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하얀 접속

비닐, 눈 달린 운동화

by 박마이

붕어빵을 파는 노점이 있었다. 붉은 천막으로 만들어진 지붕과 반투명한 천막으로 덮여 있는 가판대, 붕어빵 노점이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붕어빵 장사를 한들 한 개라도 팔 수 있을까, 이곳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가, 붕어빵 장사엔 월세가 필요 없나.


두꺼운 하얀 목장갑에 비닐장갑을 덧씌운 손의 주인은 7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였다. 붕어빵 주인은 내가 들어와 쳐다보는 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선을 집중하여 (멍 때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멍을 때리면 그렇게 붕어빵을 올곧이 뒤집기 쉽지 않을 것이다) 붕어빵을 신속하게 뒤집고 있었다. 시장에서 파는 나란히 누워있는 죽은 갈치들처럼 붕어빵들은 가판대에 질서 있게 쌓여있었다. 붕어빵의 육각형 비닐 무늬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부엌에서 엄마가 손질을 위해 칼로 긁던 생선 비닐이 떠올랐다. 살아있는 것들을 이루던 작고 얇고 반짝거리는 비닐. 결국 개수대로 흩어져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떨어진 것들. 붕어빵의 표면에서 생선 비닐의 촉각이 일렁였다.


너는 그때 그 생선이 아니잖아. 시장에서 팔던 생선 비린내가 퍼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것은 진짜 물살이가 아닐까, 하고 짧은 시간 고심하였으나 이내 짙게 탄 갈색 꼬리를 보고 빵 냄새로 분명한 냄새를 맡으며 의심을 접어두었다. 붕어빵이다. 다만, 어떻게 이렇게 진실한 비닐을 지닌(나는 진짜 비닐이에요, 을 표방하는) 붕어빵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붕어빵은 붕어로 만든 빵도 아닌데.


“곰방 왔던 데로 가”


할머니가 붕어빵에 시선을 둔 채 한 개를 잡고 뒤집으며 말했다.


“네?”


“곰방 왔던 데로 가라고”


옆에 놓인 붕어빵을 뒤집었다. 아, 붕어빵 대열이 흐트러졌다. 할머니도 말하면서 붕어빵을 뒤집기는 베테랑일지라도 쉽지 않은가 보다. 무슨 말이에요, 곰방 왔던 데가 어디죠, 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원래 속으로는 말을 엄청나게 많이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나도 모르는 나의 내부 잠금장치가 작동되어, 말을 되도록 안 뱉게 된다. 빙산의 일각도 뱉지 못하고, 말의 빙산은 내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몽땅 잠겨버린다.


“네”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다가 나온 소리는 네, 다. 나도 듣고, 할머니도 듣고, 붕어도 들을 정도의 크기. 노점에서 나와 지나온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거기겠어?”


할머니가 확신하냐는 의미가 담긴 어투로 말했다. 거기겠어!, 라고 말한 것이다. 거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향을 다시 돌려 눈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가고 있던 방향,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은 방향으로. 할머니는 고개를 살짝 들어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했을까, 쳐다보지 않고 붕어빵 뒤집기에 집중하고 있었을까, 붕어빵을 그렇게 많이 쌓아두면 빠르게 식을 텐데, 식으면 맛이 없는데, 저 붕어빵에는 비린 맛이 조금이라도 나지 않을까, 1퍼센트라도 나지 않을까?


걷는 동안, 열 발가락 모두가 시려 아팠다. 차라리 잘라버리고 싶었다. 진짜 잘라버리는 것은 너무 끔찍할 것이다. 피도 철철 날 것이다. 하얀 눈이 빨갛게 피로 물들어 내가 지나왔던 길을 알려줄 것이다. 공포영화도 못 보는 나에게 왜 잔인한 생각이 가끔 떠오르는지 의문이다.


지금보다도 더 열 발가락이 모두 시려 아팠던 적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옷 꾸미기로 보여지는 나에게 여력을 다하고 있던 스스로가 밉기도 한 사춘기 시절, 학교 정문 앞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당시 유행하는 검은색 반투명 스타킹을 신고, 새파란 색에 하얀 모자 털이 달린 온몸을 뒤덮는 곰 같은 야상 점퍼를 입고(두르고) 집을 나섰다. 그때 신었던 신발이 문제-진짜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문제라고 할 수 있다-였는데, 열다섯의 나는 직접 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 특이하고 귀여운 운동화를 골랐다며 좋아했었다. 검은색 몸통에 빨간색 운동화 끈으로 꿴 얇은 천 운동화였는데,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발가락 위치에 두 눈이 박혀있었다. 하얀색 눈알에 커다란 검은색 동공,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네 개의 눈이 있었다. 눈이 온 다음 날, 그 운동화를 신는 것이 아니었다. 친구와 학교 정문 앞에서 시답지 않은 학교 애들 이야기를 하고, 입을 열심히 가리고 셀카를 찍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발이 슬슬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져 이제 집에 가자고 하였고, 친구와 헤어져 집까지 20분을 걸어갔다. 눈이 온 다음 날엔 걸을 때마다, 살짝 녹은 눈과 물 사이의 액체가 천 운동화의 틈새를 들어와 양말과 스타킹을 적시고 나의 발가락과 발가락뼈까지 스밀 수 있음을 미리 깨달았어야 했다. 심장과 가장 가까운 내장에 떨어지지 않는 얼음을 붙여놓는 것과 같은 고통이었다. 떼려고 해도 떼어지지 않는. 차가웠고, 아픔을 감각했고, 결국 무감각해졌다. 집에 도착하여 퉁퉁 불은 맨발을 방바닥에 비비며 피부 속으로 스며드는 따뜻한 온기를 느끼곤, 간지러운 발가락을 꼼지락하며 발을 자를 필요가 없어 다행이겠구나, 했다.


눈이 끝나는 길이 곧 나온다. 나올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