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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박성민 Jan 28. 2024

수줍은 시어머니, 뻔뻔한 며느리

이 걱정 저 걱정


한반도에 태풍이 불어 온다고 하니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전화가 온다.


팔순이 넘은 은사님은 안직 오지도 않은 태풍 걱정에 제자들과 함께 하기로한 며칠 남지 않은 모임 약속을 미루셨다.


미국서 한국 오시기 며칠 전부터 아직 오지도 않은 태풍 걱정에 친정어머니게서는 항공권까지 구입한 상황에서 한국을 못오실 것 같다는 연락을 주셨다. 


표면적으로는 안전에 대한 걱정이시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존 욕구가 높으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댁 근처에 해수탕이 있어 명절이면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다 준비해두고 목욕을 갈 때도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목욕을 가는 시간과 시차를 두고 가셨고, 행여 목욕탕에서 만나더라도 더 수줍어 하시며 조용히 씻고 나가시곤 하셨다.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목욕탕에서 며느리를 만나는 것을 부끄러워하셨고, 뻔뻔한 며느리가 어머니 등이라도 밀어드리려고 하면 좀 더 일찍 세신 아주머니께 등을 밀고 나가셨었다.  조모님보다 연세가 많으셨던 시어머니께서는 목욕탕에서 며느리를 보고 걱정이 되시는지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오히려 이제 막 결혼한 새댁처럼 조용히 나가시곤 하셨다. 작고하시기 전 이동이 불편하시어 방 안에 이동용 변기를 놓아드렸을 때도 당신의 용변을 며느리가 볼까봐 걱정이 되시어 직접 치우시려고 하실때마다 이미 다 치워두었다고 하니 엄청 미안해 하셨었다. 


친척이 적은 집안에서 태어나 명절이 늘 쓸쓸했던 나는 일부러 대가족인 시댁에 시집을 가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시끌벅적해서 좋았다.  가족들끼리 모여 추억을 소환하여 "걔집에 때~00이 어떠했다"라고 하시면 예전에 개들을 집에서 키우셨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였다가 몇년을 지나서야 '기와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만 사람들이 ~어쩌구"하시면 "남한, 북한 인가" 궁금해 했다가 '나이 많은 사람(노인)'이라는 것을 설명을 듣고 이해하기도 하였었다. 당시에 간장을 지렁, 부추를 전구지, 서랍을 빼다지 등 낯선 단어들의 향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시댁의 문화에 스며들면서 은혼식을 지나 살고 있지만 지나온 세월과 건강을 전제로 미래 결혼생활의 키워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부관계>

30대 처음 부모되기, 왠만하면 참기

40대 양육관의 불일치, 꾹꾹 참기

50대 나의 주장과 폭발, 적당한 거리 두기와 상호 측은지심 

60대 인정과 존중(예정)

70대 이후 진정한 자유(예정)

80대 백일때와 같은 해맑음 간직하기(예정)~80대 부터의 삶은 덤


최근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은 50대에 접어들었을 때 남편의 견해에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자 그 순간 놀라서

며칠 후에 내게 사람이 달라졌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실은 내가 달라진게 아니라 그간 엄청 참은 것을 몰랐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뻔뻔한 며느리만이 아니라, 뻔뻔한 안사람이기도 했다. 걱정이 없는 세상이든, 걱정 없는 노년기를 맞이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수줍은 시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수줍은 남편을 잘 보살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 이유는 남편과의 혼인서약이 유효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수줍던 어머니와의 약속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이것도 결국 걱정도 팔자인 미리 계획하는 나의 생존 욕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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