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특집(3)
미치도록 무언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미칠 것 같은 감정이 자꾸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통에 잠까지 괴롭혔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눈을 뜬 후 서둘러 커튼을 젖힌 창밖은 심연처럼 잠잠했다. 코끝에 묘한 향이 와닿았다. 뭐지? 또 아래층 베란다에서 또 담배를 피나? 짧은 순간, 기분 나쁜 직감이 뒷골에 알람처럼 울렸다. 반사적으로 침대 옆 탁자 위 핸드폰에 손을 뻗었다. 무선 충전기 위 핸드폰은 따뜻하게 휴식 중이다. 급히 확인한 시각은 'AM 5 : 52'이다. 늦었다! 집에서 늦어도 새벽 6시에는 나갈 예정이었다. 서울역에서 6시 52분에 출발하는 울산행 KTX 열차를 예매해 놓았다. 울산대학교에서 오전 10시에 스마트농업학과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오늘 업무다.
씻고 옷 갈아입고 노트북까지 챙겨서 집을 나오는 데 채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계획보다 10분 이상 지체한 상태다.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에 도착했고 운 좋게 바로 전철에 탈 수 있었다. 신길역에 내려 1호선을 갈아탈 때까지 고질병처럼 반복적으로 시각을 확인했다. 예매한 열차를 놓칠 경우, 취재 시간에 맞춰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섭외, 인터뷰(취재) 후 원고 작성, 교정 교열 등 인쇄 직전 작업까지 책임져야 하는 업무 특성상 일정을 못 지키면 뭐든지 '사고'다. 어떤 이유에서든 취재 약속을 어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직장 생명 유지에 치명적인 사고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1호선 지하철에 탑승한 후 오로지 시선은 핸드폰 속 시각을 응시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였다. 6시 35분, 37분, 40분.... 빠르게 흐르는 시간에 따라 의식의 흐름은 불행한 상상만을 좇을 뿐이었다.
놓쳤다! 하강하는 에스컬레이터와 한 몸처럼 서둘러 뛰어 내려간 서울역 플랫폼은 텅 비어 있었다. 6시 50분인데 5번 홈에는 열차도, 대기하는 승객도 없었다.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예매표의 시각을 다시 확인했다. 시간은 틀림없이 6시 52분이었다. 아! 열차 탑승 위치는 5번 홈이 아니라 7번 홈의 5번 호차였다. 미치겠네...! 세상 빠른 느림보처럼, 7번 홈을 향해 도망자처럼 내달렸다. 이번에는 나의 열차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살았다...!
숨을 헐떡이며 자리를 찾아 앉자마자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됐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현타가 밀려왔다. 이게 뭐지? 이게 뭐라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여기에 앉기까지 큰 죄를 지은 범죄자 같은 불안감에 떨어야 했을까? 회사 대표는 작년보다 일이 줄었다며 인원 감축까지 들먹이는데 지방 출장은 거의 두 배가 늘었다. 건당 계약 금액이 줄어든 반면에 개인당 감당해야 하는 매체 건수는 최대한 늘렸고 그만큼 취재 건수도 많아졌다.
아 기억났다! 나를 미칠 것 같은 감정 속으로 자꾸 욱여넣었던 그 궁금증. 이대로 사라진다며? 취재 장소로 가지 않고 회사나 집으로, 아무 곳으로 가지 않은 채 내가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불과 몇 분 전까지 이 기차에 못 타면 그 자리에서 바스러질 거 같았던 나의 불안감은 충만한 안도감 때문인지 말도 안 되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9시 40분쯤, 울산대 앞에서 개인 차량으로 도착한 촬영팀장이 내게 전화를 건다. 그는 '팀장님, 어디예요?'라며 물으려고 했지만 나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당연히 톡도 확인하지 않는다. 이 인간, 뭐지?! 하다가 취재 시간이 채 5분도 남지 않자 급한 마음에 편집팀 팀원에게 전화한다. 물론 그들 역시 내 소식은 깜깜하다. 당황하는 것도 잠시, 촬영팀장은 회사 업무 플랫폼에 공유해 놓은 스케줄표를 확인한 후 오늘 약속했던 인터뷰이에게 연락해서 일단 만난다. 물론 나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적당한 거짓말로 오늘은 촬영만 진행하기로 한다. 촬영을 끝낸 후 다시 내게 전화를 걸자 새로운 목소리가 답한다.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오전 중에 편집부장한테 이 사실이 전달된다. 편집팀 팀원들한테 다시 연락해 보라고 괜한 짜증을 부리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내 덕분에 점심시간 직원들의 밥상 주제가 풍부해진다. 평소 지각조차 없는 나의 갑작스러운 취재 사고는 그들에게 걱정과 불안보다 묘한 안도를 선물한다. 누군가의 불행에 동정을 보내면서 위안을 삼는 소시민적 카타르시스다. 편집부장이 이 어처구니없는 문제로 오후 내내 총괄이사한테 시달리겠지만 그 역시 퇴근 시간과 함께 내일의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서둘러 집으로 도피한다.
우리 집에서는 내 분실을 언제쯤 자각할까? 야근을 하든 약속이 있든 귀가 시각 11시를 거의 넘기지 않지만 12시를 넘는다고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교 후 학원으로 다시 독서실에서 졸음과 사투를 벌이다가 12시가 다 돼서야 반쯤 나간 정신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온 고등학생 아들은 텅 빈 거실을 지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는다. 참을 만큼 참았다며 핸드폰을 꺼내 모든 신경을 그곳에 바친다. 그러다가 다시 참아온 격한 졸음에 지친 하루를 미련 없이 로그아웃한다. 아내는 습관처럼 저녁 일찍 잠이 든다. 새벽 4시 전후로 화장실에 가려고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옆에 내가 누워 있지 않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다. 아내는 본인의 핸드폰을 먼저 확인하지만 그곳에 나의 소식은 없다. 오전 9시가 되자마자 나의 회사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 총괄이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나의 분실이 1차로 공식화된다. 무단결근 7일 이상이면 해고 처리가 가능하다. 노동법을 애용하는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새 직원을 뽑을 것이며 내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고 나에 대한 기억도 자연스럽게 지워진다. 완벽한 대체품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에서는 당장 나의 존재를 누군가 대신할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버지가 사라진 아들은 다른 이유로 멘붕에 시달리겠지만 이들을 공통으로 괴롭히는 것은 현실적 어려움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회사에 꼬박꼬박 나가야 하는 이유는 한 달도 어김없이 지출해야 하는 돈 때문이다. 얼마 전 평수를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하느냐고 비상금처럼 모아둔 돈마저 박박 긁고 은행 대출까지 받아서 보탰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이직을 하던 아내는 1년 전부터 전업주부로 안착했다. 가장의 부재는 곧 가정의 결핍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나의 퇴직금으로 두세 달을 버티기도 힘들 것이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돈벌이에 나서야 하고 아들의 용돈은 반토막 날 것이다. 결국 집의 평수, 나에 향한 걱정, 그리움, 보고품, 기억까지도 반토막 난다. 그 빈자리는 원망, 미움, 경멸, 무시로 채워진다.
다시 심장이 불협화음의 리듬을 빠르게 탄다. 곧 울산역이다. 갈림길이다. 여기서 내리지 않다면 나의 분실은 시작된다. 작년 1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의학과 의원을 방문했다.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연초가 되자 회사는 입찰 결과와 업무 배분 문제로 살얼음판 위 전쟁터 같았다. 거기에다 막 신입 딱지를 뗀 편집팀 막내의 태도 문제가 불거져 매일 편집부장에게 불려 갔다. 편집부장은 무언가에 한 번 꽂히면 그곳을 밑바닥까지 후벼 파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태도 문제로 언젠가부터 눈 밖에 나버린 기획팀 막내가 집중포화를 받았다. 더 큰 문제는 편집부장도 편집팀 막내의 눈 밖에 났고, 그에 대한 불만이 고름처럼 감정의 골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중간에 나의 새우등은 터져나갔다. 딸 같은 며느리, 한결같은 사랑, 가족 같은 회사... 자연은 인간 따위와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실로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인간이다. 역사가 그것을 처절하게 증명해 왔고 그때는 나의 상태가 딱 그 모양이었다. 두 인간 사이를 오가면서 나는 무너져갔고 우울증 약을 두 달간 복용했으며, 편집팀 막내가 쫓겨나듯 회사를 떠난 후에야 나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누군가에게 시간은 미래로 달려가는 수레바퀴지만 삶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에게는 헛도는 쳇바퀴에 불과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제자리, 혹은 더 깊은 막장이다. 그리고 얼만 전부터 다시 예전의 우울감이 재발했다. 얄팍해진 감정 사이로 불안과 초조, 걱정이 시도 때도 없이 너울거렸다. 그러나 다시 예전처럼 병원에 찾아가 나만큼 나를 알지 못하는, 감정적인 교감과는 동떨어진 전문의에게 넋두리하듯이 개인사를 쏟아내고 싶지 않았다.
"이제 곧 정차할 역은 울산역입니다!"
심장이 울렁거린다. 나는 이 역에서 내리지 않을 것이며 그때부터 일탈이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부터 내비게이션에 따라 정해진 길로만 달려왔다. 월급 통장만큼 투명한 삶이었다. 가슴속 깊이 탈출의 욕망을 집어삼킨 채 무기력한 반복을 이어왔다. 정차했던 기차는 서서히 속도를 높일 것이고 나는 정해진 좌표에서부터 멀리멀리 달아날 것이다.
"아빠... 아빠..! 아빠!!"
찔끔, 놀란다. 어제부턴가 '아빠'라는 단어에 자주 찔끔거린다. 부모가 처음이라서 숱한 실수를 거듭하며, 힘겹게 키운 아이가 산부인과에서 바뀐 남의 아이라는 걸 아는 순간부터 진짜 '아빠가 되어 가듯'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남의 아이처럼 변하고 그 매일매일의 깨달음이 버거웠다. 아이의 말수가 부쩍 적은 날도, 괜한 애교가 넘치는 날도 무엇 하나 예사롭게 넘길 수 없었고, 자리가 사람을 만들 듯 아빠는 꼰대가 되어 갔다. 꼰대는 잔소리만큼 눈물이 많았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각종 다큐에 등장하는 세상 모든 종류의 아빠를 볼 때마다 시답지 않은 이유로 눈물이 터졌다.
"요즘 많이 힘들어?" 버럭 화내는 빈도가 늘어난 나의 눈치를 살피며, 아내는 타박하듯 물곤 했다. "늙어서 그래...." 나이를 먹을수록 오뉴월 복숭아처럼 물러가는 눈물샘을 쥐어짜는 것은 이곳저곳에 부딪히고 채이고 짓눌린 생활의 고단함 때문일 것이리라.
"아빠!"
퍼뜩, 기억났다! 이번 주 토요일에 나의 생일 파티를 하기로 아들과 약속했다. 어릴 적부터 먹성이 좋던 아들은 엄마의 이기적인 기대와 매몰찬 강요에 맞서 대학 조리학과로의 진학을 원했다. 아직 원서 접수까지 두 달 정도 남은 상태지만 아이는 자신이 직접 만든 케이크로 엄마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고, 디데이는 이번 주 주말이었다. 아들은 정성을 다해 그린 어설픈 케이크 설계도를 은밀하게 보여주며 오래간만에 배시시 웃었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따라 웃었지만 가슴이 또 뭉클했다. 자꾸 날 닮아가는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잔소리가 주름처럼 늘어갔지만 그만큼 아들과는 더 친밀해졌다. 만약 내가 이대로 분실을 선택한다면 아들이 준비한 비밀 생일 케이크는 어찌 될까? 안 된다! 본능적인 외침이 나의 엉덩이를 튕겨냈다. 서둘러 가방을 챙긴 후 좁은 통로로 내달렸다. 금세라도 다시 출발할 것처럼 기차는 씩씩거렸다.
급하게 플랫폼에 내리자 낯선 웅성거림이 귓속에서 작게 울렸다. 이어서 기차는 제 길을 떠났다.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습관처럼 주위를 살폈다. 먼저 기차역 표지판을 찾아 시선을 옮겼다. 언젠가 앞선 역에 잘못 내린 후부터 생긴 버릇이다. '뭐지?' 역 이름이 적힌 표지판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건 또 뭐지?' 아무도 없는 듯 고요하다. 이상하다. 지금 이곳 플랫폼에 오로지 나 혼자다. 그런데 좀 전에 웅성거림은 점차 커진다. 어느새 그 소리가 일정한 리듬에 맞춰 일렁이다가 원심분리기 속 액체처럼 차츰 분리되어 형태를 드러낸다.
"도대체 뭐야?", "아빠....", "진짜 허무하다", "아빠....", "이제 겨우 사십 후반인데....", "아내랑 아들이랑 남은 가족은 어쩌냐....", "아빠....", "뭐 산 사람은 살지...,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뭐야... 꿈이야? 지금 몇 시지? 지랄같이 일어나기 싫다. 이제 겨우 수요일인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아 맞다! 출장이지?! 서울역에 6시 30분까지는 가야 하는데... 지금 몇 시지? 늦으면 절대 안 되는데.... 늦으면 대박 사고야! 왜 몸이 움직이지 않지? 또 가위야? 일어나야 해! 망치면 안 돼! 편집부장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아! 힘들어도 내년까지는 어떻게든 여기서 버텨야 해.... 몸이 도저히 움직이지 않아.... 대박 사고야! 망치면 절대 안 돼! 잘리면 안 돼! 무조건 참고 버텨야 해!!
아까 그 묘한 향의 정체가 서서히 기억난다. 그윽하다. 편안하다. 어릴 적 제사상에서 피어오르던 향초가 이유 없이 좋았다. 안방 가득 배어 있던 그 향을 맡으며 잠이 들면, 느닷없이 찾아와 괴롭히던 가위에 더 이상 눌리지 않을 것 같아서 든든했다.
오늘 취재에 늦어도, 이번 주 나의 생일에 함께하지 못해도 아무도 날 탓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순간, 어린 시절 그날처럼 편안하다. 다시 자야겠다. 마치 토요일 아침처럼, 되도록 깊게....
다시 깨어나지 않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