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통이 생긴 자리, 공감이 자란 자리

by 북마니

머리 뒤통수에 직경 4*3 정도의 땜통이 생겼다. 평생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시나리오다. 노화 때문에 생기는 탈모와 가늘어짐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이 나이에 땜통이라니. 심형래 씨가 연기한 “띠리 리리 영구 없다”의 영구가 되어버렸다. 다행인 점은 여자이기에 머리도 길고 묶고 다닐 수 있어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땜통이 생긴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다. 2년 전에 코로나에 걸린 이후 두피의 어느 부분들이 아프고 말랑말랑한 게 염증이 생긴 거 같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느려터진 이 나라의 시스템과 드러나는 큰 문제도 없어 보여서 그냥저냥 살았다. 그러나 아픈 곳을 건드려보니 그 안에서 투명한 액체가 나오면서 말랑말랑한 것도 평평해지고 아픈 것도 사라졌다. 그렇게 자꾸 건드리는 버릇이 생겼다.


별문제 없이 지냈는데 뒤통수에 문제가 생겼다. 건드린 부분에서 머리카락이 왕창 빠져버리고 땜통을 남겨버렸다. 이건 내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변수 중에 변수였다.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럽다는 말로는 마음이 다 표현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머리카락이 빠질 수 있나 라는 의문에서 가만히 내버려두어야 하는데 이 지랄 맞은 성격 때문에 이지경이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자 나를 원망했다.


바보야, 그러니까 왜 그랬어.ㅜㅜ 자꾸 내가 미워졌다.


그 후에 찾아온 것은 공포였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땜통 이미지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영원히 이렇게 휑한 머리통을 가리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땜통 부분에 모낭이식 수술로 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후기들을 읽어보았다. ‘아.. 그래 한국에 가면 모낭이식 수술을 하자’…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지만, 자꾸만 휑한 내 뒤통수의 민머리로 손이 가는 것을 멈추기가 어려웠다. 더 나아가 머리카락이 있어야 할 자리가 시베리아 벌판처럼 휑한 그 느낌은 상실감 그 이상이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는 그 느낌,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머리카락이 없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이건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슬펐다. 머리카락이 사라지고 남은 땜빵의 자리를 손가락으로 느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갑자기 깔깔거리고 웃으며 보던 네이버 웹툰의 모발구독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주인공이 대머리로써 살아야 하는 괴로움과 슬픔, 그리고 300만 원에 해당하는 모발 구독료를 내면서까지도 계속 유 머리카락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머리카락이 없어져도 이렇게 허무하고 슬퍼지는데, 사고로 혹은 병으로 자신의 육체 중 일부분을 잃어야 하는 사람의 상실감을 내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나의 엄마는 10년 전쯤에 유방암에 걸렸다. 다행히 1기에서 2기 사이여서 완전히 절제를 하지는 않았지만 가슴 안에 자리 잡고 자라던 종양과 주변 조직을 잘라내어 유방의 사이즈가 다른 쪽에 비해 표가 많이 날만큼 작아졌다. 그때 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그래도 암이 발견돼서 수술하게 돼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자”라고 했다. 엄마도 그러겠다고 했다. 이제 본인은 다 늙어서 이까짓 거 유방이 있든 말든 상관없다고 했다. 그때 난 엄마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별 걱정도 염려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엄마는 별 상관이 없었을까? 정말 괜찮았을까?


몸을 씻을 때마다 수술로 인해 작아지고 쭈굴 해진 한쪽 유방을 볼 수밖에 없없을 텐데.. 엄마 역시 자신의 몸의 일부가 사라지 것에 대해서 상실감을 크게 느꼈을 텐데… 나는 그때 엄마의 상실감을 전혀 알 수도 느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보지 않아도 겪지 않아도 그들의 아픔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았겠지만, 나 같은 보통의 사람은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봐야만 그 사람이 겪고있는는 아픔과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중년의 나이에 얻은 뒷머리의 작은 땜통은 나를 한동안 절망에 빠뜨렸다 그러나, 동시에 엄마의 쭈그러진 작은 유방을 떠올리게 했다. 이제야 알겠다. 몸의 일부를 잃으면 단순히 모양을 잃는 일이 아니라 상실감으로 가득 찬 마음을 얻게 되는 것임을. 머리카락을 잃고 상실감의 마음을 배웠다. 그 무게 속에서 나는 더 단단해지고, 더 깊은 공감의 사람이 되어간다. 땜통이 생긴 자리, 그 빈자리가 내 마음을 내 삶을 더 넓혀주었다.



그리고



다행히.. 땜통의 자리에 조금씩 보스락거리는 솜털들이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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