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바이러스

거짓의 품격(1)

by 판토리

아내가 그 시절, 신입생처럼 찡그리며 웃었다.

정확하게, 대학 시절 사 년 동안의 기억 데이터가 손상되어 삭제되었다고 했다. 병원 집중치료실에 입원해 일주일간 받은 검사의 결과를 의사는 컴퓨터 수리기사처럼 전했다.


"일종의 역행성 기억상실로 뇌 손상이나 퇴행성 질환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정신적 외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까지 발생한 비슷한 증상에 따르면 심각한 스트레스로 인한 방어기제의 일종이거나 정서적 감염으로 보입니다."


의사는 알쏭달쏭한 설명을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처럼 피곤하게 늘어놓았다. 매스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략 십 개월 전부터 시작된 이 기이한 현상을 두고 연일 떠들썩하게 보도했지만 알맹이는 쏙 빠져있었다. 몇 년 전, 전 세계를 불안 속에 끙끙 앓게 했던 코로나 팬데믹의 초기 양성과 여러모로 비슷하다는 보도만 반복 재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대대적인 역학조사를 진행했지만 코로나19와는 다르게 질병의 원인을 신속하게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 난감한 증상을 유행병으로 규정하는 분위기였다. 세계 곳곳에서 컴퓨터를 주로 이용하는 사무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일정한 기간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양상을 뚜렷하게 보인다고 유력 언론사들이 흥미로운 기사에 각가지 자극적인 양념을 첨가해서 전했다.

정부의 대책도 초반에는 우왕좌왕했지만, 인터넷 속도만큼 메가급으로 빠르게 국내 여러 곳에서 이 증상이 보고되었고 그에 뒤지지 않게 질병관리청에서는 증상자를 집중치료실에 입원 조치한 후 다각적인 검사를 실시했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 말단 직원과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 사무직에서 집중적으로 이 증상이 나타났다. 아내 역시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유통 대기업에 입사한 후 SNS 홍보팀에서 근무했고, 코로나19 때 면역주사까지 거부했는데도 전염되지 않았던 슈퍼 면역력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쉽게 무너졌다.


"기억을 잃었다고 말만 하면 유급휴가도 바로 주고 좋은데."


병원에서 검사 순서를 기다리던 아내는 회사의 연락을 받은 후 찡긋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누군가, '워라밸 바이러스'라고 온라인상에서 떠들기 시작했다. 정부가 내린 '14일의 유급휴가' 권고 조치 때문이다. 사람마다 삭제된 기억의 기간이 달랐지만 대부분 과거의 특정한 시기였고, 사람마다 반응이 달랐지만 일상에 큰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만큼 직장 생활과는 무관해 보였다. 뇌 전문가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는 다른 곳에 불거졌다. 이 증상의 전염성이다. 초기에 기억 상실과 전염은 그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특정 바이러스가 아닌 스트레스로 대표되는 정신적 외상을 유력한 원인으로 추정했기에 전파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상은 코로나바이러스와 비슷했다. 물론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리는 품귀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전염은 맞지만 침, 콧물 등의 호흡기 분비물이나 공기에 의한 감염은 아니라고 했다. 논란과 혼란,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막연한 불안과 전염의 트라우마를 증폭제 삼아 들끓기 시작한 것도 그때와 비슷했다.


"정말 대학 딱 그 사 년만 기억이 안 나?"

"왜? 사람들 말처럼 쉬고 싶어서 나도 거짓말하는 거 같아!"


농담도 그렇다고 반박도 아닌, 아내의 찡그리는 웃음 같은 대답이다. 대학 때의 기억이 삭제되었다고 하지만 그때부터 가지고 있던 특유의 표정은 여전했다. 아내는 대학 시절, 첫사랑도 잃고 첫 아이도 잃었다. 그리고 삶을 지탱하던 총체적인 희망마저 잃은 걸까? 그래서 지금까지 원하지도 않는 나와 함께 있는 걸까?

그날 밤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소지품을 잃었고 편안하게 서 있을 만한 손바닥 크기의 땅을 잃었고 약속과 기대와 계획으로 채워진 내일을 잃었다. 아내의 첫사랑이 아비규환의 늪 속으로 빠져들 때 아내는 나는 단둘이 있었다. 그날, 아내와 내가 함께 있지 않았다면 첫사랑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단 한 번도 아내는 내게 그런 물음을 내비친 적은 없었지만 얼마 전, 술에 가득 취한 채 찌꺼기를 있는 힘껏 짜내는 믹서기처럼 꺼억꺼억 사무치게 울며 말했다.


"대학 때가 아예 통째로 사라졌으면 좋겠어...."

수많은 억측 중 대중들을 가장 매료시킨 것은 워라밸 바이러스 썰이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방어기제와 정서적 감염 따위는 다 거짓이고 어떻게든 쉬고 싶어서 안달이 난, 미천한 직장인들의 꾀병이라는 것이다. 이 증상으로 판명되는 누구나 유급 휴가를 최소 이 주일 이상은 보장해 주라고 정부에서 권고사항으로 규정한 이후부터 기억을 삭제당했다고 주장하는 증상자가 두 배 이상 늘었다는 통계 자료가 그 증거라는 것이다. 워라밸 바이러스 논란은 각종 유튜브 채널과 비공식 언론을 통해 감염 속도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었다. 정신의학 분야의 특성상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검사 키트가 없기에 의심에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자비한 칼날을 휘두르는 망나니의 춤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코로나 혐오 현상처럼 이 증상을 호소하는 집단 혹은 개인을 향해 차별, 비난, 폭력 등을 동원해 집단적인 분노를 퍼부었고 해외 토픽은 물론이고 국내 뉴스에서도 관련 사건 사고가 끝이지 않게 보도되었다.

결국, 극단의 조치로 세계보건기구에서 들고나온 논란 종식의 카드가 신종 기억 삭제 바이러스와 정서적 감염 현상이라고 음모론자들은 주장했다.


"대학 때가 전혀 기억 안 나면 나를 처음 어떻게 만났는지도 모르겠네, 그렇지?"


'그렇지'는 오랜만에 써보는 단어다. 대학 시절, 무언가 아내의 눈치를 살피면서 물을 때 주로 사용하던 추임새였다. 그럴 때면 지금처럼 '그게 너는 중요하니?' 하는 듯한 표정을 짓거나 묘한 미소를 지으며 무시하듯 화제를 돌렸다. 그 시절의 대부분을 아내와 나와 그 첫사랑은 삼총사처럼 가깝게 지냈다. 대학교 첫 학기를 마치고 가정 형편상 입대를 했던 나는, 이 년 후 복학한 학교의 고교 동창 모임에서 고등학교 후배인 아내를 처음 만났다. 아내는 편하고 착하고 재밌어서, 내가 친오빠처럼 좋다고 했다. 금세 친해진 우리는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고 술도 마셨다. 일 년쯤 지났을까. 성격도 별로이고 말수도 적고 패션 감각도 떨어지지만 장학금만은 독차지하던 내 과 친구와 우연히 셋이서 술을 마셨다. 조합 자체가 불완전한 세 명이 무슨 이유로 술자리를 같이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이후 머리만 좋은 그놈은 아내의 첫사랑이 되었다.

난 가을이 싫다. 도롯가에 나뒹구는 빛바랜 초록 잎새의 향이 콧속을 그토록 설레게 간질거렸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뚜렷하다. 아내는, 핸드폰 저 너머에서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처음 하는 고백이라며 만나서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 사람은 나를 마음에 들어 할까?"


그 후, 정확히 일 년이 지난 그날, 아내는 다시 나를 불러내서 미쳐 터질 만한 또 한 번의 고백을 했다. 언제나 애정과 기쁨과 웃음은 첫사랑과 나누었고, 고민과 짜증과 슬픔은 나에게 덜어냈다. 당시 나의 역할은 아내의 친오빠, 딱 거기까지였다.


"우리 오빠가 좋아할까? 싫다고 하면 어떡해...? 오빠가 대신 이야기해 주면 좀 낫지 않을까?"


다시, 밑도 끝도 없는 질투와 비참한 기분이 나를 뒤흔들었다. 그날은 아내의 한 쌍과 아내가 굳이 데려오겠다고 우겼던 초등학교 동창까지 네 명이 축제의 밤을 보내기로 약속했었다. 이미 약속 장소에 가 있던 두 명으로부터 아내와 내게 번갈아 연락이 왔지만 우리 둘 다 다른 이유에서 무시했다. 그 친구는 분명히 임신 사실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번 일로 헤어지길 원할 것이라고 아내에게 잔뜩 겁을 주었다. 나의 일방적인 말을 믿으며 울먹이는 아내에게 처음에는 일말의 미안한 감정이 있었지만 금세 알 수 없는 확신이 나의 뇌리를 채웠다.


"예전에 나한테 혹시 네가 임신할까 봐 너무 걱정이라는 말까지 했어. 아... 물론 술에 잔뜩 취해서 한 말이라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겠지만."


분명 언젠가 그 친구로부터 그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아니, 분명 들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파렴치한 그놈 때문에 내 앞에서 엉엉 우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견딜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부디 오랫동안 그놈이 아내와 나의 공공의 적이 되길 빌었다. 그러나 고작 나의 바람은 한 시간짜리도 되지 못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첫사랑으로부터 연락도 더 이상 오지 않자, 아내는 일단 만남의 장소로 가자고 야멸차게 잡아끌었다.

아내는 안절부절 못하며 전철 안에서 휴대폰에 매달렸지만 첫사랑은 묵묵부답이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서둘러 내렸지만 플랫폼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인파로 붐비는 지하철역을 겨우 빠져나오자 축제의 소음보다 한층 단조롭지만 강렬한 데시벨의 사이렌이 귓가에 불길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목은 이미 숨 막힐 것 같은 미로로 꽉 막혀있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참사라고 부르는 대형 사고 뒤에 애도와 추모의 시간 따위가 자리할 공간은 인간의 이기심만큼 비좁다. 해일 같은 원망과 비난이 가장 먼저 덮쳐온다. 진상 규명이라고 점잖게 표현하지만 원망과 비난받을 희생양을 고르는 러시안 룰렛과 다르지 않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에 따른 당위성보다 마녀사냥의 주인공이 절실할 뿐이다. 피해자나 그들의 가족도 예외일 수 없다. 어떻게든 몸을 사리는 것이 최선이며 선 긋기, 꼬리 자르기, 거리 두기에 진심을 다한다. 나 역시 그날 그의 죽음으로부터, 격한 죄책감으로부터 지난 시간 동안 열심히 달음박질을 쳐왔다. 오 년도 훌쩍 지난 지금, 어느덧 새봄이 파릇파릇한 기운으로 겨울의 음울한 냉기를 떨쳐내고 있는데 아내는 아직도 꽁꽁 갇혀 있는 걸까?


"세계 곳곳의 학계에서 경쟁적으로 연구 중이지만 삭제된 기억의 시기와 증상자의 개인적인 경험 혹은 트라우마의 연관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입니다. 선택적 기억상실의 일종인데 의도적으로 특정 기억을 잊거나 기억을 지우는 현상이죠. 특히 일부 특정적인 경험만 기억하지 못하고 나머지 주변 기억은 정상적으로 떠올리기도 합니다. 게다가 현재까지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지만 기억 조작 바이러스로 변이를 일으키기도 하죠."


아내의 증상을 확진해 준 의사를 찾아가 자세한 내용을 물으려 했지만, 담당 의사 역시 기억 삭제 감염자로 판명되어 며칠 전부터 병가 중이라며, 심각한 표정을 흉내 내는 듯 실룩거리는 미소로 나를 맞이한 인턴이 알고 싶은 것 이상을 일러주었다. 덕분에 나의 궁금증은 확고한 의심으로 바뀌었다.

아내의 증상이 진짜 감염이든 아니면 워라밸 바이러스의 꾀병이든, 굳이 기억 삭제의 기간이 그 시기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엇이 진실이든 다시 그날을 내 앞으로 소환하려고 했던 아내의 의식 혹은 무의식은 그나마 남겨진 자책의 흔적을 말끔하게 표백시키며 앙금처럼 지분거렸던 열등감과 지워졌다고 믿었던 질투심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대학 시절이 뭐 어떻다고? 뭘 알고 싶은 건데.... 왜 그때의 나의 기억이 당신한테는 중요한 건데!"


첫사랑의 장례를 마치고 열흘쯤 지났을까. 아내는 불쑥 나를 찾아와 아이의 아빠가 되어달라고 했다. 아이를 꼭 낳아서 키우고 싶은데 아이의 아빠가 세상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부모님이 안다면 뱃속 아이마저 잃게 될 것이라며 믹서기 울음을 토해냈다. 짝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누군가와 뜨겁게 나눈 사랑의 증표로 잉태한 새 생명의 아빠가 되겠다고 자처한 것은 진심이었을까. 어쩔 수 없는 미안함과 인간적인 도리, 아내를 향한 측은지심이라고 믿었지만 그게 진심이었을까. 어쨌든 정성껏 아내를 지켰고 돌봤으며 아이까지 품에 안으려 했다. 애정 결핍의 원인은 애정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받지 못한다고 믿기에 생기는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한도 없이 부족한 사람이었고 결국 뱃속의 아기를 지키지 못했다. 임신한 지 189일 만에 아이마저 떠났다.


"나를 원망하고 있잖아, 지금까지! 그 대단한 첫사랑을 나 때문에 잃었다고. 아니야?"

"또 그 소리야! 한동안 잠잠하더니 그 병 다시 도졌어?"

"난 언제나 당신한테 진심을 다했는데 아직도 당신은 그깟 과거에 매달려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잖아!"

"그 케케묵은 죄책감에 갇혀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건 오빠야!"

"케케묵은 죄책감? 대학 사 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잃어버렸다고 하더니 이제 기억났나 보네. 아니면 처음부터 다 거짓말이었나? 그 워라밸 바이러스 뭐 그런 거."

"유치하게 굴지 마! 지난 몇 년 동안 반복적으로 해 온 말인데 대학 시절 기억을 잃는다고 그것도 잊니?"

"뭐든 잊을 수가 없겠지! 당신한테는 지금의 나보다 그때가, 첫사랑 더 소중하니까!"

"그때가 언제인지 내 첫사랑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대학 때의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어! 오빠와 함께 했던 모든 그 순간이 말이야."

"그렇게 되면 나만 사라지지 않겠지. 당신의 그 첫사랑도 그 아이도...."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발작하듯 소리쳤고 나 역시 미친 듯 고함을 질렀다. 그 이후로 무엇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그 이전, 기억 삭제 바이러스 이전, 그날의 약속 이전, 아내가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했던 그 이전까지도 이제는 희미하다. 처음 아내를 시끌벅적한 모임에서 만난 날, 착하고 편하고 재밌어서, 내가 친오빠처럼 좋다고 말했다. 그 말 이후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아내의 첫사랑이 나인지, 같은 학과 장학생의 첫사랑이 아내인지, 떠나간 아이의 아빠가 나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다.


아내가 나를 내려다보며 그때처럼 찡그리며 운다. 하필 옆에 그 장학생 친구도 서서 같이 운다. 손을 뻗어 아내의 뱃속 아이를 느껴보고 싶은데 희뿌연 기억처럼 손도 자꾸 사그라들어 아무 소용이 없다. 상체를 일으키려고 해도 두터운 소음이 자꾸 나를 밀쳐낸다. 낯익은 음성들이 귓속에서 꿈틀거리며 속삭인다. 나의 무기력함을 무능력함을 무가치함을 날름날름 일러바친다. 부정할 수 없는 날이 선 비난들이 가슴에, 심장에 꽂힌다. 숨이 막힌다. 산산조각 난 기억의 데이터가 뒤엉켜 뇌신경을 마비시킨다. 삶을 송두리째 로그아웃시킬 듯 으르렁대며 위협한다. 다시는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 않다. 잃고 싶지 않다. 지워지고 잊고 싶지 않다. 첫 만남의 그녀로부터, 우리의 그 시절로부터, 아내로부터, 지금의 나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삭제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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