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하얀 접속

공장

by 박마이
쓰다듬는다. 진갈색 털이 한 올씩 가지런히 내려온다. 털 위에 내 손을 덮는다. 너의 어깨뼈가 느껴진다. 한 번 더 쓰다듬는다. 두껍다. 따뜻하다. 눈에서 물이 나온다. 젖었던 운동화에서도 걸을 때마다 물이 스며 나왔다. 한 방울이 털 위에 떨어진다. 너가 고개를 든다. 나를 본다. 너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너. 입을 벌린다. 삼켜 버릴 듯이,


깜깜한 시야 속에서 팔을 더듬으며 머리맡에 놓인 전등불을 켰다. 노란 불빛이 아침이 되어 창문으로 스미는 햇빛과 만나 방 안에 희미하게 번졌다. 라디에이터가 가동되어 뜨겁고 건조한 공기 속에 땀이 나 면티셔츠가 등에 붙었다. 입고 온 흙색 야상 패딩은 나무로 된 기둥 옷걸이에 걸려있다.

침대에서 나와 원룸으로 된 오두막 내부를 살폈다. 침대 옆에 협탁이 있고, 따뜻한 국화차가 놓여 있다. 국화차와 발음이 비슷한 국화빵. 붕어빵. 전날 붕어빵 가게에 갔었지. 붕어빵 가게 주인이 내가 만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전날 밤.

짙게 물들어가던 청색 하늘. 사방의 설경. 눈 쌓인 우듬지. 얼어붙은 발. 포대기에 물건을 하나씩 넣듯 기억의 파편을 하나씩 주웠다. 형태가 묵직한 건물을 지나쳐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체온을 잃은 발 때문에 어떤 문이라도 열어야 했고, 그 문을 꼭 열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각 나무 파편으로 만들어진 문고리를 밀고 들어와, 건조한 공기 속에 외투를 벗은 채 쓰러지듯 누웠다. 발바닥을 침대 이불에 꼭 붙이고.


협탁 옆 나무 스톨에 앉아 국화차를 홀짝이며 어제를 곰곰이 더듬고 있던 와중,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궁궁.


궁궁.

궁궁거리는 소리가 귀를 통해 들어와 뇌를 울렸다. 낮고 묵직한, 소리 뒤에 여운이 남는 소리로 천장에서 울리는 발소리처럼 외부에서 발생하는 소리였다. 커튼을 젖혀 서리가 낀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들어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소리는 확대되었다. 창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누가 켰는지 모를 방 안 라디에이터를 끄고, 외투를 입은 뒤, 남은 국화차를 털어 마시고 컵을 협탁 위에 놓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궁궁.


궁궁.


소리를 모아 내 귀에 갖다 댄 것처럼 울렸다. 소리의 진동은 소복하게 눈이 쌓인 나뭇가지를 흔들었고, 오두막의 문고리를 때렸고, 바람을 불어갈 방향으로 이끌었다. 온 세상 존재들에게 이명을 일으키는 것처럼 파급력이 있었다. 소리가 퍼져 나오는 곳을 향하여 한 걸음씩 발을 움직였다. 나를 인도하는 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전날 밤 오두막만 보고 걷느라 의식하고도 지나쳤던, 형태가 묵직한 건물, 연기가 나는 커다란 공장이었다. 소리의 진원지. 소리를 만들고 있는 곳이었다.


공장 정문(으로 추정되는)의 쇠 문고리를 잡아도 될까, 라는 고민을 한 직후,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 소리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는 것임을 느꼈다. 실행에 가속도가 붙었다. 나는 확고했다.


쇠 문고리를 밀어 안으로 들어가자 정원(으로 추정되는)이 나왔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과 화단이 구분되어 있었고, 화단 안 정체 모를 꽃들은 온통 수분을 잃고 비틀어져 쑥색과 회색빛을 띈 채 흙 속에 파묻혀 있었다. 봉선화, 산국화, 양귀비 등을 가꿔 심으면 형형색색의 유럽 어느 궁전 정원처럼 구색 있게 보일 법한 정원이었다. 그러나,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 나가는 공장이라는 경주마에게, 정원은 눈가리개로 가려져 잊힌 주변의 풍경에 불과한 듯 내버려져 있었다.

버려진 정원과 명료하게 울리는 그 소리를 통해 공장이 확고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무언가 쟁취하고자 하는 곳임을. 그리고 그 무언가가 궁궁이라는 것을. 그 순간부터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공장은 궁을 만들고 다시 한 바퀴를 돌아 또 하나의 궁을 만들어 합쳐버리는 것이 존재 이유인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