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쓰'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 감정쓰레기통’을 줄여서 ‘감쓰’라는 표현은 이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표현일 것이다. 나는 약 10년 전 처음으로 82쿡이라는 사이트에서 감정쓰레기통이라는 말을 접했다. 감정이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이 쓰레기통이 된다는 발상이 참 신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처음으로 이 말을 만들어냈는지 그의 참신하고 철학적인 사유에 무릎을 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최근에 윤서진 작가의 “너를 미워할 시간에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라는 책을 매일 몇 페이지씩 읽고 있다. 읽다가 마음을 울리는 구절을 정리해 다이어리에 적어놓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오늘 읽은 부분은 타인의 감정을 대신 책임지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 타인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은 이처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자신의 책임으로 느끼고, 이를 해결하는 데 몰두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책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감정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며, 그 감정을 느끼고 처리하는 모든 것 역시 자기 자신의 책임인 것이지요.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더 이상 사과하거나, 모두를 만족시키려 전전긍긍하지 마세요. 차라리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처리할 시간을 주거나, 그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기꺼이 지원해 주세요.”
몇 년 전에야 비로소, 나는 피플플리저와 착한 아이 증후군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는 수준을 넘어 그대로 감정이 이입되어버렸다. 그렇기에 그를 돕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꼈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스스로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주는 쓰레기통 역할을 자처하면서 살아왔던 셈이다. 때로는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면서 그를 도울 방법을 쥐어짜 내야 했다. ( 이런 과정들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이 훈련되었고 그것은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듯 감정은 개인의 몫이며, 그것을 처리하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여전히 쉽지 않을때도 많다. 아주 오래된 습관 탓인지, 아직도 나의 뇌는 다른 사람의 기분과 감정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괴로워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누군가가 힘들어하는데 한 발 물러서 주는 것이 아직도 나에게는 정 없고 차가운 사람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왜 나의 문제와 다른 사람의 문제를 구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 내 것으로 떠맡아버리려고 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릴 때 엄마는 종종 "너는 왜 엄마마음도 모르니 "라고 말했다. 그 말들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와 낙인이 되었다. ‘아. 나는 엄마 마음도 모르는 나쁜 아이야’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 후로 나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 애를 썼다. 나의 노력과 엄마 아빠의 끊임없는 싸움으로 인한 냉랭한 집안 분위기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알아차리는 슈퍼파워를 얻게 되었다.
슈퍼파워는 분명 장점도 있다. 하지만 경계를 두지 못하면 오히려 나를 해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흡수하다가 함몰되어 버리면 정작 나는 사라지고 만다. 슈퍼파워를 다스리기 위해 많은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였다. 공부를 통해 깨달은 사실이 있다. 그들을 위해 내가 해줄수 있는 것은 '경청'이며 내가 할수 있는 선안에서의 도움이지 그들의 감정을 '처리'하는 사람이 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전두엽 이성의 뇌가 “ 이건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야”라고 개입한다. 그 덕에 예전처럼 괴로움과 죄책감에 완전히 빠지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나의 생동안에 이 슈퍼파워를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 쓰고 싶다. 무엇보다 내가 세상에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을 위해 따뜻하고 든든한 엄마로 존재하는데 쓰고 싶다. 언제나 엄마의 품을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안식처로 느낄 수 있도록 , 내 슈퍼파워를 올바르게 사용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