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새까만 구멍으로 오른손을 넣자 차가운 기운이 손부터 시작하여 팔목, 팔꿈치, 어깨, 가슴, 허리, 그리고 온몸을 감쌌다. 민무늬의 검정 평면만이 보였다. 눈을 뜨고 있는지, 감았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눈을 뜨나, 감으나 똑같았으니까. 까맣다. 그것이 나에게 느껴지는 전부였다. 몇 초의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발목까지 눈이 쌓인 하얀 장소에 존재했다. 나의 정신만 그곳에 보내진 것인지, 육체도 따라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방이 새하얗게 눈으로 덮인 어딘가에 보내졌다고 정신적으로 인지했지만, 육체적으로 다른 장소에서 이곳으로 몇 초만에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눈이 덮인 장소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지니고 걷고, 버스와 기차를 타고, 내려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이런 곳은 기차역에서도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을 것이다.) 이곳에 도착한 적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생각을 이행하고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다. 아니야. 나는 단지, 구멍에 손을 넣었을 뿐.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었다. 정신이 이곳에 왔다 한들, 나의 육체는 어떻게 이곳에 두 발을 디디게 된 것일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검은색 개미들이 하나, 둘 모여 까맣게 뇌를 채웠고, 모인 개미들을 가장자리부터 쓸어가며 뇌를 맑게 했다. 모인 생각을 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차갑게 얼기 시작한 새끼발가락 끝부분이 아파 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걸었다. 사방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이곳을 걸었다. 한 발씩 땅에 번갈아 디디며 나에게 미쳐오는 가볍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패딩 모자와 목덜미 틈으로, 패딩과 손목 아래 틈으로 받아들였다. 겨울바람이 머리카락 한 올을 날려 나의 볼을 간지럽혔다. 입술에 붙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걷어내며, 앞에 놓인 새하얀 정경을 똑바로 응시했다. 번갈아 딛는 내 발이 과연 토지 위에 있기는 한 것일까? 발목 옆에 쌓인 눈을 손으로 걷어내고, 발아래에 땅이 있는지 확인했다. 짧은 잔디가 돋은 흙이었다. 겨울을 마주한 어느 들판이었구나. 나의 호기심을 촉발할 만한 것들이 더 이상 없었다. 시야에 놓인 것이 새하얀 눈뿐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눈 아래에 놓인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뿐이었다. 알아냈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그곳에 놓인 모든 사물들을 관찰하고 경계하며 사물의 이면에 놓인 것까지 파악해야 직성이 풀리는 예민한 나에게, 여기는 더 이상 나에게 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불안과 경계심이 없었고, 호기심이 없으니 아쉬움도 없었다.
내가 이토록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파트에서 담배꽁초로 화재 사고가 일어나 일가족 세 명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면 내가 끄고 나가지 않은 고데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불이나 엄마와 헬기를 타고 대피하는 꿈을 꾸고는 찝찝한 느낌으로 잠에서 깨곤 했다. 집에서 샤워를 하다가도 달달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 샤워를 멈추고 소리가 나오는 벽 안을 가만히 노려보곤 했다. 뜨거운 물을 가동하면 나는 소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일상의 모든 것에서 불안을 찾던 내가 이 낯선 곳에서 일정한 진동으로 고막에 공기의 떨림을 전달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고요와 적막, 그로 인한 평안을 발견했다니. 그렇다. 나는 불안하지 않은 것뿐 아니라, 평안했다. 무사히 잘 있었다.
꼬수운 냄새가 내 코의 신경 세포를 자극했다. 버터를 두껍게 바른 찐득하고 느끼한 빵 냄새가 아니라 기름을 넣고 구운 빵에서 나는 꼬수운 냄새. 눌렀을 때 터질 것처럼 말랑한 질감을 가졌지만 꼬다리만큼은 진갈색의 바삭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그 이미지가 선명했다. 그것을 먹어야 했다. 내 입 안에 넣고 어금니로 우걱우걱 씹어 말랑한 것이 터져 안에 든 액체와 고체 사이의 그것이 흘러나와 혀의 미각 세포에 닿게 해야 했다. 나는 분명히 구수하고도 달콤한 맛을 느끼게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붕어빵이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