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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녀의 인생철학 Dec 01. 2021

열여덟. 누가 뭐래도 내가 주인공

두 번째 기적의 기록


대학 동아리방은 자석같이 우리를 끌어들이던 마법 같은 놈이 존재했다.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세탁은 언제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위생(衛生)의 ‘위(衛)’자도 모를 쾌쾌 묵은  사이즈 침대 하나.

냄새나고 지저분한 그 침대가 어찌나 그리 마법을 부리던지.

동아리 사람들은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은 늘 그 침대가 그리워 동방을 끊임없이 찾았다. 늘 고혈당에 시달리며 잠과의 사투를 벌이던 나 또한 고등학교 시절 침을 질질 흘리며 깨어났던 책상 대신 이 침대가 나의 고혈당 졸림을 해결해 주곤 했다. 얼마 전, 동아리 모임에서 이 마법 침대의 이야기가 나왔다.

“피부에 뭐 안 생긴 게 용하다. 그쟈? 더러운 줄도 모르고 우리 진짜 많이 잤는데.”

늘 땀에 차 있던 찌든 비닐 공연복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아님 젊어서 피부가 잘 견뎌준 것인가. 우리는 그 침대와 껌딱지처럼 잘도 지냈다.


공강 시간.

어김없이 나는 그 침대를 찾아 동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한쪽으로 남친 선배가 곤히 잠들어있었다. 그저 침대가 그리웠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곤히 잠들어있는 그를 보며 옆에 누웠다. 나이 많은 선배라도 곤히 잠든 모습은 아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잠들어 있는 그를 바라보던 내 눈이 스르륵 감겼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화들짝 놀라 일어나는 선배 덕에 잠에서 깼다. 아무렇지도 않게 옆에 누워 자고 있는 나를 보고 놀란 듯했다. 무슨 생각으로 아무렇지 않게 옆에 누웠냐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옆에서 보니깐 햇살이 비춰서 솜털이 그냥 보이더라. 그거 보면서 이 어린 아이랑 사귀어도 되나? 순간 양심 찔리더라.”


이 때는 몰랐다.

무슨 생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옆에 누워 잤냐고 물어보는 말이 무엇인지.

내 얼굴에 아직 솜털이 송송 나 있을 정도로 어린 나이었는지.


그저 순수한 눈빛으로.

‘얼굴에 솜털이 나 있는 나는 아직 애기로구나’라는 말이 그저 기분 좋아 헤벌레 했던 나였다.

지금과는 다르게 참 순진했다. 그때의 나는 말이다.




연애도 좋지만, 거짓말쟁이 여자 친구가 되는 건 싫었다.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될 것 같다.


나의 당뇨 일생을 동아리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뇨 환자라면 이렇게 술이고 음식이고 마구 먹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혈당일 때마다 맞아야 했던 인슐린 주사는 늘 똥내가 나는 화장실에서 몰래 맞고 나왔다. 젊었어도 10대와 20대는 확실히 달랐다. 10대에는 늘 고혈당을 유지해도,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았어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20대가 되니, 고혈당 증세를 견뎌내기 조금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위생에 신경 써야 했던 주사는 늘 똥내와 찌릉내가 뒤섞인 화장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맞고 나왔다. 이 덕에 아무도 나의 당뇨라는 친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술을 마셔도, 음식을 마구 먹어도, 늘 가족들과 친척들의 눈치를 보며, 몰래 입에 넣어 먹었던 지난 세월에 선물이라도 주듯, 내가 당뇨 환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대학교 선배, 동기들은 그 누구도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에 참견하지 않았다. 그런 대학생활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천국과 같았다. 아마 내가 인슐린 주사를 맞는 장면을 보게 되는 순간, 어릴 때부터 먹는 음식에 잔소리를 했던 가족들처럼, “먹어도 되나? 먹지마라” 라며 잔소리를 할 사람이 생길 것이 뻔하다. 대학 생활 내에서 그런 상황이 다시 생기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러나 남자 친구의 존재는 달랐다.

이대로 속이고 연애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이야기해서 헤어지자 하면 어쩔 수 없고 뭐.’

이렇게 쉽게 생각했던 이유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해서 “헤어지자”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픈 몸인 것을 뻔히 알고도 사귀자고 한 친구가 있었다. 병원에 입원하면 걱정스러운 얼굴로 병문안을 오기도 했었다. 아픈 몸이라고 헤어지자 하는 남자는 사귀어봤자 뻔한 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솔직한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은 디데이가 왔다.

어김없이 그날도 우리는 술과 함께였다.

“선배… 실은 제가 할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 둘만 따로 시간 가져도 될까요?”

그는 그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조금은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로 “그러자.”라는 대답을 했다.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며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동네의 고깃집을 갔다. 이 날 만큼은 고기와 술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식으로 “나는 환자이다.”라는 고백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남자 친구의 반응이 조금은 걱정되긴 했다. 그냥 체념하는 것이 나으리라. 자리를 잡고 조금씩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맨 정신으로 말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주 쪼끔은 술의 기운을 빌리고 싶었는가 보다.


“선배… 저 실은요. 지병이 좀 있어요. 실은 당뇨가 있어요. 어릴 때부터 소아당뇨요. 놀랬죠?”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였는지 깜짝 놀라는 눈치다.

“당뇨?”

“네, 더 시간 지나기 전에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될 것 같아서요. 선배가 혹시나 싫다 하면, 더 시간 지나고 사람들 알기 전에 정리하는 게 맞는 거 같애서요.”


지금 생각하니 낯이 뜨겁다.

누가 결혼하자 한 것도 아니고, 당뇨면 연애를 못하는가? 그런 것도 아닌데 나는 늘 한발, 아니 열 발자국은 미리 가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이야 당뇨가 국민병 비스무리하게 되어 큰 병이 아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17년 전만 하더라도 당뇨가 이렇게 국민병이 될 줄은 몰랐던 시절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선배도 ‘당뇨’가 어떤 병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고 있었다.


선배의 반응이 궁금했지만, 다행히 그는 그거 뭐 별 것 아니다는 식으로 넘겨주었다.

“설마 전염병은 아니제?” 하며 농담 섞은 어투로 웃으며 물었다.

“네, 그건 아닌데.”

“그럼 됐지 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나는 괜찮다.”


속으로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 숙제는 끝났다. 속이고 만남을 지속하기가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우선 나는 솔직히 털어놨고, 상대는 괜찮다고 했고, 그럼 내 할 도리는 끝난 거다. 그렇게 속 편히 당뇨 여친과 그 여친의 남친은 술과 고기로 2차를 끝내고 귀가를 했다.




다음 날, 동아리 연습 후 단 둘의 술자리가  있었다.

“당뇨에 대해서 알아보니깐(주절주절)”

그는 나에게 당뇨라는 병마에 대해 듣고는 집에 가서 잠 안 자고 당뇨에 대해 공부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이 말을 이어나갔다.

“미니야, 걱정마라. 내가 니 꼭 낫게 해 줄게. 찾아보니까 당뇨 있으면 부부관계도 못하는 갑뜨라. 내가 꼭 돈 많이 벌어서 니 낫게 해 줄 거다. 걱정마라.”

그 말 듣고 얼마나 웃기던지.

아 딴것도 아니고 부부 관계 때문에?

당뇨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 왔다는 느낌에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 당뇨가 있으면 부부관계도 하면 안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 버렸다. 연애를 하면 자연히 그런(?) 야릇한 상황이 오게 될 거라곤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아주 순진한 나였다. 그러나 뇌리에 박힌 그 한 마디가 내 인생을 바꿔 버렸다. 그가 실수했다. 그와 연애기간이 길어질수록 그와 동기였던 선배들이

“스님~ 오셨습니까.”라며 두 손을 합장하며 인사하기 시작했다. 그이도 이런 상황이 될 줄 모르고 했던 말일터. 어찌 됐든 이는 명백히 그 말을 했던 그가 실수한 것이다.




2학기가 시작되고, 신입생으로서 처음 참석한 제5회 정기공연이 열렸다.

지난 1년간 교내외에서 했던 공연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준비해야 되는 것이 있었다. 공연과 다음 공연 사이, 몇 사람씩 나와 각기 준비한 장기자랑을 보여주며 자기 소개를 하는 인터벌 시간이 있었다. 신입생들은 각자 나뉘어 선배들과 조가 편성되었다. 나는 보아의 ‘My Name’의 오디션을 같이 봤었던 인이 언니와 형주 언니와 한 조가 되었다.


“우리 인터벌 때 뭐하지? 생각해봤나?”


인이 언니의 이 물음에 문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시 서울예술대 무용학과 출신의 개그우먼 김미연이 개그 프로그램에서 음치 노래를 부르며 엄청난 댄스 실력을 뽐내는 ‘라이브의 여왕’이라는 개그가 유행하고 있었다.


“언니, 김미연 공연 어때요?”


김미연의 라이브의 여왕 (유튜브 ‘MAME MAME')

김미연 [라이브의 여왕] 공연보러가기

출처 : https://youtu.be/hjdKgCWi4mU ​


“은다. 싫다. 하려면 니가 하던가.”

“네. 그럼 제가 할게요.”


나에게 변태 성향이 있는 것인가.

순진한 눈빛을 하면서 꼭 남들을 웃기고 싶어하는 이런 똘아이같은 기질이 한 번씩 나오곤 했었다. 언니들과 바다의 ‘Music’이라는 곡을 준비하기로 했다. 선배들과 열심히 안무를 준비하며, 잠시나마 나를 보며 웃게 될 관객들을 위한 음치 라이브를 개인적으로 준비해 나갔다. 공연을 앞두고 나의 멋들어진 음치 라이브를 위해, 음향 담당 선배가 MR 음원을 준비해 주었다.

“미니야, 니 라이브 노래 시작하는 타이밍에 1초 정도 텀이 있으니깐 1초 정도 쉬고 노래 들어가면 된다이”

“네”

아주 자신 있게 대답하고는 정식 댄스 공연보다 이 개그 공연을 더욱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나의 장기자랑이 시작될 인터벌 시간이 되었다.

코요테의 ‘디스코 왕’의 단 30초의 메인 자리 이후, 처음으로 가지는 공식적인 나의 메인 무대였다. 그 무대에서 평소에 남을 즐겁게 해 주고픈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나의 뒤쪽으로 언니들이 자리 잡고 섰다.

그리고 메인 자리에 내가 자리 잡고 섰다.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었고, 우리의 안무도 시작되었다.

초반의 립싱크 구간이 끝났다. 드디어 나의 재능을 뽐낼 차례이다. 얼마나 기대감이 컸던가. 선배가 잠시 쉬고 들어가라는 그 ‘1초’를 까먹고 말았다.

음악과 맞지 않는 라이브가 시작되었다.

순간 ‘아차. 1초’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희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곧바로 음악에 맞춰 라이브를 시작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객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안무를 하며 살짝 보게 된, 웃느라고 춤을 제대로 못 추고 있던 내 뒤의 언니들. 나에게는 그 어떤 정식 공연보다도 성공적인 인터벌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환호성이 이어졌다. 활짝 웃으며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공연이 끝난 며칠 뒤, 영문학과 동기 친구가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중국인 언니가

“그 친구 불쌍해서 어뜨케? 그래도 춤이라도 잘 춰서 다행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그 공연은 대성공적이었다. 음치라고 소문나도 상관이 없었다. 고 1 뮤지컬 연극 공연에서 유일하게 뮤지컬 노래를 불렀던 나였다. 음치로 소문나도 내가 아니면 그만이기에 상관없었다. 그때는 남자 친구가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도 없었다. 그저 많은 사람을 웃기고, 내가 돋보였다는 사실이면 충분했다.


“미니 혈액형은 AB형인 게 틀림없다.”

선배들의 이 말은 내가 가진 똘끼 플러스 재능에 대한 극찬이었다. 이 모든 게 완벽한 정기공연이었다.

그 어떤 공연에서 나의 정식 메인 자리가 없었던 대학교 신입생의 첫 정기공연에서의 내 마음속의 주인공은 이미 ‘나’로 가득 찼다.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메인 자리는 내가 만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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