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인 ‘민호’는 갱스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영화 제작사로부터 수차례 거절 당해도 각본을 재집 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며
거절을 당한 뒤 분노하는 '민호'의 얼굴을 클로즈업될 정도로
민호에게 깡패란 단순 영화의 소재 그 이상으로 보인다.
짐작 건데 ‘민호’는 ‘병두’를 포함한 깡패들을 동경하는 것처럼 보인다.
‘병두’ 그리고 ‘민호’ 이렇게 단 둘이 술을 마실 때, ‘민호’는 ‘병두’에게 연속으로 질문한다.
“너도 사시미질 당해봤어?”
“너도 사시미질 해봤어?”
반복된 질문을 하는 동안 스크린 속 ‘병두’의 모습은 아웃포커싱 되고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는 ‘민호’의 얼굴만이 줌인된다.
그렇다면 민호가 깡패들을 동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크게 두 가지 이유이다.
첫 번째는 깡패들의 삶 그 자체가 그에게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이 영화를 보는 관객처럼. 난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관객 또한 많겠지만, 이 작품 속의 테크니컬 한 갱스터 액션 시퀀스들 그리고 ‘황 회장’, ‘병두’ 그리고 ‘종수’ 이 형 동생 사이에서 나뉘는 찐한 남자들의 대화에 가슴 한 번 안 뜨거워질 남자 관객이 과연 존재할까.
두 번째는 깡패들은 해결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인 각본도 제작사에게 몇 차례 거절당하며, 심지어 본인이 한 영화의 총책임자인 감독임에도 무술감독에게 혼이 나는 ‘민호’는 ‘병두’를 포함한 어떻게든 주어진 일을 해결하는 깡패들을 보면서 그들처럼 되기를 열망한다. 그러니까, ‘민호’는 직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이유로 깡패들을 동경하고, 그렇기에 이러한 동경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는 깡패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비열한 거리>라는 타이틀을 달고도 단순히 조직 속 남자들의 진한 우정을 이야기하는 누아르일까. 아니면 마치 ‘기타노 다케시’ 영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잔혹해 보이는 깡패들의 뒷모습에서 볼 수 있는 인간적인 측면과 페이소스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 작품이 ‘민호’의 영화라면 그렇겠지만, 아쉽게도 <비열한 거리>는 ‘민호’가 만들고 싶어 했던 영화와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다.
<비열한 거리>가 ‘민호’의 영화와 정반대에 위치한 이유는 역으로 앞서 이야기한 ‘민호’가 깡패들을 동경하는 이유들과 일맥상통한다.
일단 정말 정교하게 잘 짜인 액션 그리고 남자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일명 ‘의리의 대화’를 지나, 결국 이 작품을 마지막까지 보게 되면 ‘비열한’이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작품 속 깡패들은 비열하고 추악하며 그야말로 못된 존재들이다.
해결의 측면을 이야기해 보자. ‘병두’가 ‘현주’에게, “나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 안 해”라고 말하듯이, 이 작품 속 깡패들은 익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직 폭력배로 자신들을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재개발 장면 등 몇 시퀀스들을 보면 이들은 본인들을 유망한 사업가로 생각한다. 하지만 오락실 사건, 검사 납치 그리고 개인적인 승진부터 재개발 문제까지, 이들은 그 어떠한 사건과 일도 폭력 없이는 해결하지 못한다.
심지어 개인적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주’가 직장 상사에게 가방을 빼앗겨 원하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녀를 오랜 전부터 사랑해 왔던 ‘병두’는 이 직장상사로부터 ‘현주’의 가방을 다시 빼앗은 뒤 아무 일 없이 현주와 함께 본인의 차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이 직장상사는 ‘병두’를 계속해서 못 가게 하며, 정확히 직장 상사 그리고 ‘병두’의 얼굴을 세 차례 교차 편집하는 장면을 통하여, 이 작품은 ‘병두’가 마음속 폭력의 열망을 3차례 참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이 직장상사의 지속된 도발에 결국 ‘병두’는 손을 쓰게 되고, 이는 단순 주먹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를 기절 직전까지 구타하게 된다. 그러니까 ‘병두’가 폭력을 참으려고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병두’를 포함한 <비열한 거리> 속 깡패들을 사랑마저 폭력 없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앞서 말한 ‘민호’가 깡패들을 동경하는 이유는 역으로 이들의 삶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보여주는 데칼코마니이며, 그렇기에 이 작품은 전형적인 누아르가 아닌 누아르에 블랙코미디를 섞은 작품이다.
하지만 <비열한 거리>가 실제로 한국 갱스터 장르의 걸작인 이유는,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에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이 영화를 비열한 당사자들의 눈앞까지 도발적으로 들이밀기 때문이다.
‘민호’는 결국 ‘병두’의 실제 사건들을 기반으로 결국 영화를 만든다.
이러한 사건이 삽입된 것에 충격을 받은 ‘황 회장’은 ‘병두’에게 영화를 직접 보라고 말하고 그는 ‘종수’와 같이 극장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본다.
이들은 일단 이 영화가 이전 ‘강 검사’ 납치 사건을 실제로 영화에 담은 것에 분노한다.
그리고 다시 영화가 진행된다. 이번에는 ‘병두’만을 묘사한다.
그리고 생매장까지 이르게 되는 장면이 끝난 후 ‘병두’의 얼굴은 클로즈 업 된다.
첫 번째 ‘병두’가 ‘종수’가 다른 관객들과 같이 촬영된 풀샷에서 느낀 감정은 ‘민호’를 향한 분노였을 것이다.
그러나, 추후 싱글 샷과 클로즈업 장면에서의 그의 얼굴을 보게 되면,
이는 비밀 누설이 야기하는 분노가 아닌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추악함과 비열함을 깨달음에서 오는 분노이자 죄책감이다.
즉, 단순 일반 관객 중 한 명이던 ‘병두’의 얼굴이 싱글샷으로 잡히게 되고 이후 클로즈업까지 되는 이 시퀀스는 사실상 스크린, 아니 이 영화를 ‘병두’라는 깡패의 눈앞에 들이미는 것이며
이는 이 깡패들이 여타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영화를 다 본 후, ‘병두’는 ‘민호’에게 분노하게 되고 그를 찾아가 어떻게 친구의 비밀을 남자가 돼서 그렇게 쉽게 풀 수 있는지 물어본다.
이에 ‘민호’는 상관없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짐작 건데 이는 사실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그가 ‘병두’와의 비밀을 영화화한 것에 관한 죄책감은 있었을 것이며 그렇기에
그를 시사회에 초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깡패를 동경하던 ‘민호’에게 이 사건을 영화화한 것은 깡패들의 추악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 오히려 깡패들의 무자비한 행동을 동경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 영화 기자가 ‘민호’에게 영화의 이야기들을 실제 사건으로 부터 참고하였냐는 물어보게 되고, 그는 실제 사건이 아닌 <스카페이스>와 같은 갱스터 작품들과 같은 허구의 이야기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그는 ‘병두’가 저지른 범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태를 영화를 통하여 고발할 생각도 전혀 없이 보인다. 그는 깡패들을 동경하기 때문에.
즉, 이러한 실제 사건이 영화에 삽입된 것에 대하여 흥분하는 이들은 ‘황 회장’ 그리고 ‘병두’와 그의 조직 동생들, 오직 깡패들이며, 이는 앞서 말했듯이 단순 비밀 누설로 인한 분노가 아닌 그들의 추악함을 확인하게 된 후의 뜨끔함이 불러오는 분노와 죄책감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일 것이다.
<비열한 거리>는 그리고 이들의 뒷 목을 꽉 잡은 후 이 영화를 보라고 강요한다. 당신들이 얼마나 비열한 존재인지 확인시키기 위해.
또한, 이 영화는 자신의 조직 속 형님을 살인하였던 ‘병두’ 역시 자신의 동생에게 살인당한다. 당신들이 했던 만큼 당신들도 당할 것이라고 말하기 위해.
깡패를 동경하였던 ‘민호’ 또한 죽음 직전까지의 폭행을 당한 후 목까지 잠기는 매장을 당하게 된다. 이들의 세상을 동경하고 꿈꾸는 이들에게 이 세계는 지옥임을 보여주기 위해.
마지막 ‘민호’의 영화에 자신의 딸을 낙하산으로 꽂은 ‘황 회장’은 자신의 추억을 한 번 영화화해보라고 ‘민호’에게 권한 후 혼자서 폼 잔뜩 잡은 채로 노래를 부른다. 영화라는 예술을 좇으로 아는 그들을 비꼬기 위해.
<비열한 거리>는 일본의 야쿠자 영화 그리고 홍콩의 누아르 작품들로부터 영리하게 모티브를 차용하여 오락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동시에 이 오락을 만드는 장본인들에게 이 영화를 들이민다. 이 얼마나 탄탄하고 영리하며 도발적인 한국 느와르 그리고 블랙코미디 수작이란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