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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박성민 Feb 13. 2024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공교육이 지금 무너진 것일까

학생의 희망 직업 조사 결과 여전히 중학생과 고등학생 부동의 1위는 교사이다.

인구 절벽에 교사라는 직업 전망이 밝지 않음에도 2023년에 실시한 1,200개의 초중고등학교 학생 대상 온라인 조사 결과를 발표한 기사가 보도되었다. 

2023년은 온 나라를 달군 슬픈 사건이 있었고, 이슈가 진행 중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교사는 선망의 대상이다.     


아동학대와 교권보호는 각각의 목적을 갖고 있지만 때로는 맞물려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는 관점에 따라 해결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각자의 입장이 있기에 서로 협력해야 할 부모와 교사간 대립은 문제의 해결을 더디게 하기도 한다. 행복해야 할 교육 현장의 어려움이 여러 측면으로 가중되고 있다는 기사가 추가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컨설팅 중 만난 부모님 중에서는 ‘선생’과 ‘선생님’이 있다며 교사마다 다르다고 말씀하신다.  

    

문득 나는 왜 교사가 되려고 했는지 회고해 보았다.

초등학생 시절 여러 진로 희망 중 막연히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도 가지고 있었지만, 선명한 꿈을 꾸게 된 계기가 정작 따로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반편성을 새로 하지 않고 3학년 때 학급이 그대로 진급한 적이 있다. 

1-6학년 동안 남녀 쌍둥이였던 나는 같은 학교에서 오빠와 3-4학년 동안만 같은 반을 다닐 수 있었다. 머리맡에 문학책을 놓아두셨던 어머니 덕분에 심심하면 책을 읽던 쌍둥이들의 상상력과 영감을 불어 넣는데 도움이 되었을까. 그림 그리기에 남다른 소질이 있던 오빠와 글쓰기에 소질이 있던 나는 당시 학급의 독서대회 참여에도 늘 열성적이었다. 

80년대에 공립 초등학교에 어린이교통공원이 설치된 기념으로 라디오 방송에 우리 학교의 우수사례와 친구들이 방송에 나오니 라디오 방송을 학급 친구들과 다같이 듣자고 담임선생님이 제안하셨다. 한 학급에 약 70명으로 동학년이 10학급이 넘던 시절이었다. 친구들과 아무생각 없이 듣다가 나는 내 귀를 의심하였다. 우리 반 회장이 자기가 그렸다고 설명하는 그림 독서 일기는 오빠가 그린 그림의 장면이었고, 우리 반 반장이 썼다고 읽은 글은 내가 쓴 독후감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막 뛰었다. “선생님 그건 제 글이고, 그 그림은 오빠거잖아요” 라고 외치고 싶었다. 11살 나이의 아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부정한 세상이었다. 비록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날부터 담임선생님을 교사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교사상이 깨진 것이다. 치맛바람이 아니라 자기 실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며 6년 내내 학교를 단 한번도 안찾아 오시는 우리 엄마의 신념 덕분에 그럭저럭 학교에서 씩씩하게 지내며 시간은 지나갔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길 수 없는 치맛바람 부모의 공정하지 못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애석하게도 초등학교에서 배웠다. 당연히 성인이 되어서 부모의 영향력이 아닌 학생만의 자율성과 주도성이 에너지의 원천임을 깨달았지만, 성장하면서 나는 교사가 되었을 때 초등학교 3-4학년때 담임교사처럼 치맛바람 일으키는 부모의 자녀에게 다른 아이의 실적을 가로채어 발표시키는 그런 죄를 지으며 남의 실적을 가로채도 된다고 용인하고 어린시기부터 떳떳하지 못하게 성장하도록 교육하는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중학교 시절 주간과 야간반 고등학교가 함께 있어 중2때 주간반과 야간반 차별로 갈등이 생겼을 때

담임선생님이 우리반 학생들을 버리고 도망가던 모습에 실망하였지만, 담임도 아닌 선생님이 우리반 학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셨던 멋진 모습도 기억이 난다. 추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 선생님은 사생대회를 갔을 때 공중화장실에 꽉 차 있던 대변을 피하는 학생들 사이로 내게 물통을 달라며 물청소를 하며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는 교사였다.     


그 멋진 선생님이 감사하게도 중3 시절 담임 선생님이 되셨고, 훌륭한 담임선생님이신 국어선생님 덕분에 단편소설을 거의 독파하고 독서감상문을 남기도록 하여 지금도 브런치에 글을 남길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신 가정선생님은 어려워진 가정 형편을 고려하여 격려를 해주시고자 국토대장정 참가를 추천해 주셨다. 고전문학 시간에 입시 준비로 문제집만 푸는 지루함에서 빠져나오고 싶을 때, 국내에서 최초로 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기념으로 특수교육을 조명하던 시기에 매체의 방송은 내게 특수교사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하였다. 지체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교에서 국어 작문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뇌병변장애학생(지금은 작가가 된)의 글을 읽어주시며 학생의 글에 감명 받아 흐르는 눈물을 학생이 볼까봐 창가로 가서 읽는 척 하시며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모습에 매료되어 국어 시간에 문제집을 푸는 것이 아니라 국어 본연의 작문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인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특수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대학원 석사 과정에 진학하여 전자저널이 귀하던 시절 교육개발원에 논문 자료를 구하러 갔다가 우연히 찾은 자료의 표지에 초등학교 3-4학년때의 담임교사가 표지모델로 나와 있어 이분이 한국교육의 대표 잡지에 나왔다는 것에 얼마나 절망했었는지, 그렇게 살아야 전문직과 관리자가 되는 것인지를 한탄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인간인지라 교사에게 더 예쁜 학생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학생을 편애해서는 안된다. 동료 학생의 성과를 가로채도록 학생들에게 교육해서도 안된다. 


큰아이는 중등교사를 희망하여 지원한 대학이 동일한 초등교사를 지원하는 학생들과 면접 준비를 함께 한 적이 있다. 부모님들도 참관할 수 있다고 하여 하루 따라가 보니, 큰아이가 중고등학교 시절의 경험을 살려 진로 희망을 발표하였는데 초등교사를 지원한 학생이 큰아이의 경험을 그대로 자기 경험처럼 발표를 하는 것이 아닌가. 공원의 배경과 설명이며 어쩜 넙죽 그리도 남의 경험을 자기 경험처럼 지어서 말하는지 뻔뻔함과 대범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후 개인 발표에서 이상하게 큰 아이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마쳤다. 평소 발표를 잘하기에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엄마 남의 경험을 자기 경험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가로채는 그런 애들이 초등교사가 되면 뭘해요. 그래서 말을 안한거에요. ”라며 두번째 면접준비를 끝으로 혼자 면접을 준비하였다.


공교육 상실의 시대에 대부분의 교사는 훌륭하겠지만, 모두 의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못다한 학교의 이야기에는 잘못하는 교사들도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만났던 최악의 교사 중에 예뻐하는 학생들은 잘못을 해도 넘어가고, 보통 정도로 생각하는 학생들은 손바닥을 때렸었는데 그 행동도 넘어가겠지만 당시 최악은 "예뻐서 재네는 때릴 수 없어"라고 노골적으로 편애의 감정을 표현했던 교사,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 여학생의 브래이지어 끈을 당기던 교사, 수능을 마치고 대학 입시 상담에서 "너는 갈 대학이 없어" 라며 상담 받는 친구들과 입시 상담 교사들이 있는 곳에서 다 들리게 말했던 교사 등 사례는 다양하다. 얼마 전 ‘최악의 교사 사례’ 질문에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생리가 많은 생리혈이 뭍은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하니까 담임교사인 여교사가 고3인데 공부해야지 옷갈아 입을 시간이 어디 있냐며 담요로 둘둘 말고 참고 공부하라는 선생님이 최악이었다”는 답변이었다.  

그 사례를 들려준 학생도 교사를 꿈 꾸고 있다.      


내가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뜻밖에도 교사 같지 않은 교사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모범적인 교사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범적인 교사에게 ‘교사답다’고 하며 존경을 표한다.


<참고사이트>

안다솜(2023. 11. 26). 중학생 10명 중 4명 "희망직업이 없어요". 아이뉴스.  

                         URL: https://v.daum.net/v/2023112616490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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