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단상과 그 기록
8년만에 한국을 다녀왔다. 한국을 가기 전 날까지도 정말 내가 한국을 가는게 실제 상황인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출발하는 때가 되어서야, “ 아.. 내가 진짜 한국 땅을 8년만에 밟는 날이 왔구나” 라는 자각을 할수 있었다. 나와 딸은 8년 만에, 남편은 11년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 흘렀다. 3주라는 시간은 처음에는 더디게 가는듯 하다가 마지막 며칠은 순삭 되듯이 그냥 없어져버린 것 같았다. 오늘은 캐나다로 돌아온지 5일째가 되는 금요일 아침이다. 그동안 밤 낮이 바뀌어버린 시간의 차이에 몸은 헷갈려하고 있다. 오후 5시가 되면 밀려오는 졸음과 피로에 잠깐만 눈을 붙인다는게 밤 12시까지 꿀 잠을 잤다. 그리고 깨어나면 새벽시간은 팔팔한 정신과 몸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짐과 물건들을 치우고 정리했다. 다행이 어제밤에는 11시쯤에 잠이 들어 아침 7시에 눈이 뜨였다. 그래도 일주일이 안되는 시간에 몸이 시차에 빨리 적응해주어서 감사하다.
몸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지만, 정신이 적응을 못하고 있다. 5일 밤 내내 한국에서 시간들을 꿈으로 꾸고 잠이 살짝 깨어 비몽사몽할때 여기가 한국인지 캐나다인지 헷갈려하다가 ‘아.. 나 캐나다로 돌아왔지’ 라며 슬픈 깨달음속에서 다시 잠을 청한다.
8년만에 허락된 짧은 시간동안 많은 것을 하고 느끼고 왔다. 지지리도 느려터진 캐나다의 삶과 비교했을때 한국은 모든것이 편리하고 빠른 편안한 삶의 나라처럼 느껴졌다. 물론 내가 한국에서 여느 직장인처럼 직장생활과 사회생활, 인간관계등 여러 복잡다난한 상황등을 겪는다면 한국이 마냥 천국처럼 느껴지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사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 한국땅이든 캐나다 땅이든 문제는 어디에나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든, 캐나다는 어느 나라든 그 나라를 여행하는 사람은 그 나라와 사랑에 빠지고 그 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생각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한국에서 8년 만에 만난 가족들은 타지에서 뚝 떨어져 외딴 섬처럼 살고 있는 나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중년의 남자가 되어버린 남동생과 사랑으로 두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데 전념인 시누이, 연세는 70이 넘으셨지만 여전히 에너지와 사랑이 넘치시는 시어머니, 잔소리는 많지만 그래도 이것 저것 싸가라고 숨겨놓았던 옷가지과 약들과 물건들을 건네주시는 시아버지.. 그들 덕분에 외로움의 외 자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따뜻하고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을 보낼수있었다. 외국에 살아서 같은 글자 돌림인 외로움과 친구 삼아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당연한 숙명으로 생각했는데, 한국에서는 외로움이 없었다. 나름 인성 좋고 배려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따뜻하고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큰 가족의 사랑은 현재 이웃의 따뜻함과 사랑을 가려버렸다 .뻔하디 뻔한 교훈 같은 말로,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말로 나를 위로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의 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의 사랑을 더 많이 절절히 느끼고 싶다. 중년이 넘은 나이에 한국에서 새로운 직장을 잡는것에 대한 두려움, 캐나다에서 태어나 이곳의 자유로운 학생시절을 낙낙히 즐기고 있는 딸을 가장 큰 이유로 캐나다의 삶을 지속해야만 하는 결정을 내리게 한다. 그러나 할수만 있다면, 나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에서 사는 꿈을 꿔본다 .그것도 안된다면 한국으로 왔다갔다하면서 경제활동을 할수있는 그런 일이 주어지길 소망한다.
그리고, 엄마.. 나의 사랑하는 그리고 미워하는 양가감정의 엄마..
사랑만하고 싶은데 미워할수밖에 없는 엄마..
시간이 좀더 지나서 내가 엄마를 완전히 품어버릴수있는 그런 큰 사람이 될수있기를
다시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엄마를 완전히 사랑하게 되기를,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잊어버리게 되길..
내가 더 성숙하고 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