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하얀 접속

벽돌, 쓰레기, 검은 구멍

by 박마이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의 담장은 벽돌로 이루어져 있다. 가운데가 정사각형 모양으로 옴폭 파인 직사각형 모양의 벽돌들이 가로로, 세로로 시멘트 접착제로 부착되어 빈틈없이 놓여있어, 아파트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행하고 있음을 표방했다. 담장은 아파트의 2층 높이밖에 되지 않아, 보호하려는 목적을 얼마나 달성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아파트 단지임을 구획시키는 역할만은 분명히 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곧 사라질 것만 같은 겨울 해를 배경에 두고, 아파트 담장 벽돌을 쳐다보고 거의 집에 다다랐음을 실감하곤 했다. 벽돌 가운데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파인 부분 몇 개에는 조잡한 쓰레기들이 꽂혀 있었다. 반만 은박지에 쌓인 씹다가 뱉은 껌, 담배꽁초 서너 개가 들어가 있는 구겨진 종이컵, 따져 있는 파란색 캔 음료 등. 손에 들고 있던 쓰레기를 벽돌에 꽂아놓은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부도덕함을 혼잣말로 비난하며 새롭게 등장한 쓰레기와 어떠한 방법으로 사라졌는지 도무지 짐작되지 않는 어제까지만 해도 꽂혀있던 쓰레기들의 행방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며 혼자 재미 보는 놀이를 하곤 했다.

이른 저녁 오후, 그날도 학원을 끝내고 집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하얀 눈이 신발 밑창을 얄궂게 적실 정도로 소복하게 쌓여 걸을 때마다 귀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크게 뜨고 담장 벽돌의 가운데 부분을 응시했다. 단단한 눈 뭉치, 플라스틱 일회용 컵, 꼬깃꼬깃하게 접혀있는 과자 봉지. 눈이 왔다고 누군가 고새 눈 뭉치를 단단히 빚어 꽂아 놓았다.

벽돌 한 개 한 개를 일별하다 까만 구멍을 보았다. 벽돌의 파인 부분은 쓰레기를 꽂혀 있거나, 파였으나 그 끝은 시멘트로 막혀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구멍은 분명히 뚫려 있었다. 파인 부분이 아니라 그것은 분명히 구멍이었고 무엇이든 빨아들이고자 혹은 내뿜고자 하는 욕망을 표출하고 있었다. 새까만 먹물 같은 액체류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그리하여 짙은 향까지 풍기는, 어떤 소리도 내고 있지 않다는 소리를 내는, 드라이아이스를 연상시키는 스멀거리는 연기가 묻어 있는 구멍. 구멍을 목격하고 든 몽롱한 기분이 훗날 나에게 그 구멍의 스멀거리는 연기라는 환각을 만들어낸 것인지, 연기가 몽롱한 기분을 만들어낸 것인지는 헷갈린다.

구멍에 손을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안에 든 것을 확인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