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환타지, 만화 속에 빠져보기
어딜 때 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꼬맹이 시절에 담배 연기 가득한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다가 엄마에게 끌려와서 혼나기도 많이 했었다. 나이가 들면서 영웅적인 주인공이 악당들을 처단하는 무협에 빠지기도 하고, 드래곤과 엘프가 출몰하는 환타지 소설에 빠지기도 했다. 수능 언어영역에서 나름 성공적인 점수를 받았는데, 만화를 많이 읽은게 도움이 됐다고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현재 진행형으로 여전히 좋아한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참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살았던 것 같다. 성적에 민감한 부모님 때문에 매달 치러지는 월례고사와 중간, 기말고사가 항상 힘들었다. 엄마가 억지로 끼워넣어서 형, 누나들과 함께 들어야 했던 학원수업도 스트레스였고, 약주만 드시면 똑같은 인생 레퍼토리를 자식들에게 늘어놓으셨던 아버지도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
그래서 더 만화와 무협같은 환상의 세상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현재의 내가 가지고 있는 걱정거리를 내려 놓고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만화방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이 세상에서의 걱정이 밀려오곤 했지만.
어린 시절만큼 몰입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무협, 환타지 소설, 만화는 좋아한다. 요즘은 만화방을 가는 것 대신에 집구석을 뒹굴면서 패드로 그것들을 보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 보다는 실제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주인공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용이 불을 내 뿜는 이야기가 내 취향에는 더 잘 맞는듯 하다.
어릴적 봤던 영웅적이고 착한 주인공들은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주인공이 음모를 꾸미는 흑막이 되거나, 자기만의 신념으로 주변인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일을 꾸미거나, 착각에서 비롯된 일들이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서 세상을 구한 영웅이 되어 버리는 스토리가 흔하다. 한 때, '이고깽'(이세계로 간 고등학생들이 깽판을 친다) 또는 '회빙환'(회귀, 환생, 빙의물) 계열이 발간되는 장르소설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시기도 있었으나(현재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힐링물, 착각물, 가족물, 육아물, 레이드물, 게임물, 아이돌물 등이 추가되면서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듯 하다.
만화와 장르물의 매력은 다음 스토리를 계속 상상하고 기대하게 하는 흡인력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상상력을 빌려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끼고 일반인은 할 수 없는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에 매료된다.
고뇌하는 주인공보다는 행동하는 주인공이 대세다. 악당이 있으면 시원시원하게 박살내고,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음모를 꾸며서라도 빼앗고, 성장을 위해서 독식하고, 갑갑한 주변인은 가차없이 쳐 낸다. 그런 사이다 같은 주인공에게서 대리 만족을 느낀다. 답을 찾기 어려운 스스로의 현실을 거부하면서...
현실도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마음의 짐을 잊어버리고 도망칠 수 있는 상상 속의 세상이 좋다. 고민도 없고 삶의 통찰도 부족한 알맹이가 없는 컨텐츠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면 어떤가 싶다. 재미만 있으면 되지. 머리가 복잡할 땐 만화나 환타지, 무협소설 등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떠나 본다. 해결되는 건 없지만 기분은 좀 나아진다.
나중에 글솜씨가 늘면 환타지 계열의 장르 소설을 꼭 한번 써 보고 싶다. 내가 했던 상상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