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났다. 이미 몇 차례 사적 모임에서 그녀도 나와 비슷한 성격과 과거를 가지고 있을 거라 지레짐작은 했었다. 내가 말하는 비슷한 과거란,, 착한 아이 증후군으로 인한 예스맨, 관계의 단절에 대한 두려움.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인한 만렙의 호구력 ….... 바로 3년 전의 나였다.
오늘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우리 둘만 딱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사적인 둘만의 만남은 처음인지라 나도 좀 어색하고 그녀도 어색해하며 방어벽을 세우며 이런저런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누군가가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그렇게 우리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녀와 내 속에는 커질 대로 커진 풍선이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빵 터지는 것처럼, 우리의 이야기들도 몸 밖으로 흘러나오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 관계의 단절을 가장 두려워했던 사람으로 관계가 단절될까 봐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먼저 숙이고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거절의 기역자도 꺼내지 못하고,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면 계속 뉘우치고 고치려고 하는 사람, 무엇이 잘못한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내가 잘못하여 일이 어그러진 것은 아닐까라는 죄책감 때문에 잠 못 이루고 괴로워하던 사람.. 자신의 부모에 대한 미움과 속상함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사람..
우리는 서로의 닮은 점을 보면서 맞다 맞다 하면서 공감하였다. 쌓여있던 방어벽은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졌다. 다행인 것은 그녀 역시 약 3년 전에 자신의 마음 약함과 중심 없음,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인 의존을 하려고 하였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마음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유명한 스님의 온라인 학교에 입학하여 여러 가지 강의도 듣고 명상도 하면서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시해 오던 자신의 감정도 인정해 주면서 그렇게 자기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오니, 어느새 자기 주위의 사람들은 물갈이가 되어 새로운 사람들로 바뀌었고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나 역시 한 3년 전에 소시오패스/나르시시스트 친구에게 세상의 끝맛을 보고 모든 게 뒤집어져서 탈탈 털리고 나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마음공부를 하는 기관이나 학교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심리학책들을 미친 듯이 읽었고 관련 유튜브 강의들을 섭렵하였다. 지식이 쌓이고 사건들과 경험에 녹아낸 그 지식들은 지혜가 되었다. 그렇게 나도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하여 단단히 기르고 있다. 나의 부모는 그들의 성격적 결함과, 교육의 부재, 그리고 먹고살기에 급급한 시대에 태어나 자식이라 할지라도 공감하기 어려운 세상을 살아와서 나를 단단하게 자라게 하지 못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를 파괴하는 방법으로 나를 양육하였다. 시간을 돌릴 수도 그들을 바꿀 수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나를 단단하고 중심이 있는 사람으로 기르고 있다.
사실 나는 아직 그 소시오패스도 용서하지 못했고 (소시오패스에게 용서가 필요할까? ) 나의 부모도 용서하지 못했다. 며칠 전 읽었던 원솔님은 그의 글에서 부모님을 용서함으로 해방이 되었다고 하던데.. 내가 진정으로 나의 부모를 용서할 수 있을까? 지금 나의 상태는 더 이상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 것, 화내지 않는 것, 그리고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대와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이었다는 이성적 결론에 도달 았을 뿐,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내가 만난 그녀는 화도 많이 나고 너무 괴로웠지만 자신의 마음에 겹겹이 쌓인 상처와 괴로움 속으로 들어가 부모를 용서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부러 자신이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건강한이, 좋은 시력, 튼튼한 체력과 좋은 피부를 물려받았음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노력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자꾸 용서라는 단어가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이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떻게 용서를 하는 걸까? 용서한다는 것은 사랑으로 다시 껴안는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나는 아직 그 답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