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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근무와 글쓰기에 관한 단상

by 라미

오랜만의 글입니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는 공무원 생활에 대한 글을 많이 올렸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감사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공무원으로서의 생활이 5~6년차에 접어들다 보니 제가 좋아했던 많은 부분이 익숙해지고 지루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공무원 생활에 대한 글은 도저히 써지지가 않더라구요.


다시 새로움을 찾고 싶어서 작년에는 국외교육도 가 보고, 현재는 타 기관에 파견근무를 왔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제가 느낀 공허함을 다 채워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한 자리에 있었다면 하지 못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것 같아요. 그런 생각들을 조금씩 공유하려고 합니다.




세종시로 파견 온 지 네 달째 되어 간다. 새로운 도시, 새로운 회사, 새로운 사람들과 일이 내 인생에 활력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다시 권태로워졌다. 뭐가 문제일까? 윗사람들 보여주기가 주목적이라고 보이는 공무원 업무가? 주말엔 길거리에 사람 한 명 보기 힘든 이 도시가? 아니면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아니다. 사실 다 부차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나에게 이 권태는 너무나 익숙하다. 세종시로 온 것도 일상의 권태를 피하기 위함이었으니까.


지루함에 관한 책을 읽었다. 지루함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한다. 개중에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도 있었지만 그럴싸한 것들도 있었다.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안 하고 살면 지루하게 된다는 말이 있었다(책에서는, ‘자기로부터의 소외가 만성적인 지루함의 뿌리’라고 써 있었다). 이 부분을 읽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살았던가?’


내가 특별히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살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니까 주위에서 보이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말이다. 공부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싫어하는 편도 아니었다. 부모님이 그렇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더라도 학창 시절에 공부 외에 다른 데 열중했을 것 같진 않다. 대학에 가서는 잠깐 하고 싶은 걸 찾아보다가 적성과 가치관, 성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가장 괜찮을 것 같은 직업을 골랐다. 삼 년의 수험 기간은 고통스러웠지만, 다른 진로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다들 나만큼은 힘든 것처럼 보였다. 내가 매사에 그리 기대가 크지 않은 사람이라 그런 것인지, 직업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만족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왜 유독 이 구절이 와 닿았을까? 나 정도면 하고 싶은 대로 산 거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돌아봐도 나는 대단히 하고 싶은 무언가를 포기한 적이 없다. 아니, 애초에 무언가가 대단히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신입생 시절 전공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입학했다. 나름대로 여러 경험들을 해 본다고 했지만, 하기 싫은 일들만 보일 뿐 하고 싶은 일이란 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건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축복 같은 게 아닐까 싶었다.


정말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일까?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제쳐 뒀던 예전 꿈들을 들춰 봤다. 문화예술계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예술적 재능이란 걸 느낀 적은 없었고, 평생 업으로 삼을 수준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뭐든 빨리 질리는 성향상 수많은 분야를 잠깐씩 좋아했다 흘려보냈다. 다만 개중에 꾸준히 좋아하는 게 하나 있었다. 책 읽는 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항상 좋아했다. 시기별로 부침은 있었지만 어디 가서 독서가 취미라고 말할 때 부끄럼을 느끼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사실은 글을 쓰고 싶었다. 스스로에게조차 쑥스러워 한참 후에야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나는 꽤 예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 판타지 소설에 빠져 있던 어린 시절부터, 괜찮은 에세이를 읽고 따라 써보던 꽤 최근까지, 사실 되돌아보면 읽는 것만큼이나 나는 꾸준히 쓰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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