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오래 보는 사이

현재에 존재하는 사람

by 라미

오늘 인사이동 공지가 떴다. 아직 하루가 더 남았지만 이제 정말 안녕.


첫 인사이동을 앞두고 거의 두 달간은 싱숭생숭했다. 떠날까 머물까 고민하다가 자의 반 타의 반 떠나게 되어서 더 그랬다. 머물겠다고 했을 때는 온 우주가 나를 밀어내는 것 같더니, 떠난다고 하니까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술술 풀렸다. 세상 일에는 순리라는 게 있는 걸까? 결국 떠날 수밖에 없던 타이밍이란 걸 이젠 받아들였지만, 그래서 씁쓸하다.


머물고 싶었던 이유 하나는 내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고, 둘은 사회생활 시작하고 만난 첫 동료들이 말도 안 되게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슬프지 않았냐는 내 질문에, 존경하는 동료 E는 그런 종류의 슬픔은 오래가지 않더라고 했다. 어제 만났던 유쾌한 K도 그랬다. K는 예전에 순환근무를 했었는데, 헤어질 땐 아쉬워서 각자 근무지 지나갈 때쯤엔 전화 한 통 하고 만나서 차 한 잔이라도 하고 가자 하지만, 그게 그렇게 잘 안 된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간다. 지금 이렇게 아쉽고 심란하다지만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으니까. 회의할 때 대전 매번 지나다녀도 대전 사는 친구들 연락해서 만난 적은 손에 꼽으니까. 반대로 그 친구들도 나에게 서울 오면 연락한단 말을 인사말처럼 하지만, 뭐 그런 거지.


그래도 왠지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잊을 걸 알아도 헤어지는 그 순간만큼은 마음껏 슬퍼해도 되는 거잖아.


저녁엔 고등학교 친구의 청첩장 모임에 갔다. 몇 년만에 보는 친구도 있어서 어색할까봐 살짝 걱정을 했는데 오랜만에 봐도 사랑스러운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추억 얘기하다가, 정치 얘기 했다가, 각자의 연애사 늘어놓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청첩장을 나눠준 친구가 말했다. 가끔씩 오래 보자고. 그 말이 좋았다. 지금은 자주 보지만 오래는 안 볼 사람보다는, 가끔씩 오래 보고 싶은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내 안에 하나씩 쌓일 때마다 난 그걸 예쁜 액자에 담긴 사진으로 비유하곤 했었다. 그런 액자가 하나씩 늘어나는 건 기분좋은 일이지만, 액자에 담기조차 서글퍼질 정도로 좋은 기억은 어떡하지. 요새 자주 듣는 '마음을 드려요'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추억만 남지 않길, 너와.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추억이 아닌, 계속 나의 현재에 존재하는 사람이길 바라 본다. 지금처럼. 서로의 좋은 소식을 들으면 축하를 건네고, 가끔 안부를 묻고, 도움이 필요하거나 도와줄 수 있을 때 전화하는. 그런 사이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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