직하게 쪼맨한 친구의 마음을 털어놓는  아닐까 노심초사했지만, 그러지않을  같아 안심하고  방을 나왔다. 후일담에 결국  친구는 학과장 선배가  헤어졌는지 결국  이유를 듣고서야  방을 나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대단한 아이다.




그렇게 대마도를 다녀온 후, 우리 5 자매는 학과장 선배와의 술자리를 자주 가지게 되었다.

학과 후, 늘 댄스동아리의 연습이 있었던 나는 연습이 끝난 후 9시가 넘어서야 그 술자리를 참석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내가 빠진 4 자매와 학과장 선배와의 술자리가 있던 날이었다. 동아리 연습이 끝나자마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머스러한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어, 미니야. 어데고. 빨리온나. 여기 학교 앞에 000이다. 얼렁와. 미니야. 잠시만.”

다른 친구가 전화를 바꿔 받았다.

미니야, 빨리온나. 우리 다 니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목소리를 듣자 하니, 혀가 꼬부라져 술을 상당히 많이 먹은 상태였다. 술김에 선배와 큰소리로 대화하는 소리가 전화 통화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아이고, 아(이)들 상당히 취했네.’

뭔가 친구들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 술자리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거기 어디라고?”

잠시 후, 그나마 목소리가 멀쩡해 보이는 나의 다른 민 자매 친구가 전화를 건네받았다.


어, 미니야. 근데 지금 애들 너무 취했다. 너무 취해서 지금 다 집에 보내야 될 것 같다. 니 그냥 집에 가라.”


순간 너무 뻥 졌다.

분명 친구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빨리 오라 했다. 근데 이 친구는 냉정하게 그냥 오지 말고 집으로 가라는 것이 아닌가. 목소리를 들어보니, 친구들이 상당히 많이 취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보다 오지 말고 그냥 집으로 가라는 이 친구의 말이 솔직히 조금 실망이었다. 그냥 술자리 파하고 집으로 간다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길로 나는 그냥 귀가를 했다. 후일담에 이 친구는 친구들을 다 택시 태워 보낸 후 선배와 단둘이 술을 마셨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뭐야? 선배랑 단둘이 술 마시려고 나보고 오지 마라고 한 거야?’

짜증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우리 5 자매 중, 과에서 우리를 ‘민 자매’라 불러서 그랬을까.

나는 우리 5명 중 이 친구와 유독 친했다. 수업시간의 그 친구의 옆자리는 늘 내 자리였고, 그 친구가 옆에 없으면 “민 자매 어디 갔어?”라고 물어볼 정도로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나에게 꽤나 충격이었나 보다. 술자리에 빠짐없이 참석했던 나에게 껌딱지 친구가 냉정하게 그냥 집에 가라고 했다. 그 부분도 실망이었지만, 친구들을 다 집에 보내 놓고 선배랑 단둘이 술 마셨단 이야기도 충격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그 친구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친구의 진심을 알아볼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오지 마라며 나를 배제시킨 그 충격이 너무 컸다. 그 친구를 미워할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계기가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나는 이쁜 사람을 좋아했지만, 이쁘다고 다 좋아한 건 사실 아니었다. 예뻐도 예쁜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털털한 선머슴 같은 성격의 미인 친구들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와 친했던 이쁜 친구들은 남자 애들도 피하던 교실에 나타난 바퀴벌레를 신고 있던 슬리퍼로 때려잡을 정도로 선머슴 같은 아이들이었다. 남자들이 교실에 있던 말던 체육복을 그냥 교실에서 갈아입고, 생리대 빌려달라 하면 남학생들 다 보는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 주던, 남자 동창들을 부끄럼 많은 여성성 많은 아이들로 만들어 버리던 아이들이었다. 이쁜데 이쁜 티가 하나도 나지 않을 정도로 털털한 미인들이라 아주 맘에 들었다.


우리 5자 매도 털털한 선머슴의 소유자들이라 좋았다. 그러나 민 자매 친구는 조금은 다른 성향의 소유자였다. 주변을 아주 잘 챙기는 엄마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늘 차분하고, 주변을 잘 챙기며, 수줍음 많은 웃음을 늘 지녔던 친구. 우리가 너무 철없이 발라당 까진 행동을 보이면 늘 차분히 우리를 제재시켜주던 정말 다정다감한 성격의 친구였다. 신중히 생각해봤다면, 너무 취한 친구들이 걱정되어 집에 다 보냈고, 본인은 술이 덜 됐고, 취기 없이 멀쩡했던 선배랑 자연스레 술자리를 가졌을 확률이 높았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미워하기 위해 변질된 나의 눈과 마음으로 이 친구를 내숭으로 장착해 남자들에게 슬쩍슬쩍 매력을 흘리는 여우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머스러운 친구와 학과장 선배가 사귀게 되었다. 아마도 대마도 사건이 큰 모양이다. 계속 전 여자 친구 이야기를 묻는 이 친구가 본인에게 관심이 있어서라고 느껴진 것 같았다. 대마도를 다녀온 후, 지속적으로 있어왔던 술자리도 한 몫했으리라. 수줍음이 많아 늘 숨기 바빴던 친구 대신, 그 친구를 밀어주고자 했던 대범한 친구가 아리송하게 진짜 대범한 사람이 된 셈이다. 그렇게 우리 5 자매는 찢어지게 되었다. 조금씩 거리감을 조성했던 나와 민 자매 친구와도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고, 커플 탄생에 충격을 받은 쪼맨한 친구는 자연히 나와 민 자매였던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히 나는 입학식 때 만났던 그 두 명의 친구와 캠퍼스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다른 이쁘장한 친구가 그 쪼맨한 친구의 마음을 달래주며 친분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찢어진 듯 아닌 듯한 관계를 이어가며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1학년 여름 방학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입학 전, 친구와 다녔던 과자 공장 아르바이트.

이후 자동화 기계가 들어와 아르바이트생을 더 이상 채용하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방학 때마다 과자공장에 지원하고 알바를 다녔다. 고등학교 왕따 5기 절친 4명. 그중 한 명은 취직이 되어 일을 하고 있었고, 대학으로 진학한 우리 셋은 방학마다 과자공장을 다녔다. 취직을 한 손예진 닮은 친구와 나와 같은 학교의 태국어과에 진학한 친구는 같은 ‘혜’ 자 이름으로 ‘혜 자매’라 불렸고, 홍은희 닮은 이 친구와 나는 ‘희’라는 이름을 지녀 ‘희 자매’라 불리었다. 홍은희 닮은 이 친구는 이쁜 미모만큼 남자 친구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남자 친구가 생기면 그 친구의 우선순위는 늘 남자 친구였다. 우리가 2순위로 미뤄지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 이해가 될 만큼 친한 사이였다. 만나기로 한 시간에 이 친구는 늘 지각을 했다. 이 친구를 기다린다고 셋이서 맥도날드에 앉아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기다려도 그저 말없이 기다려줄 정도로 친했다. 이게 우리 왕따 5기들이 졸업 때까지 버텨낼 정도의 끈끈함이 우리에게 있었다. 그러나, 어렸던 그때가 철이 없긴 했나 보다. 그렇게 모든 걸 다 이해해줄 것 마냥 끈끈한 줄 알았다.


대학 입학 후, 첫여름방학.

과자 공장 출근을 위한 새벽 출근 버스에 그 친구가 타지 않았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태국어과 친구와 번갈아 가며 전화하고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 한 번 오지 않았다. 공장에 도착해 반장이 왜 안 오냐며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물었지만, 대답해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두 사람은 걱정보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주 뒤늦은 시간에, 그냥 잤다는 짤막한 대답만 들었을 뿐이다. 화가 치솟았다. 미친 듯이 걱정했던 그 마음이 허무해지기 시작했다. 그 마음이 이 친구에 대한 미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우리를 친구로 생각 안 하는가 보다. 우리 둘은 이 친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실망이 커서였을 수도 있지만, 그동안 친구가 보였던 행동이 끈끈한 우정으로 이해하고 넘어간 건 아니었나 보다. 정말 끈끈했다면 이 일로 그 친구를 멀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우리 왕따 5기 멤버가 4명에서 3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3년 내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억울한 일들을 같이 버텨내며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건만, 졸업 후 반년만에 이런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만 더 신중히, 그 사람 입장을 헤아렸다면…

이렇게 그 사람을 나의 잣대와 선입견으로 나쁜 사람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친구라는 좋은 인연을 끊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철없고, 마음이 소갈딱지마냥 좁았을까. 오늘 이야기 주인공인 두 친구와 나와의 인연은 현재까지도 이어지지 못했다. 그 소갈딱지처럼 좁디좁은 마음만 아니었어도, 아주 이쁜, 소중한 친구 두 명이 지금 내 곁에 있었으리라. 참 후회가 많이 남는 인연이다. 지금도 가끔 잘 지내고 있나 나 혼자 안부의 인사를 건네곤 한다. 참, 철이 없었던 20대. 마음 너그러이 쓰지 못함에 있어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하고 싶은가 보다. 철이 없었던 그 젊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다시 20살의 나로 돌아간다면, 이 두 친구와 나와의 인연을 다시 엮어주고 싶다.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말이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은 철이 들었을 것, 이때를 상기하며 매 순간 모든 인연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야겠다. 또다시 이런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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