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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르테오 Apr 23. 2023

문(門)을 통과하며

 나는  작가들의 미술작품을 액자로 만드는 일을 한다. 

일명 '아트 프린트 매니저'  언뜻 생각하면 그림을 정해진 틀에 넣는 단순 표구로 여겨지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 작업은 일반적인 액자 형식이 아닌,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재질과 모양의 오브제를 사용하는 일이다. 덕분에 요즘 젊은 작가들의 멋진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 




  지금 일하는 곳이 내 첫 직장은 아니다. 

호기롭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에서 생각지 못한 해고를 맛보았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억울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뒤돌아야 했다. 

인생을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그 일이 내게 충격을 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 삶에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했다. 상처를 받았다고 그 감정에만 빠져 있는 것이 내게는 사치처럼 느껴지던 날들이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나를 눈여겨본 분의 소개로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취직만 해도 기쁠 텐데 내가 원하던 회사였기에 행복은 두배로 컸다. 

업무만 제대로 배우는 데도 두 달이 걸렸다. 크고 작은 실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단단히 마음먹고 버텼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왠지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 내 안에 있었다. 가족들에게도 낯이 서지 않을까 봐 더 열심히 일에 매진했다. 피곤이 쌓여갔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특별한 액자 주문이 들어왔다. 

작품은 일주문(一株門)이었다.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설 때 처음 마주하는 문이다. 전통 문양의 단청과 처마를 한지로 제작하니 고결한 분위기가 돋보였다.

 작품을 볼 때마다 감탄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완성된 작품을 주인에게 돌려보내던 날, 괜스레 마음 한쪽이 공허했다.

 며칠 후, 그 작품이 어떻게 전시되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해 서울에 있는 갤러리로 향했다. 다시 만난 일주문은 많은 사람의 눈길을 받으며 멋지게 서 있었다. 내 손길이 구석구석 닿은 소중한 일주문 앞으로 다가가서 마주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문,  문이라는 건 두 세계를 잇는 통로이다. 

나도 다양한 문을 지나며 지금 이곳에 있다. 아직 젊지만 나름으로 어려움을 겪은 탓인지 언제부턴가 새로운 문을 여는 것이 더 이상 겁나지 않는다.  지나온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잘못된 문을 선택하고, 그것에 대해 후회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생각처럼 갈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결국에는 지금 내게 열린 문을 향해 꿋꿋이 걸어가야 한다. 그 길을 통과해야만 다른 길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이는 서둘러 다른 문을 두드리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삶을 대하는 내 잣대가 아니다. 이전의 나였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나는 달라졌다. 현재를 즐기며 꾸준히 가 볼 생각이다. 

결과에 급급해 섣부른 속도를 내기보다 이 여유를 누리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게 주어진다는 문 앞에 서게 될 거라 확신한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예전처럼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어 본다.

 

 가끔 내가 만든 일주문이 떠오른다. 전시장 한편에서 누구의 시선도 구걸하지 않고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그저 자기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존재했다. 주변의 환경이 어떠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사물에도 저런 당당함과 기품이 있건만 나는 왜 뭔가를 증명하려 애쓰는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여러 문을 기웃거리며 불평하던 내 모습을 부끄럽게 했다.

 한때는 내가 운도 없고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라 여겼다. 내가 원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런 인생은 없었다. 지금처럼 내게 허락된 문 안으로 들어가 삶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겠다. 그것이 모든 문을 통과하며 내가 깨달은 삶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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