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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Mar 26. 2023

MZ세대 공무원이 스트레스를 마주할 때

2월 마지막 주에 같은 파트의 동료가 갑작스럽게 다른 부처로 가게 되면서 3월에는 업무량이 두 배가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업무를 나눠 하고 있었고, 당장 사람이 채워질 수는 없으니 제가 동료가 하던 대부분의 업무를 맡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앞뒤 살필 겨를도 없이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그저께였던 금요일, 과장님께 보고서를 하나 들고 갔는데 기대 이하라는 코멘트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입이 바짝 마르고 시야가 어두워지고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금 어지러우니 잠깐 자리로 가야겠다고 말했고, 과장님도 제 상태를 보고 놀라서 쉬라고 하셨어요.


회사에서 이런 적이 처음이라 저도 당황스럽더라구요. 자리에 앉아서 좀 쉬니까 어지러운 느낌은 없어졌는데, 뭔가 속이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가서 우니까 좀 낫더라구요. 그래도 완전히 감정이 해소되지 않아서, 그 순간 생각났던 동기 S에게 찾아갔습니다. 동기가 제 얼굴을 보더니 단 음료를 챙겨 왔더라구요.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물이 나왔는데, 동기가 진심으로 위로를 해 주어서 이야기하다 보니 마음이 진정이 되더라구요.


과장님이 크게 부적절한 말을 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낙타 등을 부러뜨리는 건 마지막에 얹은 지푸라기 하나'라는 속담이 있죠. 그 말처럼 아마도 3월 초부터 스트레스가 계속 쌓였다가 한 번에 터져 나왔던 것 같습니다.


작년부터 큰 풍파 없이 공직 생활을 해 왔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안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신체 증상으로 이상 반응이 오니까 무섭더라구요. 정신건강이든 신체의 건강이든 함부로 자신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말 동안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유튜브 코미디 채널을 보고 집 근처의 새로 생긴 카페를 찾아가서 케이크를 사 먹었습니다. 요새 약속이나 외부 일정이 자주 생겨서 주말에도 외출을 했었는데, 저는 내향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주말에 적어도 하루는 집에서 혼자 보내야 쉬는 것 같더라구요. 주말에 가족들만 보면서 혼자 쉬니까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내일 회사에 가야 되는데 부담스럽기도 하네요.


작년부터 회사 생활에서 풍파 없이 잘 다니고 있었는데, 나름의 위기가 찾아온 것 같아요. 조금씩 극복하고 나서 '스트레스 극복기' 같은 글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꼭 필요한 순간에 제 이야기를 들어 준 동기 S에게 감사합니다. 예전에 읽은 정혜신 작가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 심리적 CPR이라는 단어가 나온 적 있거든요. S는 저에게 심리적인 CPR를 해 준 친구라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숨이 안 쉬어질 때 찾아갈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했고, 저를 다시 일으켜 준 S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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