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 후기
영화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었지만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데이비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뭐든지 분해하고 보는 그를 미친놈 취급하는 장인과 유일하게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판기 회사 직원 캐런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초반의 교통사고 씬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사건이 없다. 데이비스의 내면을 따라 그가 죄다 때려 부수는 장면만 이어지는 영화이다 보니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장 마크 발레 감독이 영화 곳곳에 설치해둔 메타포 - 나무, 매미나방, 심장, 회전목마, 분해 - 를 하나하나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영화는 스토리의 주요 소재로 아내의 죽음, 즉 '상실에서 오는 슬픔'을 취하고 있지만,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드러나는 메시지는 상실이나 슬픔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아내의 죽음에 슬퍼하는 데이비스의 내면이 아니라, 자신이 죽어있었음을, 무감각했음을 인식하며 그로부터 벗어나 상실된 감각을 되찾고자 하는 데이비스의 내면적 충동이다. 그는 무감각해진 자신의 삶을 재건축하기 위하여 러닝타임 내내 죽어있는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파괴하고 철거한다.
데이비스는 '죽어있는 인간', 다시 말해 인간을 끝없이 몰아세우는 사회 속에서 개인주의에 빠진 채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 현대인의 초상이다. 냉장고에서 물이 새는지도, 아내가 자신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 임신을 한 사실도 모르는 데이비스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해체되는 가정의 모습과,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로 치닫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아내의 장례식을 치른 후, 그는 지금껏 감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감각하기 시작한다. 공항의 캐리어와 레스토랑의 분위기, 지나가는 사람들과 건물의 장식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내의 죽음은 그에게 '나는 정말 아내를 사랑했는가?'라는 의문을 가져다주었으며, 이 의문은 그가 자신의 무감각을 인식하게끔 하는 기폭제가 된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했는지 알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무감각했던 지난 삶을 전부 뜯어보고자 하며, 이러한 그의 욕구는 비정상적인 '분해'의 욕구로 치환된다.
그는 무언가를 '분해'하고, '철거'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헤집으며 자신의 심연으로 향한다. 이는 '나는 정말 아내를 사랑했는가?'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임과 동시에, 자신의 무감각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욕망이다.
이후 등장하는 메타포는 바로 '뿌리 뽑힌 나무'이다. 아직은 푸른 이파리를 매달고 있지만 머지않아 죽음을 맞게 될, 뿌리째 뽑혀 생명을 잃게 될 나무. 아내의 죽음으로 자신의 무감각을 인식하며 자신의 삶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그의 모습은 처참히 뿌리 뽑힌 나무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이러한 나무의 이미지는 이후의 장면에서도 반복적으로 그려지는데, 데이비스의 아버지가 매미나방들이 나무를 망친다며 약을 쳐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과 상담을 받으러 간 데이비스가 몽상에 빠져 매미나방에게 뜯긴 심장의 사진을 보는 장면에서다. 이렇듯 뿌리째 뽑혀 쓰러진 나무, 매미나방에게 뜯겨 한 쪽이 없어진 심장 등 영화는 계속해서 '감각'과 '무감각',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며 전달한다.
또한 이젠 아무도 회전목마를 타려 하지 않고, 롤러코스터만 찾는다는 할아버지의 말로 인해 데이비스 개인에게 국한되었던 무감각한 삶과 생명의 상실은 사회로, 세상으로 확장된다. 이어지는 데이비스의 말은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지금껏 무심하게 바라만 보았던 것들을 눈앞에 꺼내놓고 분해하여 낱낱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잊고 있던, 잊었는지도 모르던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고.
이처럼 자신의 무감각을, 죽어있는 자신의 삶을 인식한 데이비스는 이제 '파괴'와 '철거'로 나아간다. '부활'과 '재창조'를 위해선 반드시 '파괴'와 '철거'라는 충분조건이 필요하다. 공사장 인부의 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철거는 재건축을 전제로 한다. 그는 무감각했던 삶을 파괴하고 철거하며, 자신이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아 '부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인부들을 도와 공사장의 집을 파괴하고 자신의 집을 철거하며 점차 '부활'의 길에 들어선다. 대못에 발을 찔리고, 크리스의 총에 맞으며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집과 자동차 곳곳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은 그제야 데이비스의 눈에 들어온다. 항상 무감각하고 무심했던 자신에 비해 한없이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했던 그의 아내. 자신이 이토록 낱낱이 '철거'하고, '파괴'하고, '분해'하기 전까지 결코 몰랐던 진실이 그의 눈에 하나 둘 비치기 시작한다. 데이비스는 자신이 아내를 사랑했음을 깨닫고, 무감각하고 무심했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한다. 그리고 아내의 이름으로 재단을 만드는 장인에게 아내를 위해 고장 난 회전목마를 고쳐줄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해변가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돌아가는 회전목마의 모습과 아이들을 따라 뛰어가는 데이비스의 표정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상실의 슬픔에서 출발하여 생명과 죽음, 감각과 무감각, 파괴와 철거, 부활과 재창조의 은유를 거쳐 비워짐으로 끝나는 흐름이 묘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지금 매미나방에게 뜯긴 심장으로 뿌리 뽑힌 나무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도 모르게 나 자신에게도, 다른 누군가에게도 한없이 무감각하고 무심한 건 아닐까.
지금 당장 연장을 들고 우리 자신을, 고장 난 회전목마를 낱낱이 분해하고 철거해야 하는 건 아닐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아름답다는 나태주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