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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녀의 인생철학 Dec 15. 2021

저혈당 쇼크

오늘의 기록의 시작

나의 [세 번째 기적의 기록]이란 에세이는 나의 투병일지를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기록이다. 그렇게 평소에 써보고 싶었던 에세이를 작성하며 과거를 회상해보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세 번째 기적을 위한 현재에 머무르고 있다. 과거의 그 모든 사건들이 지금 현재의  내가 있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의 나는 지나간 나의 역사인 것이다. 나에게 중요한 건, 바로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나이다.


오늘 새벽,

나에게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큰 사건으로 커지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게 되긴 했지만, 이 사건이 나에게 있어서 자그마한 터닝포인트를 안겨다 주었다.




나와 같은 인간 완성의 수도 길에 동행하고 있는 도인들에게 종종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다. 바로 수마(睡魔 : 견딜 수 없이 오는 졸음을 악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천지공사를 받는 는 일에 있어서 수마와 자신과의 싸움을 숱하게 해오고 있다. 그러나 나를 찾아오는 수마는 그 반대의 성향을 띄었다. 공사를 받들기 전, 피로를 온전히 풀고 가야 되는 중요한 시점에 어김없이 잠을 못 들게 만들었다.


 커피를 마시면 잠 못 드는 현상이 없었던 내가 3번째 합병증으로 만성신부전증이 와 투석을 하게 되면서 간과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서 동시에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들지 못하는 증상이 생겼다. 그렇게 지난 7년간 오후가 되면 커피를 마시는 게 두려워졌다. 그러나 최근, 3번째 기적을 위한 자연 치유로 최근 몸의 호전이 많이 일어난 덕이었을까. 11월부터 오후 늦게 커피를 마셔도 잠 못 드는 현상이 없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과신이 화근이었다.

중요한 공부를 앞둔 13일 밤,  이제 커피 마셔도 잘잔다라는 과신으로 잠들기 직적에 마신 커피우유가 화근이 되었다. 새벽 4시가 된 손목시계를 확인하고서야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중요한 공부가 든 12월 15일 전날 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극도로 피곤함이 몰려왔다. 손발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피곤함에 따신 물로 목욕하고 9시 반경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꿈도 꾸지 않은 채 곤히 잠들었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뭔가 죽지 않고 살고자 하는 나의 무의식이 아주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나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의식은 아직 있었다. 혼미하긴 하지만 의식은 있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든 나의 발길질과 짧은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미니야 왜?" 하며 놀래서 방으로 뛰어들어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의식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정신과는 다르게 내 육체는 의식이 없었다. 나의 정신과 육신이 분리되어 따로 놀고 있었다. 나의 정신은 잠시 후 5시에 출근하셔야 되는 엄마 고생시키지 말라며 말끼를 못 알아먹는 육신에게 끊임없이 소리쳤다. 육신이 말끼는 알아먹은 듯하다.


"미니야, 왜 그라노? 저혈당이 가?"

"아니, 아니다."


손을 절레절레 흔들던 내가 침대로 머리를 처박고 벌렁 쓰러졌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기에는 정신조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있어 신과 같은 존재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나의 행동, 말 하나하나가 어떤 사인을 주고 있는지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셨다. 내가 저혈당이 아니라고 하는 그 대답만으로도 진짜 저혈당이라 대처해야 될 상황인지, 진짜 멀쩡해서 "저혈당 아니다."라고 말하는지 금세 알아차리셨다. 다행히 엄마는 지금 저혈당 쇼크가 왔음을 금세 알아차리셨다.


엄마는 급하게 자연치유를 위해 마시고 있는 일명 불로초 주스(내가 개명한 치유 주스)를 한잔 타 와 내 입에 넣어 주셨다. 이 불로초 주스 참 용하다. 평소 저혈당이 와 주스며 음료수며 사탕이며 있는 대로 입에 잡아넣고 정신 차리기까지 2-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 정신 차려지는 2-30분간 그 저혈당 쇼크의 느낌에서 벗어나고자 있는 대로 닥치고 먹어댔다. 그렇게 저혈당 쇼크에서 벗어난 나는 다시 고혈당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이 불로초 주스는 당을 올리지 않으면서도 마시자마자 정신이 돌아오게 만들어 주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엄마와 나는, 저혈당 증세가 오는 비상 때마다 이 불로초 주스를 애용했다. 오늘 같은 증세는 저혈당이 굉장히 진행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정신 차리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법이었지만, 불로초 주스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정신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불로초 주스를 맥이고 곧장 포도 진액 주스를 타 온 엄마가 본인의 몸으로 나의 등받이가 되어 내 몸을 받치고 포도주스를 입에 넣어 주셨다. 포도주스를 마시는 도중 정신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돌아온 정신이 또다시 엄마를 힘들게 했다는 마음과 동시에 1시 57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에 눈이 향했다. 엄마 출근 기상시간 새벽 5시, 지금 새벽 2시. 아차 엄마가 잘 수 있는 시간이 고작 3시간밖에 없네. 나 때문에 또 엄마가 잠을 설치게 되었구나.


시간을 계산할 정신이 있는 걸 보니 정신은 잘 돌아온 듯하다. 간간히 저혈당 증세가 있긴 했지만, 이 정도의 쇼크상태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봤다. 미안한 마음에

"엄마 이제 괜찮다. 얼른 자라."라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가방에 비상으로 넣어둔 초콜릿 몇 조각을 입에 넣어주고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불을 끄고 나가셨다.


우리 엄마는 이 짓을 25년째 해오고 계신다. 내 나이 37. 곧 마흔을 앞둔 다 큰 성인이지만, 이런 저혈당 쇼크 증세가 일어날 때는 3살보다도 더 안 되는 정신연령, 아니 육체가 되어 버린다.




오래간만에 느껴본 오늘 새벽의 저혈당이 또 다른 에세이를 만들었다. 에세이를 써오며 과거의 내 역사에만 매달려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과거의 치유 과정은 나의 역사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추억에 불과했다. 지난 과거로부터 얻어온 수많은 사건과 깨달음이 나에게 중요한 부분이긴 하다. 그러한 나의 과거가 누군가에겐 희망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마음에 글로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글을 재미나게 읽어주는 친구들 덕에 투병과 관련 없는 나의 전반적인 에세이도 담기게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 현재, 3  번째 기적을 향한 여정이 중요한 시점이다. 그렇게 시간순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에세이가 오늘의 나에게 까지 오기에는 너무나도 오래 걸릴 일이다. 그리고 오늘의 나를 기록하게 되는 날이면, 오늘 같은 짤막한 사건은 잊혀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오늘. 오늘의 사건에 대한 여정, 깨달음. 그리고 기적을 향한 몸무림이 담긴 그 모든 것들. 잊히지 않기 위한 나의 투병일기.

세 번째 기적을 향한 오늘에 대한 에세이 기록을 시작해야 될 것 같다.


이렇게 마음먹고 또다시 공부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의 무게로 다시 잠을 청했다. 저혈당 쇼크의 여파인지 어쩐지. 온 우주의 무게가 나에게 실리는 신기한 느낌이 든 오늘의 새벽 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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