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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Jan 14. 2023

MZ세대 공무원이 생각하는 직장 내 평판의 허상

직장 내 평판, 좋을수록 좋기만 할까?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선배들이나 상사에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있습니다.


"초반 1년 평판이 공직생활 평생을 따라간다."

바짝 긴장한 새내기 공무원에게는, 첫걸음을 시작할 때 잘못하면 이후의 공직생활이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는 무서운 말로 들렸죠.


5년차에 접어든 지금에 와서 보니, 저는 위와 같은 말을 하는 선배나 상사들은 별로 좋은 분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말은 90퍼센트 정도 틀린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초년차에 열심히 하는 직원이 계속 열심히 할 확률이 높겠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이 없고, 친소관계에 따라서 한 사람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며, 최근의 모습만을 기억합니다. 초년차의 평판이 꼭 주홍글씨처럼 긴 시간을 따라가는 건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고 공직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들리는 평판과 실제 그 사람을 봤을 때 모습이 다른 경우도 많아서, 평판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제가 볼 때 상사가 직원에게 '평판'을 운운하는 것은 가스라이팅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할 때 만난 상사는 회사에서도 유명한 갑질 상사였습니다.

당시에만 해도 업무적으로는 뛰어나다고 알려진 분이라 회사 내에서 영향력이 있었는데요, 신입 공무원이던 저에게 걸핏하면 '초반 평판이 평생을 좌우한다, 네 평판을 망치기 싫으면 똑바로 해라'라는 식의 말을 했었습니다. 심지어 승진을 2~3년 앞둔 다른 동료가 부서이동을 신청했을 때, '부서이동을 하면 네 평판을 망쳐놓아서 승진을 누락시킬 수 있다.'며 협박 비슷한 말까지 했었죠.

저는 첫 상사, 그것도 조직 내 영향력이 어마어마해 보이던 사람에게 찍히면 남은 공직생활이 힘들어질 것 같아서 폭언과 개인 심부름 지시 같은 것들도 아무 말 못 하고 견뎠습니다.


나중엔 어떻게 됐을까요? 알고 보니 그 상사 분은 몇 번의 갑질신고를 당하고 승진이 누락되어 한직으로 좌천되었고, 저는 다음 부서에서 합리적이고 유능한 과장님을 만나서 나름대로 좋은 평판을 쌓고 있습니다.


합리적이고 좋은 상사는 평판을 들먹이며 협박하지 않습니다. 잘 가르쳐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죠. 그리고 저도 이제 몇 년씩 후배들을 보다 보니, 이제 갓 공직생활을 시작하는 신입 공무원들은 배우려는 태도만 보여도 충분하단 생각이 듭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요.




그리고 가끔 평판에 지나치게 민감한 몇몇 선배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공무원이 평판이 좋은 게 꼭 좋은 일일까 하는 생각이죠. 유능하다고 소문난 몇몇 선배들은 계속해서 격무부서에만 배치를 받습니다. 초년차 때부터 매일 12시가 넘어서 퇴근하고 주말근무까지 하면서 동기들보다 6개월~1년 먼저 승진하더라구요.

반면 보통 정도의 평판을 가진 선배들을 보면, 무난한 부서에서 무난하게 일하고 무난하게 승진합니다.


일반적으로 승진을 하고 나면 승진 직전보다는 편한 보직으로 이동하게 되죠. 하지만 유능하다고 소문난 선배들은 승진을 하고 나서도 여기저기 바쁘고 중요한 자리에 불려 다니더라구요. 그렇다고 그 분들이 얻는 유의미한 보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매년 성과등급을 매기기는 하지만, 부서 점수와 여러가지 변수들이 있기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하는 순서대로 등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더라구요. 유학도 오히려 어느 정도 여유 있는 부서에서 근무하는 선배들이 더 잘 나가는 것 같습니다.


하루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저는 제 주변 사람들에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야 제 삶도 더 행복할 테니까요.


하지만 조직을 가만히 살펴보면 평판이 눈에 띄게 좋아도 손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과와 보상이 비례하지 않는, 공공부문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것 같습니다.


공공부문에서 직원에게 성과에 대한 보상을 줄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평판 가스라이팅'을 하며 무리하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열심히 하되, 너무 열심히 하지는 말라고요. 딱 자기가 행복할 정도로 열심히 하면 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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